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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청년들이 외롭다? 변화하는 사회구조가 낳은 새로운 정신건강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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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사회구조가 낳은 새로운 정신건강 위기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프리카 청년들이 외롭다니? 최근 대략 10~20여년 사이에 선진국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도 외로움 감정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되고 있지만, 이처럼 외로움은 오랫동안 서구 선진국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외로움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개인주의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러한 통념을 뒤집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청년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023년 여론조사 기관 갤럽과 메타(페이스북 모회사)가 142개국 약 14만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사회적 연결 조사에서는 전 세계 인구의 24%가 상당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지역의 외로움 수준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빈곤이나 질병, 분쟁 같은 다른 문제들이 더 시급할 것이라는 기존 인식과는 완전히 상반된 결과였다.

 

통계가 보여주는 놀라운 현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2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16% - 6명 중 1명 꼴로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과 젊은 성인층에서 이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아프리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03년부터 2018년까지 70개국 24만 8천 명의 청소년(13-17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국제 연구에서는 전체 외로움 유병률이 11.7%로 나타났지만, 지역별 분석에서는 아프리카와 동지중해 지역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1.4배 높은 외로움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지역별 분석에서는 아프리카와 동지중해 지역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 Getty Images
지역별 분석에서는 아프리카와 동지중해 지역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 Getty Images

WHO 사회적 연결 위원회의 학술 자문위원인 줄리안 홀트-런스태드는 이에 대해서 이것은 단순히 북미나 유럽, 또는 부유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며,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는 다른 문제들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추정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외로움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심리학과 약리학을 공부하는 22세 히워트 다니엘의 이야기는 이러한 통계를 생생하게 뒷받침한다. 2세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외동으로 자란 그는 대학에 와서야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외로움에 시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생계를 위해 바쁜 어머니와 경제적 지원에만 집중한 친척들 사이에서, '오늘 하루는 어땠니? 방과 후에 뭘 할 계획이니? 무슨 고민이 있니?'라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또한, 물질적 지원은 받았지만 정서적 지원은 전무했다고 밝히며, 외로움을 호소하면 '무슨 외로움이냐? 우리가 여기 있지 않냐'는 반응만 돌아왔다고 감정을 토로했다.

 

도시화와 가족구조 변화가 낳은 개별화

아프리카 청년들의 외로움 증가에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전통적 가족 및 공동체 구조의 해체가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탄자니아의 청년 정신건강 옹호활동가 아마니 마사울레는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그녀는 우리는 과거 공동체적으로 살았지만, 도시화와 디지털화가 우리를 개인주의적으로 살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문제를 분석했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 과학 연구들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외로움의 밀접한 관계를 입증하고 있다. 2025년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된 대규모 연구에서는 도시화가 이웃 간 결속력 약화와 외로움 증가를 매개로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밀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생리적, 심리적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과 단절하는 자기방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필요에 의한 노동 이주는 가족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 Getty Images
경제적 필요에 의한 노동 이주는 가족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 Getty Images

토고의 정신과 의사 소니아 카네카토우아는 현대 아프리카 가정의 변화된 모습을 과거 존재했던 가족생활의 질이 사라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일하러 뛰어다니고, 세상은 시속 160km로 돌아가며(그만큼 매우 빠르다는 뜻), 모든 것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경제적 필요에 의한 노동 이주는 가족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일터를 찾아 도시로 이주한 청년들은 고향의 가족들과 보낼 시간이 줄어들고, 새로운 도시에서 가족을 꾸린다 해도 기존의 확장가족 네트워크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남아프리카에서 실시된 종단 연구는 이러한 가족 해체가 우울증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인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실업 상태의 청년들에게는 이중고가 된다. 마사울레는 빈곤과 실업도 외로움에 기여한다. 아프리카의 많은 청년들이 실업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할 일이 없다 보니 다른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된다고 지적한다.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적 편견

아프리카에서 외로움이 더욱 깊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이다. 나이지리아 정신과 의사 지브릴 압둘말릭은 정신건강은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금기시되며 무지로 인해 방해받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이상한 질병이나 영적 공격, 또는 악마적인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가족 구성원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낙인은 특히 남성 청년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 Getty Images
이러한 낙인은 특히 남성 청년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 Getty Images

이러한 낙인은 특히 남성 청년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마사울레에 따르면 특히 남성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약함의 표시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한, 일부는 외로움이 자살을 생각할 정도에 이를 때까지 스스로를 고립시킨다고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 8개국 1만 9천 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2022년 연구에서는 외로움과 사회적 지지 부족이 자살 충동과 강한 연관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가족의 체면을 보호하기 위해 정신질환을 앓는 구성원을 감금하는 사례까지 보고된다는 점이다.

 

디지털 시대의 역설적 고립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이 아프리카 청년들의 외로움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전 세계 37개국을 대상으로 한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연구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8년 사이 스마트폰 보급률과 인터넷 사용률이 높아질수록 청소년의 학교 외로움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대학 환경에서는 오프라인에서조차 깊은 관계 형성이 어려운 과제가 된다. © Getty Images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대학 환경에서는 오프라인에서조차 깊은 관계 형성이 어려운 과제가 된다. © Getty Images

아프리카에서는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히워트 다니엘이 경험한 바와 같이,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대학 환경에서는 오프라인에서조차 깊은 관계 형성이 어려운 과제가 된다. 그들은 모두 다른 배경, 다른 문화, 다른 언어에서 왔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된다. 물론, 기술이 항상 부정적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ICT 기반 개입 연구들에 따르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위해 소셜미디어를 활용할 때는 오히려 외로움이 감소하고 주관적 웰빙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용 방식에 있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전통의 지혜와 현대적 접근의 결합

아프리카 청년들의 외로움은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위기이며, 동시에 전 인류가 직면한 '외로움의 전염병'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전문가들은 아프리카의 외로움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전통적 공동체 가치의 복원과 현대적 정신건강 접근법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특히, 압둘말릭은 아프리카 고유의 강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프리카의 강한 가족 결속력은 절대 버려서는 안 될 자산이며, 가족과 부모 역할을 강화해야 하고, 특히 젊은 부모들은 자녀들과 소통할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육아를 가사도우미나 교사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공공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할 충분한 자원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지역 사회 기반의 해결책이 더욱 중요해진다. © Getty Images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공공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할 충분한 자원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지역 사회 기반의 해결책이 더욱 중요해진다. © Getty Images

카네카토우아는 세계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전통적 가치들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특히, 이 글로벌 틀에 맞추려 하면서 우리는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일부 전통적 방식들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동시에 현실적 제약도 인정해야 한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공공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할 충분한 자원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지역 사회 기반의 해결책이 더욱 중요해진다.

히워트 다니엘은 실질적 대안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안하는데, 대학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단계에서부터 멘토링 활동이 필요하며, 본인 같은 대학생이 12학년 여학생을 멘토링한다면, 그들이 대학 진학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외로움을 미리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표했다. 실제로 남아프리카에서 HIV와 함께 살아가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최근 연구는 이러한 접근법의 가능성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룹 기반의 동료 지원 프로그램이 사회적 연결감과 소속감을 높이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통적 공동체 가치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도전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한 과제라고 분석된다. 하지만 이는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배워야 할 교훈을 담고 있다. 인간의 근본적 욕구인 '연결'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21세기의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에서, 아프리카의 경험과 이의 극복은 인류에게 또 다른 교훈을 선사할 것이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09-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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