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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현정 리포터
2025-10-20

강아지도 물건의 ‘용도’로 분류한다고? 개는 훌륭하다 외형 아닌 '용도'로 분류하는 개의 놀라운 인지 능력, 언어 없이도 가능한 개념적 사고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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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가져와!" 

주인의 말에 반려견이 정확히 공을 물고 온다. 이 친숙한 광경 속에는 복잡한 인지의 문제가 숨어 있다. 개가 그저 특정 물건과 소리를 연결한 것인지, 아니면 '던지는 놀이 도구'라는 범주 자체를 이해한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헝가리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교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한 연구는 후자에 무게를 싣는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단어를 빠르게 학습하는 특별한 개들이 외형이 전혀 다른 물건들을 '사용 방식'에 따라 분류하고, 처음 보는 물건에도 적절한 이름을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개들이 암기가 아닌 개념적 사고를 하고, 인간처럼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지만, 인간의 언어 라벨을 기능에 따라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 능력 없이도 단어 학습과 개념적 분류가 연결될 수 있다면 인간 고유의 것으로 여겨졌던 인지 과정의 진화적 뿌리가 생각보다 깊을 수 있다. 

'재능 있는 단어 학습자(GWL)' 개들은 일상적인 놀이를 통해 수십에서 수백 개의 장난감 이름을 자연스럽게 학습한다. ⒸGettyImagesBank 
'재능 있는 단어 학습자(GWL)' 개들은 일상적인 놀이를 통해 수십에서 수백 개의 장난감 이름을 자연스럽게 학습한다. ⒸGettyImagesBank 


외형 말고 ‘쓰임새’로 구분하기 

실험은 '재능 있는 단어 학습자(Gifted Word Learner, 이하 GWL)' 개 11마리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평범한 개와 달리 장난감 이름을 29개에서 200개 이상의 장난감 이름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전체 개 집단에서 극히 드문 이들은 보더콜리, 블루힐러, 래브라도 리트리버 등 다양한 견종이었으며, 브라질, 이탈리아, 노르웨이, 미국, 영국 등 5개국에 흩어져 각자의 가정에서 반려견으로 살고 있었다. 다만, 테스트 중 여러 사유로 4마리가 중단하여 최종 단계 테스트까지는 7마리만 참여했다. 

연구진은 4단계에 걸친 실험을 설계했다. 첫 번째 단계에서 강아지들은 4주 동안 두 가지 방식으로 노는 법을 배웠다. 8개의 장난감 중 무작위로 선정한 4개는 주인이 잡아당기며 노는 "풀(Pull)" 장난감으로, 나머지 4개는 던져서 가져오는 "쓰로우(Throw)" 장난감으로 명명됐다. 핵심은 이 장난감들이 모양, 크기, 색깔, 재질 등 외형적 특징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강아지들이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주인이 그 장난감으로 '어떻게' 노는가 하는 기능적 차이뿐이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학습 평가 테스트를 실시했다. 해당 놀이에 동기가 없어 제외된 개들 외에는 모두 "풀"과 "쓰로우"라는 범주를 성공적으로 학습했다. 

그러나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였다. 연구진은 강아지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장난감 8개를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그 장난감들의 이름을 전혀 말하지 않았다. 단지 한 주 동안 한 장난감으로는 잡아당기며 놀고, 다른 장난감으로는 던지며 놀기만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실시한 최종 테스트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 장난감들 앞에서 주인에게 "풀 가져와!" 또는 "쓰로우 가져와!"라고 요청하게 했다. 그런데 7마리 개 모두 평균 65%의 정확도로 적절한 장난감을 선택했다. 무작위 선택 확률 12.5%를 압도적으로 초과하는 수치였고, 통계적 유의성도 뚜렷했다. 개들은 단순히 특정 물건과 특정 이름을 암기한 것이 아니라, '잡아당기는 도구'와 '던지는 도구'라는 기능적 범주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진이 설계한 4단계 실험 과정으로 개들은 평균 65%의 정확도로 기능에 따라 새로운 물체를 분류하는 능력을 보였다. ⒸCurrent Biology
연구진이 설계한 4단계 실험 과정으로 개들은 평균 65%의 정확도로 기능에 따라 새로운 물체를 분류하는 능력을 보였다. ⒸCurrent Biology


자연스러운 학습의 효과?

