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모기와의 ‘전쟁’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지만 올해는 달랐다. 기록적인 무더위로 입 돌아간 모기는커녕 모기 출현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모기 개체 감소와 활동지수 하락은 일시적 현상일 뿐, 기온이 점차 내려가면서 가을 모기의 활동이 급증할 수 있으니 방심해서는 안된다.
모기는 여전히 인류에게 위험한 해충 중 하나다.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등 치명적인 질병을 전파하는 이들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2023년 기준 2억 6300만 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되고 이 중 59만 7000명이 사망했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기존 살충제에 저항성을 가진 모기들의 급격한 증가다. 말라리아 매개체인 아노펠레스 모기의 경우 말라리아 유행 지역의 90% 이상 국가에서 최소 한 가지 살충제에 저항성을 가진 개체가 발견됐고,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27개국에서는 피레스로이드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의 일시적 평온함에도 불구하고 모기 박멸에 대한 연구는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가운데 희귀 유전질환 치료제가 새로운 모기 박멸에 유효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혈액 한 모금이 모기에게 ‘독배’가 되는 물질
자카리 스타브로우-다우드(Zachary T. Stavrou-Dowd) 리버풀 열대의학원 연구원과 연구팀은 ‘니티시논’이 모기에 치명적인 살상 효과를 냈다는 실험 결과를 Parasites & Vectors 저널에 발표했다.
니티시논(Nitisinone)은 호주 병솔풀에서 자연적으로 발견되는 독소에서 추출한 화합물이다. 처음에는 제초제로 개발됐다가 20세기 후반에 티로신혈증 1형과 알캅톤뇨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2002년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이 물질은 인체에서 4-HPPD 효소를 억제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HPPD는 티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데,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티로신이 무해한 물질로 분해된다. 하지만 유전적 결함으로 이 효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독성 중간 산물들이 체내에 축적되어 간 손상이나 관절 질환을 일으킨다. 니티시논은 이 효소를 일부러 차단해 독성 물질 생성 자체를 막는 방식으로 희귀질환을 치료한다.
연구팀은 니티시논을 포함한 4가지 HPPD 억제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니티시논만이 유일하게 모기 살상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실험은 혈액을 섭취한 아노펠레스 감비아 모기를 125mg/m² 농도의 니티시논이 처리된 유리판에 30분간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24시간 후 100% 사망률을 기록했다. 반면 같은 화학 계열의 메소트리온, 설코트리온, 템보트리온은 모두 80% 이하의 낮은 사망률을 보였다.
연구의 교신저자인 리 라퓨즈 하인스(Lee Rafuse Haines) 리버풀 열대의학원 연구원은 "니티시논은 혈액을 섭취한 모기의 발을 통한 접촉만으로도 강력한 살충 효과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접촉만으로도 모기 살충 효과 나타나
혈액을 섭취하지 않은 모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니티시논은 효과를 보였다. 기존 연구에서 모기 살충은 혈액 섭취가 필수조건이라고 여겨졌던 것과는 다른 결과다.
혈액 없이도 니티시논이 처리된 표면에 단순 접촉만으로 모기 사망률이 증가했는데, 연구진은 니티시논이 모기의 발을 통해 체내로 흡수되어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더 정확한 효능 측정을 위해 병 생물검정법(Bottle Bioassay)을 실시했다. 이 방법은 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표준 살충제 효능 평가법으로, 모기를 살충제가 코팅된 병 안에 넣고 사망률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모기 절반을 죽이는 데 필요한 양(LD50)은 20.22μg/병이었고, 95%를 죽이는 데 필요한 양(LD95)은 25.73μg/병이었다. 실제 방역 현장에서 사용할 기준 농도는 안전 여유분을 고려해 77.19μg/병으로 정했는데, 이는 95% 치사량의 약 3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살충제 저항성 모기? 예외 없어
연구팀은 살충제 저항성 모기에서도 니티시논의 효과를 검증했다. 살충제에 쉽게 죽는 키수무(Kisumu)모기와 약물이 잘 안 듣는 저항성 모기인 티아살레(Tiassalé 13) 계통을 대상으로 비교 실험한 결과, 125mg/m² 농도에서 24시간 후 모든 종의 모기가 100% 사망률을 보였다. 5배 낮은 농도인 25mg/m²에서도 키수무 98.9%, 티아살레 92.5%의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
실험 범위를 넓혀 말라리아를 전파하는 아노펠레스 감비아뿐만 아니라 뎅기열과 지카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이집트숲모기와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집모기에도 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살충제 저항성을 가진 집모기 무헤자 계통은 125mg/m²에서 24시간 후 81.6%, 72시간 후 94.7%의 사망률을 보였고, 이집트숲모기 뉴올리언스 계통은 48시간 후 84.8%, 72시간 후 97.0%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72시간 후에도 모든 농도에서 계통 간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살충제에 저항성을 가진 모기도 니티시논 앞에서는 속수무책임을 의미한다.
알바로 아코스타-세라노(Álvaro Acosta-Serrano) 박사는 "니티시논은 현재 사용되는 살충제와는 완전히 다른 작용 방식으로 혈액 소화 과정을 특이적으로 표적한다"며 "주요 질병 매개 모기 3종 모두에 광범위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니티시논이 기존 모기장이나 장기 지속 살충 처리 모기장(LLIN)과 결합하여 사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피레스로이드 저항성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지역에서 전통적인 모기 방역법을 대체할 혁신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인스 연구원은 "니티시논은 티로신 분해 경로의 HPPD 효소를 억제하는 새로운 작용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 통합 벡터 관리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표적 부위 돌연변이나 대사 적응을 통한 저항성 진화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련 논문 바로가기:
https://parasitesandvectors.biomedcentral.com/articles/10.1186/s13071-025-06939-0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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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9-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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