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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민재 리포터
2025-10-23

스트레스받으면 코가 차가워진다 열화상 카메라가 밝혀낸 스트레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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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스트레스받고 있니?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빨리 뛰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경험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남기는 흔적은 이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측정 가능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되었다. 영국 서섹스 대학교(University of Sussex) 심리학 연구팀이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 우리 코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해당 발견은 스트레스 지수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할 새로운 방법론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언어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기 어려운 영유아나 의사소통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와 가까운 영장류 동물들의 정신 건강을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참고로 해당 연구는 2023년 10월 18일 (정식 학술지 출판 이전 단계) 런던에서 열린 뉴 사이언티스트 라이브(New Scientist Live) 행사에서 청중 앞에서 시연된 바 있다. 이러한 시연은 과학이 어떻게 일상적인 관찰을 정밀한 측정 도구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열화상 카메라가 포착한 '코 온도 하락' 현상

서섹스 대학교의 질리언 포레스터(Gillian Forrester) 교수 연구팀은 29명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스트레스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은 의도적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참가자들은 먼저 편안한 환경에서 백색 소음을 들으며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 갑자기 세 명의 낯선 사람들로 구성된 패널이 들어와 무표정하게 참가자를 응시하는 가운데, 연구자는 "당신의 꿈의 직업"에 대해 5분간 즉흥 연설을 해야 하며, 준비 시간은 단 3분이라고 통보한다. 실험의 두 번째 단계는 더욱 까다로웠다. 참가자들은 2023부터 17씩 거꾸로 빼면서 계산해야 했고, 패널 중 한 명이 실수할 때마다 중단시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스트레스 반응은 더욱 명확하게 나타났다. 29명 중 한 명만이 실제로 실험실을 나가겠다고 요청했고, 나머지는 다양한 수준의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과제를 완수했다.

이 실험에 참여한 BBC 과학 전문기자 빅토리아 길(Victoria Gill)은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했다. "목 주변으로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고, 열화상 카메라는 내 얼굴이 색깔을 바꾸는 것을 포착했다. 준비되지 않은 프레젠테이션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하는 동안, 내 코는 빠르게 온도가 떨어져 열화상 이미지에서 파란색으로 변했다"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오른쪽 열화상에서 보이는 코의 온도 하락은 스트레스가 혈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발생한다. © Kevin Church/BBC
오른쪽 열화상에서 보이는 코의 온도 하락은 스트레스가 혈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발생한다. © Kevin Church/BBC

연구 결과, 29명의 모든 참가자에게서 코 온도가 3도에서 6도까지 떨어지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길 기자의 경우 2도 하락했는데, 포레스터 교수는 이를 직업적 특성과 연관 지어서 "기자이자 방송인으로서 그녀는 스트레스 상황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다. 카메라와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회복력이 높다"라라고 포레스터 교수는 분석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훈련받은 사람조차도 생물학적 혈류 변화를 보인다는 것은 이 '코 온도 하락(nasal dip)' 현상이 스트레스 상태 변화의 강력한 지표임을 시사한다는 점이다.

 

스트레스와 혈류 변화의 생리학적 메커니즘

코 온도가 떨어지는 현상은 스트레스가 우리 혈류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발생한다. 급성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 신경계는 생존을 위한 반응을 활성화하는데, 해당 과정에서 혈류가 코에서 멀어져 눈과 귀로 향하게 된다. 이는 위험을 더 잘 보고 듣기 위한 신체의 자동적 반응이며, 이러한 혈류의 재분배는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 활성화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의 일부로 알려져 있다.

포레스터 교수는 이 발견의 의미를 더 넓은 맥락에서 설명하는데, 특히 코 온도 하락으로부터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개인이 스트레스를 얼마나 잘 조절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측정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대부분의 참가자는 길 기자처럼 빠르게 회복했다. 그들의 코는 몇 분 안에 스트레스받기 전 수준으로 다시 따뜻해졌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비정상적으로 느리게 회복한다면, 이것이 불안이나 우울증의 위험 지표가 될 수 있을까? 이를 통해서 연구진들이 개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연구팀이 탐구하고자 하는 방향이다.