과거 동물의 범주 학습 연구는 대부분 집중적 훈련을 전제했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회색앵무 알렉스는 "같다/다르다", "크다/작다" 같은 관계 개념을 습득했고, 수화를 배운 침팬지들은 상징체계로 사물을 분류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수천 회의 시행착오를 거친 실험실 동물이었다. 더욱이 이런 연구는 재현성 논란과 방법론 비판에 시달렸고, 대부분 단일 개체의 예외적 성취에 그쳤다.

반면 GWL 개들은 특별한 훈련 없이 일상적 놀이만으로 이 능력을 보였다. 주인들은 하루 5~30분, 평범한 반려 가정의 놀이 시간만큼만 개와 놀았다. 실험 환경도 각자의 집이었고, 연구진은 온라인 화상으로 관찰만 했다. 이는 통제된 실험실이 아닌 생태학적으로 타당한 조건에서 기능적 범주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이 학습 패턴은 인간 유아의 언어 발달과 유사성을 갖는다. 생후 10개월 유아는 사물의 정적·동적 속성을 결합해 단어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외형보다 '기능'을 우선하는 범주화는 생후 14~16개월 이후, 즉 유아기에서 학령 전기로 넘어가며 발달한다. 

GWL 개들이 보인 능력은 이 후기 단계와 유사하다. 물론 개들의 인지 메커니즘이 인간과 동일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형식적 언어 능력 없이도, 인간이 제공한 언어 라벨을 기능적 범주에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연구진이 강조한 또 다른 지점은 이 능력의 희소성이다. 사물 이름을 학습하는 개는 전체 개 집단에서 극소수다. 이번 실험에 참여한 7마리는 브라질, 이탈리아, 노르웨이, 미국, 영국에서 모집됐고, 보더콜리 외에도 블루힐러, 래브라도 리트리버, 웰시코기가 포함됐다. 품종보다는 개체의 특성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이는 이 능력이 종 수준의 보편적 특징이 아니라, 특정 개체에서 발현되는 인지적 재능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GWL 개들은 특별한 훈련 없이 하루 5~30분의 일상적 놀이만으로 언어 라벨과 기능적 범주를 학습했다. ⒸGettyImagesBank 
GWL 개들은 특별한 훈련 없이 하루 5~30분의 일상적 놀이만으로 언어 라벨과 기능적 범주를 학습했다. ⒸGettyImagesBank 

과거 동물의 범주 학습 연구는 대부분 집중적 훈련을 전제했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회색앵무 알렉스는 "같다/다르다", "크다/작다" 같은 관계 개념을 습득했고, 수화를 배운 침팬지들은 상징체계로 사물을 분류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수천 회의 시행착오를 거친 실험실 동물이었다. 더욱이 이런 연구는 재현성 논란과 방법론 비판에 시달렸고, 대부분 단일 개체의 예외적 성취에 그쳤다.

반면 GWL 개들은 특별한 훈련 없이 일상적 놀이만으로 이 능력을 보였다. 주인들은 하루 5~30분, 평범한 반려 가정의 놀이 시간만큼만 개와 놀았다. 실험 환경도 각자의 집이었고, 연구진은 온라인 화상으로 관찰만 했다. 이는 통제된 실험실이 아닌 생태학적으로 타당한 조건에서 기능적 범주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이 학습 패턴은 인간 유아의 언어 발달과 유사성을 갖는다. 생후 10개월 유아는 사물의 정적·동적 속성을 결합해 단어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외형보다 '기능'을 우선하는 범주화는 생후 14~16개월 이후, 즉 유아기에서 학령 전기로 넘어가며 발달한다. 

GWL 개들이 보인 능력은 이 후기 단계와 유사하다. 물론 개들의 인지 메커니즘이 인간과 동일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형식적 언어 능력 없이도, 인간이 제공한 언어 라벨을 기능적 범주에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연구진이 강조한 또 다른 지점은 이 능력의 희소성이다. 사물 이름을 학습하는 개는 전체 개 집단에서 극소수다. 이번 실험에 참여한 7마리는 브라질, 이탈리아, 노르웨이, 미국, 영국에서 모집됐고, 보더콜리 외에도 블루힐러, 래브라도 리트리버, 웰시코기가 포함됐다. 품종보다는 개체의 특성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이는 이 능력이 종 수준의 보편적 특징이 아니라, 특정 개체에서 발현되는 인지적 재능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Dogs extend verbal labels for functional classification of objects, Fugazza et al., 2025, Current Biology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10-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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