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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정회빈 리포터
2025-07-29

암세포가 흘린 DNA 조각으로 췌장암을 조기에 진단하다 혈중 DNA 조각을 정밀 분석하여 췌장암을 높은 정확도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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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서 침묵의 암으로도 불린다 ⒸGetty Images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서 침묵의 암으로도 불린다 ⒸGetty Images

다양한 종류의 암 중에서도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어렵고 진행 속도가 빠르며 치료가 쉽지 않은 대표적인 난치성 암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의 전체 암 사망 원인 중 췌장암은 5위를 차지하였으며, 5년 생존율은 16.5%에 불과하여 주요 10대 암종 중 가장 낮은 생존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가 나타나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췌장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 명확한 진단 방법이 부재하며, 암세포가 주변 조직으로 쉽게 침투하는 성질 때문에 침묵의 암으로도 불린다.

이처럼 췌장암은 발견되었을 때 이미 손쓰기 어려운 정도로 진행되어 있다는 특성 때문에 췌장암을 조기에 진단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현재까지는 혈액에 존재하는 CA19-9(carbohydrate antigen 19-9)와 CEA(carcinoembryonic antigen) 같은 단백질들이 췌장암 진단의 바이오마커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바이오마커는 민감도가 낮고, 췌장암이 아닌 다른 질환에서도 수치가 높아지는 등 정확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가령 CA19-9는 전체 췌장암 환자의 10%에서는 아예 분비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으며 간질환이나 담도 질환 등에서도 수치가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되었다.

 

암을 식별하는 혈액 속 유전자 조각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혈액 내 DNA(cell-free DNA, cfDNA)를 활용하여 췌장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저널에 발표되었다. cfDNA는 혈액 내에 존재하는 유전자 조각으로 주로 혈액 세포가 자가 사멸을 겪으며 방출되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최근에는 암세포도 cfDNA의 주요 발원지로 밝혀졌다.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빠르게 증식하고 사멸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많은 cfDNA가 혈중으로 유입되고, 그로 인해 암세포의 유전자 변이, 세포사멸 패턴, 염색질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바이오마커로 주목받고 있다.

혈중 유전자 조각의 분석으로 췌장암의 예측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Getty Images
혈중 유전자 조각의 분석으로 췌장암의 예측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Getty Images

중국 푸단 대학교의 왕훙양 박사 연구팀은 cfDNA를 분석할 수 있는 네 가지 방법들을 함께 사용하여 췌장암 유래 cfDNA를 특이적으로 구별하였다. 

첫 번째 방법은 DNA 조각의 길이를 측정하는 것인데, 암세포에서 나온 cfDNA는 정상세포보다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는 DNA의 끝부분에 있는 염기서열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다. 세포 사멸 과정에서 효소가 DNA를 자르는 방식에 따라 염기서열 패턴이 달라지는데, 암세포에서 유래된 cfDNA의 특이 패턴을 파악하였다. 

세 번째는 뉴클레오솜 지문(nucleosome footprint) 탐색 방법이다. DNA는 세포 내에서 길게 펼쳐져 있기보다는 히스톤 단백질이라는 구조체에 감겨져 있는데, 이를 뉴클레오솜이라 한다. 따라서 cfDNA의 절단 위치는 뉴클레오솜 분포를 반영하고 세포의 유형과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유전자의 복제 수 (copy number) 변화를 측정하였는데, 이는 암세포에서 흔히 나타나는 유전체의 불안정성을 반영한다.

암환자의 cfDNA는 길이가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Nat Commun
암환자의 cfDNA는 길이가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Nat Commun

 

네 가지 유전자 분석법을 합쳐서 만든 새로운 췌장암 진단 지표

연구진은 이 네 가지 분석 방법을 통합하여 각 환자의 cfDNA에서 도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PCM(Pancreatic Cancer Marker) score라는 종합 진단 점수를 산출하였다. 창하이병원과 칭다오대학병원, 상둥대학병원 등에서 모집한 코호트 환자들을 대상으로 PCM score 모델의 성능을 확인한 결과, AUC(Area Under the Curve) 값이 0.97 이상으로 매우 높은 정확도를 나타냈다. (AUC는 진단의 정확도를 나타낸 곡선 그래프의 아래 면적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0.9 이상이면 매우 좋은 정확도를 의미한다) 또한 초기 단계의 췌장암 환자를 건강한 사람들과 구분하였을 때 AUC 0.994를 기록하여 조기 진단 역시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이는 기존 바이오마커인 CA19-9 보다 현저히 우수한 성능을 의미한다. PCM score와 CA19-9를 결합한 모델에서는 단일 지표보다 더 높은 진단 정확도를 보임으로써 향후 임상 적용에서 상호 보완적 접근이 가능함을 시사하였다.

네 가지 cfDNA 분석법을 합친 결과가 개별 분석 방법보다 췌장암을 더 정확히 진단하였다 ⒸNat Commun
네 가지 cfDNA 분석법을 합친 결과가 개별 분석 방법보다 췌장암을 더 정확히 진단하였다 ⒸNat Commun

 

췌장암 조기 진단의 가능성, 그러나 검증은 더 필요

이번 연구에서는 췌장암을 진행 단계에 따라 다섯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하여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단순히 췌장암 여부를 진단하는 것을 넘어 질환의 정도에 따른 민감도 및 특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험에 참여한 환자들이 중국 내 병원에서 모집된 만큼 서구권을 포함한 다양한 인종과 환경을 반영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은 한계이다. 실제 임상에서 널리 활용되기 위해서는 지리적, 인구학적 다양성을 반영한 연구 설계가 요구될 것이다.

새로운 바이오마커 발견과 분석법 개발을 통해 췌장암도 조기 진단이 가능할 것이다 ⒸGetty Images
새로운 바이오마커 발견과 분석법 개발을 통해 췌장암도 조기 진단이 가능할 것이다 ⒸGetty Image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는 cfDNA를 활용하여 기존 바이오마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된 진단법을 개발하였으며, 이를 통해 조기 췌장암을 높은 정확도로 구분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조기 발견이 곧 생존율을 높이는 핵심이라는 진리는 췌장암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두려운 질병으로만 여겨졌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앞으로는 췌장암의 조기 진단도 더 이상 꿈이 아닐 수 있다.

정회빈 리포터
acochi@hanmail.net
저작권자 2025-07-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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