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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정회빈 리포터
2025-08-22

새의 성염색체 균형을 유지하는 미스터리가 풀리다 수컷 조류의 성염색체 발현을 조절하는 마이크로RNA 존재와 작용 기작을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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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XY 성결정계를 따른다. ⒸGetty Images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XY 성결정계를 따른다. ⒸGetty Images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별이 결정된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XY 성결정계(sex-determination system)를 사용하는데 세포에 있는 성염색체의 조합이 XX면 암컷, XY면 수컷으로 분류된다. 다른 성결정계를 사용하는 종들도 있는데 메뚜기, 귀뚜라미와 같은 종들은 XO 체계를 사용한다. 이들은 암컷의 경우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X염색체가 2개 이지만(XX), 수컷은 Y염색체 없이 X염색체 하나만 존재하여 'XO'로 나타낸다. 말 그대로 성염색체를 X염색체 한 개만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돌연변이로 인하여 X염색체를 1개만 가지고 태어난다면 (실제로 이러한 경우가 있는데 이를 터너증후군이라 한다) 성염색체 표현형은 XO이지만 XY성결정계를 따르므로 결국은 여성이다. 이처럼 성염색체의 조합이 곧 성별을 결정하는 기준이며, 그 조합이 의미하는 성결정계는 종마다 다르다.

 

조류의 독특한 성결정 방식

조류는 이와는 또 다른 ZW 성결정계를 따른다. 닭, 참새와 같은 새들의 경우 암컷은 ZW(서로 다른 성염색체), 수컷은 ZZ(같은 성염색체 두 개)로 표현된다. 이는 인간의 XY 시스템과는 반대되는 방식이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조류의 W 염색체는 많은 유전자를 잃어 기능이 퇴화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포유류의 Y염색체도 유전자 손실을 겪었는데, 지난 수천만 년 동안 10여 개의 핵심 유전자들이 보존되었고 그 결과 Y염색체의 기능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참새, 닭과 같은 조류는 포유류와 다른 독특한 성결정계를 따른다. ⒸGetty Images
참새, 닭과 같은 조류는 포유류와 다른 독특한 성결정계를 따른다. ⒸGetty Images

한가지 주목할 점은 성염색체에는 성별 결정 이외에도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유전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발현 양이 성별에 따라 2배씩 차이가 날 수도 있지 않을까? 포유류를 예로 들면, 암컷은 X염색체를 2개, 수컷은 1개만 가지고 있으므로, 수컷과 암컷의 X염색체 관련 유전자 발현량이 2배씩 차이가 나게되고 그 결과 생리적으로 큰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성별에 따른 생리적 균형을 맞추는 유전자량 보정

이런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유전자량 보정(dosage compensation)'이다. 마치 오케스트라 합주에서 바이올린이 한 대만 있는 그룹(수컷)에 비해 두 대가 있는 그룹(암컷)은 소리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불륨 다이얼을 조정해주는 것이다. 포유류는 유전자량 보정을 위해 암컷에서 두 개의 X 염색체 중 하나를 완전히 잠재우는 방법을 사용한다. 바이올린 두 대 중 한 대의 연주를 아예 멈추는 것이다. X염색체 위에 있는 XIST라는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비암호화 RNA가 X염색체를 감싸면서 통째로 불활성화시킨다. 현미경으로 보면 이 불활성화된 X염색체가 작은 덩어리처럼 보이는데, 1949년 발견자인 머레이 바(Murray Barr)의 이름을 따서 ‘바소체(Barr body)’라고 부른다. 그 결과 암컷과 수컷 모두에서 X염색체 관련 유전자의 발현량은 비슷해진다.

