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찾기 위한 동물의 구애 행동은 놀랍도록 다양하다. 극락조라는 새는 암컷의 마음을 얻기 위해 깃털을 넓게 펼치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현란하게 춤을 춘다. 청개구리는 턱 아래의 울음주머니를 이용해 노래 실력을 자랑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곰이나 늑대같이 후각이 예민한 포유류는 체취와 페로몬으로 짝을 유인하며 자신의 번식 준비를 알리고, 청소부딱정벌레라는 곤충은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둥지를 다양한 장식물로 꾸민다.
먹이를 바치며 호감을 얻는 방식도 전형적인 전략이다. 수컷 닷거미는 곤충의 사체를 거미줄로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암컷에게 마치고, 수컷 물총새는 빠른 속도로 다이빙하여 획득한 물고기를 암컷의 부리 앞에 내려놓으며 우수한 사냥 실력을 뽐낸다. 매끈한 생선 한 점이 '나는 먹이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생존 경쟁력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꽃과 선물, 식사 대접은 생물학적 언어로 번역하면 ‘자원을 공유할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먹던 것을 토해내서 선물하는 초파리
그렇다면 본인이 방금 먹은 것은 다시 토해내서 상대에게 건네는 구애 행동은 어떨까. 어떤 수컷 초파리들은 전혀 로맨틱하게 보이지 않는 이 행동을 통하여 음식(?) 한 방울을 암컷에게 한 모금 권하고, 암컷은 이 혼인 선물(!)을 받아들임으로써 구애를 수용한다. 이는 실험실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일반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 줄여서 D. melanogaster)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D. subobscura라는 초파리 종에서만 발견되는 행동인데, 이 특이한 구애 활동의 신경유전학적 경로를 정밀하게 해부한 연구 결과가 최근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일본 나고야대학교의 루야 타나카 연구팀은 어떤 신경 회로가 이러한 수컷 초파리의 선물 구토 행위(regurgitation)를 유발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스플라이싱(splicing)이라는 유전자 후처리 과정에 주목하였다. 일반적으로 유전자는 스플라이싱 작업을 거치며 단백질을 만들어내는데, 초파리는 독특하게도 성별에 따라 각기 다른 스플라이싱 방식을 가지고 있다. 유전자를 원본 파일이라고 한다면 스플라이싱 편집 기술을 거쳐서 단백질이라는 편집본이 만들어지는데, 초파리에는 수컷형, 암컷형 편집 기술이 제각각 존재하여 동일한 유전자(원본)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편집본)도 성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연구진은 프루트리스(fruitless)라는 성결정 유전자(성별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의 수컷 특이적 단백질인 FruM이 선물 구토 행위를 촉발한다고 확인하였다. FruM을 발현하는 신경세포들 중 일부만 무작위적으로 활성화시켰을 때, 뇌 중앙부에 있는 인슐린 유사 펩타이드 분비 세포(insulin-like peptide-producing cells, IPCs)가 확인되었고, IPC를 선택적으로 활성화시키면 선물 구토 행동이 증가하고, 억제하면 줄어든 것이 관찰되었다. 또한 IPC 활성이 높은 수컷 초파리는 암컷 경쟁 구도에서 실제 교미 성공률도 높았는데, 이는 구애 행동을 위한 신경 회로가 소화작용 회로를 일부 활용하여 짝짓기 확률을 높이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FruM 과발현으로 선물 구토 행위가 다른 종에서도 발견
그렇다면 FruM을 인위적으로 발현시킨다면 구토 행위를 하지 않던 동물도 구애 행동으로써 구토 행위를 할 수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IPC에서 FruM이 발현되지 않는다고 알려진 D. melanogaster라는 초파리 종의 IPC에 FruBM(FruM의 한 종류)를 과발현 시켜보았다. 그 결과 IPC 세포가 길게 옆으로 뻗으며 구애 개시 신호를 내는 신경세포와 접촉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또한 D. melanogaster 수컷 초파리에서도 구애 행동 중 구토로 만들어진 음식물 방울이 발견되었다. IPC에서의 FruM 단백질이 특정한 구애 행위를 유발하는 스위치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해당 논문의 제목은 '성 결정 유전자 조작을 통한 선천적 구애 행동의 종간 구현(Cross-species implementation of an innate courtship behavior by manipulation of the sex-determinant gene)'이다. D. subobscura 초파리의 특이한 구애 행동을 좌우하는 단백질(FruM)이 존재하며, 해당 단백질을 D. melanogaster 초파리에 이식하자 유사한 행동 모듈이 발현되어서 '종간 구현'이라 표현된 것이다.
소화 회로를 빌려와서 본능적 행동을 구현하도록 진화
본 연구 결과는 이미 존재하던 신경 회로(소화운동 회로, 성결정 신호) 간의 연결과 재배선을 통해 기존에는 없던 특이한 행동 패턴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성결정 유전자(프루트리스)가 생식기관만이 아니라 뇌 회로의 연결 방식을 성별 맞춤으로 조정하여 구애 행동이 구현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원하는 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생식기관과는 무관한 다른 생리 회로를 빌려오는 방식으로 생명체가 진화되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번 연구 결과는 두 종의 초파리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행동에서 도출되었다는 점, IPC를 흥분시키는 분자적 매개를 밝히지 못했다는 점, 어느 시점에 어떤 돌연변이가 IPC의 FruM 발현을 유도하였는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아직 규명해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성별 및 종별에 따른 행동의 차이, 즉 본능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분자유전학적 관점에서 규명한 하나의 사례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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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5-09-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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