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인간과 동물 관계의 전환점
2025년 9월 1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교 진화과학연구소의 국제 연구팀이 지중해 남부 프랑스 지역에서 발굴된 8천 년간의 동물 뼈 화석 22만 5,780개를 분석한 결과, 인간의 개입이 동물 크기 진화에 미친 영향이 중세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연구가 밝혀낸 핵심 발견은 서기 1000년경을 기점으로 동물 크기 진화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중세 이전 약 7천 년간 야생동물과 가축은 기후 변화와 환경 요인에 따라 동조적으로 크기가 변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빙하기와 간빙기, 기온과 강수량 변화가 모든 동물에게 비슷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부터는 가축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야생동물은 작아지는 상반된 진화 경로를 걷게 되었다. 그리고 중세 시대는 인간과 동물 관계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음이 밝혀졌다. 연구를 주도한 생고고학자 알로웬 에빈(Allowen Evin) 박사는 중세와 근현대 시대(대략 서기 1000년~2000년)에 가축과 야생동물 종의 체격 진화가 분기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서식지 파괴와 선택적 번식의 상반된 결과
야생동물의 소형화와 가축의 대형화는 인간 활동의 두 가지 다른 측면에서 비롯되었다. 야생동물의 경우 중세 이후 급격한 인구 증가와 농업 확산으로 인한 서식지 손실이 주요 원인임이 밝혀졌으며, 이에 사슴, 여우, 산토끼, 토끼 등은 축소되고 파편화된 서식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작은 체격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 중세 후기부터 본격화된 집약적 사냥도 대형 개체들을 우선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소형화 압력을 가중시켰다.

반면, 가축의 경우 상황은 정반대였다. 중세 이후 농업 기술 발전과 함께 인간의 가축 관리 기술도 고도화되었다. 양, 염소, 소, 돼지, 닭 등 주요 가축들은 체계적인 선택적 번식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량되었기 때문이다. 에빈 박사는 이에 대해서 인간이 가축 집단을 통제하는 정도가 증가했고, 더 큰 전문화와 통제된 관리 체계 하에서 더욱 체계적인 선택적 번식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닭의 경우 현재 크기는 인간의 의도적 개량 없이는 절대 불가능했을 정도로 극적인 변화를 보였다는 점이다.
종별 진화 패턴이 보여주는 인간 영향력의 세분화
동물 종별 크기 변화 양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영향이 얼마나 세밀하고 의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가축 중에서는 양, 염소, 소, 돼지, 닭이 모두 지속적인 크기 증가를 보였지만, 그 정도와 속도는 각각 달랐다. 이는 각 동물이 인간 사회에서 담당하는 역할과 경제적 가치에 따라 선택적 번식의 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반면 앞선 설명대로 야생동물의 소형화는 단순한 서식지 압박을 넘어 생존 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반영하는데, 붉은여우의 경우 중세 이후 꾸준한 크기 감소를 보였으며 이는 작은 체격이 변화된 환경에서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작은 몸집은 더 적은 먹이로도 생존이 가능하고, 인간의 눈에 덜 띄며, 좁은 공간에서도 은신할 수 있는 장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흥미로운 사례로 토끼를 들 수 있다. 야생 토끼는 다른 야생동물과 마찬가지로 작아졌지만, 동시에 가축화된 토끼는 체계적인 번식을 통해 크기가 증가했다. 같은 종이라도 인간의 관리 여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진화 방향을 보인 대표적인 예로 설명된다.
지질학적 시간 관점에서 본 인간 영향의 급속한 확대
연구를 종합해 보면, 8천 년이라는 긴 시간축에서 보면 인간의 영향력 확대 속도가 얼마나 급격했는지 명확해진다. 연구진이 311개 고고학 유적지에서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 분석 결과, 중세 이전 7천 년간은 주로 자연적 기후 변화가 동물 크기 진화의 주요 동력이었다. 빙하기와 간빙기의 주기적 변화, 기온과 강수량 변동, 식생 천이 등이 야생동물과 초기 가축 모두에게 유사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중세 이후 불과 천년 간 인간의 직접적 개입이 수백만 년간 진화를 주도해 온 자연적 요인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농업 기술 혁신, 도시화 가속, 교역망 확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동물 진화에 전례 없는 압력을 가했다. 특히 선택적 번식 기술의 체계화는 자연선택을 인위선택으로 대체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에빈 박사는 지난 수천 년간 자연계에 대한 인간의 영향력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고 밝히며, 과거를 이해하고 인간이 다른 종들 및 환경과 어떻게 공진화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기원과 발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인류세(Anthropocene) 시대의 생물학적 변화가 결코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천년에 걸친 점진적 축적의 결과임을 시사한다.
현대적 의미와 시사점
연구진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는 유럽연구위원회(ERC) 지원 DEMETER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축 동식물 8천 년 변화사"를 주제로 하는 대규모 국제협력 연구의 성과인데, 이 프로젝트는 지중해 서북부 지역의 농업생물다양성 변화를 환경적·사회경제적 요인과 연관지어 분석하고 있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집약농업과 품종 표준화가 가축의 유전적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도시화와 기후변화가 야생동물 개체군에 미치는 압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연구진은 논문 말미에서 환경적 영향이 모든 종에 미치는 깊고 지속적인 영향력과 지난 천년간 인간 활동의 증가하는 영향력을 확인했다고 결론지었는데, 이는 현재 인간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의 역사적 뿌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래 환경 정책과 보전 전략 수립에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이번 연구는 단순한 고생물학적 발견을 넘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중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제6차 대멸종'과 기후변화 시대에서 인간 활동이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의 역사적 뿌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집약농업과 품종 표준화가 가축 유전다양성에 미치는 위험성, 그리고 급속한 도시화가 야생동물에 가하는 압박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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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9-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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