 

비침습적 스트레스 지수 측정의 혁신적 가능성

앞선 설명처럼 해당 연구 방법론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비침습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생리적 반응을 측정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스트레스 지수 측정 방법들은 설문지를 통한 자기보고나 혈액 검사를 통한 코르티솔 수치 측정 등이었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각각의 한계가 있다. 자기보고는 주관적이며, 혈액 검사는 침습적일 뿐만 아니라 결과를 얻는 데 시간이 걸린다.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한 방법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다. 무엇보다 이 기술은 언어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할 수 없는 대상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영유아의 스트레스 수준을 모니터링하거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환자들의 정신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측정이 가능하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하는 순간부터 회복까지의 전 과정을 연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 개인의 스트레스 반응 패턴과 회복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포레스터 교수는 이 기술을 "스트레스 연구의 게임 체인저"라고 표현했다. 이 방법이 정착된다면, 심리 치료 현장에서 내담자의 스트레스 반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개입의 효과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직장이나 학교 같은 환경에서 집단의 스트레스 수준을 모니터링하여 환경 개선이 필요한 시점을 파악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인간을 넘어 영장류의 웰빙까지

연구팀이 발견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방법이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영장류에게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열화상 카메라가 측정하는 것은 많은 영장류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신체적 스트레스 반응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외상적 환경에서 구조된 동물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웰빙을 개선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현재 침팬지와 고릴라를 포함한 대형 유인원 보호소에서 이 기술의 활용 방안을 개발하고 있다.

서섹스 대학교의 대형 유인원 웰빙 연구자인 마리안 페이슬리(Marianne Paisley)는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말할 수 없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꽤 능숙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연구의 가치를 설명한다. 즉, 구조된 유인원들이 새로운 사회 집단과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안착하는 과정에서 열화상 카메라가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구조된 침팬지들의 울타리 근처에 비디오 화면을 설치했을 때, 영상을 시청한 동물들의 코가 따뜻해지는 것을 관찰했다. © Gilly Forrester/University of Sussex
연구자들이 구조된 침팬지들의 울타리 근처에 비디오 화면을 설치했을 때, 영상을 시청한 동물들의 코가 따뜻해지는 것을 관찰했다. © Gilly Forrester/University of Sussex

그리고 연구팀은 이미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성체 침팬지들에게 아기 침팬지의 영상을 보여주면 진정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구조된 침팬지들의 울타리 근처에 비디오 화면을 설치했을 때, 영상을 시청한 동물들의 코가 따뜻해지는 것을 관찰했다. 즉, 스트레스 측면에서 아기 동물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갑작스러운 면접이나 즉석 계산 과제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페이슬리는 우리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영장류를 연구하여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받았지만 이제 우리 인류는 인간 정신 건강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므로, 아마도 그 지식을 활용하여 그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고 더 넓은 맥락에서 해당 연구의 의미를 조명했다.

 

스트레스 관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스트레스는 삶의 일부이다. 또한,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우리가 우리의 삶과 일상의 도전에 대응하고 성장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만성적이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 이 새로운 측정 방법은 해로운 수준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우리가 우리의 삶과 일상의 도전에 대응하고 성장하는 데 필요하다. © Getty Images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우리가 우리의 삶과 일상의 도전에 대응하고 성장하는 데 필요하다. © Getty Images

특히 개인의 스트레스 회복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차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개인 맞춤형 스트레스 관리 전략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회복이 느린 사람들에게는 더 적극적인 개입이나 지원이 필요할 수 있으며, 이를 조기에 파악하면 더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로 발전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BBC 기자 빅토리아 길은 자신의 경험을 "나의 작은 과학적 시련이 어쩌면 작은 방식으로나마 우리 영장류 사촌들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라고 정리하는데, 이 문장은 해당 연구의 본질을 잘 포착하고 있다. 인간의 스트레스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국 우리와 진화적으로 가까운 생명체들의 복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과학적 발견이 실제적인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10-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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