바이올린 수가 많아지면 볼륨을 낮추어야 균형이 맞는다. ⒸGetty Images
바이올린 수가 많아지면 볼륨을 낮추어야 균형이 맞는다. ⒸGetty Images

반면, ZW 성결정계를 사용하는 조류의 경우 ZZ인 수컷은 Z염색체를 두 개 가지므로 암컷(ZW)보다 Z염색체 유전자 발현량이 높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수컷에서 유전자량 보정 기작이 작동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포유류에서처럼 잘 규명되어 있지 않았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는 XIST 유전자가 작동해 강력한 염색체 단위의 불활성화가 일어나지만, 조류에서는 염색체 전체를 억제하는 강한 스위치가 관찰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조류의 유전자량 보정 기작을 밝힌 연구가 최근 네이처에 게재되었다.

 

마이크로RNA가 조류의 유전자량을 조절하는 기작 규명

연구진은 마이크로RNA(miRNA)의 한 종류인 miR-2954에 주목했다. 마이크로RNA는 유전자의 설계도 역할을 하는 메신저RNA(mRNA)와 결합하여 이를 방해하는 매우 작은 조절 분자이다. 마이크로RNA는 세포 안에서 유전자 발현량을 섬세하게 조절하며, 다양한 생명 현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연구진은 과거 연구 중 miR-2954가 수컷 닭(ZZ)에서 특히 많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Z염색체에 위치한 일부 유전자들의 발현량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miR-2954가 조류의 유전자량 보정에 중요한 조절자로 작용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CRISPR-Cas9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miR-2954를 제거한 닭 배아를 제작하였다. (CRISPR-Cas9은 유전체에서 원하는 특정 DNA 조각을 정확하게 잘라내거나 수정할 수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다)

miR-2954를 CRISPR-Cas9으로 제거한 결과 수컷 닭 배아는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다. ⒸNature
miR-2954를 CRISPR-Cas9으로 제거한 결과 수컷 닭 배아는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다. ⒸNature

실험 결과, miR-2954가 제거된 수컷 배아(ZZ)는 초기 발생 과정에서 더 이상 발달하지 못한 반면, 같은 유전자 결손을 가진 암컷 배아(ZW)는 정상적으로 발달해 생존하였다. 추가 분석을 통해 연구진은 수컷 배아에서 Z염색체 내 유전자들 중 발달에 필수적이며 발현량에 민감(dosage-sensitive)한 유전자들이 지나치게 높게 발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들 유전자에는 miR-2954와 결합할 수 있는 염기서열들이 존재했는데, 이는 평소 miR-2954가 이 유전자들의 발현을 억제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즉, miR-2954가 수컷에서만 선택적으로 작동하여 Z염색체에 있는 발달에 필수적인 유전자들의 발현을 미세하게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바이올린 두 대의 음량을 각각 절반으로 낮추어 한 대처럼 들리게 만드는 것과 같다. 또한 닭뿐 아니라 여러 조류 종에서 miR-2954와 그 표적 유전자 서열이 진화적으로 보존되어 있어서, 이러한 조절 메커니즘이 조류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뒷받침하였다.

조류에서는 발현량에 민감한 유전자만 선택적으로 미세 조절된다. ⒸNature
조류에서는 발현량에 민감한 유전자만 선택적으로 미세 조절된다. ⒸNature

 

섬세한 조절로 균형을 맞추는 생명의 전략

이번 연구는 조류가 성염색체 유전자 발현량의 균형을 맞추는 독특한 방식을 밝히며 유전자량 보전 기작에 대한 이해를 한층 넓혔다. 포유류에서는 염색체 하나를 통째로 잠재우는 방식이 사용되었지만, 조류는 유전자량에 민감한 일부 유전자들만 선별적으로 표적하여 세밀하게 줄이는 미세조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절 기작의 진화적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유전자량에 민감한 유전자들의 과발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miR-2954와 같은 마이크로RNA 기반의 조절 시스템이 조류 외 다른 종에도 존재하는지,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조절 전략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도 앞으로의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될 전망이다.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A male-essential miRNA is key for avian sex chromosome dosage compensation, Fallahshahroudi et al., 2025, Nature

정회빈 리포터
acochi@hanmail.net
저작권자 2025-08-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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