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 최고의 살인 무기: 알광대버섯이 드러낸 위험성
호주 법정에서 한 여성이 독버섯을 이용해 가족 4명을 살해하려 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유죄 판결로 막을 내렸다. 에린 패터슨은 2023년 가족 모임에서 알광대버섯(학명: Amanita phalloides)이 포함된 음식을 고의로 제공해 3명을 살해하고 1명의 살해를 시도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 사건을 넘어, 자연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소 중 하나인 알파-아마니틴의 무서운 위력 그리고 버섯 중독의 위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알광대버섯은 하얀 색깔과 평범한 외형을 띄고 있음과 대비되는 맹독이 있기에 '죽음의 모자'라고 불리는데, 전 세계 버섯 중독 사망 사례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가장 치명적인 버섯 중 하나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흰색 버섯과 구별하기 어려워 더욱 위험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독성 메커니즘은 현대 생화학이 밝혀낸 가장 정교하고 치명적인 생물학적 무기 중 하나로 해석된다. 패터슨의 사건은 이러한 자연의 독성이 어떻게 인간의 악의와 만날 때 완전범죄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사례이기도 하다.
생화학적 완전범죄의 메커니즘
알광대버섯의 치명적 독성은 알파-아마니틴(α-amanitin)이라는 고리형 옥타펩타이드에서 나온다. 이 분자는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정교한 생화학 무기로, 세포의 핵심 기능을 교란하여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알파-아마니틴의 독성 메커니즘은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다. 이 독소는 진핵세포의 RNA 중합효소 II(RNA polymerase II: 모든 진핵세포에서 DNA로부터 mRNA를 합성하는 핵심 효소)에 극도로 강한 특이적 결합력을 보이며, 연구마다 다소 다르지만 몇몇 실험에서는 결합상수(Kd)가 10의 -9승 M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알파-아마니틴이 이 효소와 결합하면 새로운 단백질 합성이 완전히 차단된다. 세포는 지속적으로 단백질을 합성해야 생존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이 멈추면 간세포부터 시작해서 신장, 심장 등 주요 장기의 세포들이 차례로 죽기 시작한다. 특히 간은 해독 기능을 담당하면서 독소의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장기로, 알파-아마니틴에 노출되면 간세포 괴사가 급속히 진행된다.

더욱 교묘한 것은 독성 발현 시간이다. 알광대버섯을 섭취한 후 최소 6시간, 때로는 24시간까지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시간 동안 독소는 혈류를 통해 전신으로 퍼져 각 장기에 도달하여 세포 파괴 작업을 시작한다. 초기에는 설사와 복통 정도의 가벼운 위장관 증상만 나타나다가 일시적으로 호전되는 듯한 '거짓 회복기'를 거친다. 하지만, 섭취 4-5일 후부터 간부전과 신부전이 본격화되고, 일주일 이내에 전신 장기 부전으로 사망에 이른다.
이러한 지연성 독성은 범죄에 악용되기 완벽한 조건을 제공한다. 피해자는 독을 섭취한 후에도 한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게 되고, 이때는 이미 위세척 같은 응급조치가 무의미한 상태가 된다. 패터슨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은 점심 식사 후 몇 시간 동안은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고,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독소가 전신에 퍼진 후였다.
자연이 만든 열에 강한 독소
알파-아마니틴의 또 다른 무서운 특성은 열에 대한 안정성이다. 일반적인 요리 온도에서는 독성이 전혀 감소하지 않는다. 30분간 끓여도 독소의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장시간 가열하면 분자 구조가 변화하기는 하지만 독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는 알광대버섯이 실수로 요리에 섞여 들어가서 오랜 조리 시간을 거치더라도 안전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조리 방법에 따라 독소 농도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구이나 튀김보다는 삶기는 방법이 독소를 가장 많이 제거하는 방법이지만, 이는 독소가 물에 용해되어 국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물까지 함께 섭취하는 요리라면 결국 동일한 양의 독소를 섭취하게 된다. 즉, 어떤 조리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알광대버섯의 안전한 섭취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독소의 치사량도 극미량이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체중 1kg당 100μg의 알파-아마니틴이 반수치사량(LD50)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성인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50g의 신선한 알광대버섯 3개 정도만 (실제 치사량은 개체차가 크며, 이보다 적은 양도 치명적일 수 있음) 섭취해도 치명적일 수 있다. 이는 다른 독성 물질과 비교해도 극도로 낮은 수치로, 자연계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오인하기 쉬운 치명적 위장술
알광대버섯의 가장 큰 위험성 중 하나는 앞선 설명대로 매우 평범하게 생긴 외형으로 인한 식용 버섯과의 구별이 어렵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흰색 갓과 둥근 모양은 많은 식용 버섯들과 유사하여 일반인이 육안으로 구별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버섯 식별에는 갓(모자 부분), 주름이나 포자가 있는 하부 구조, 그리고 줄기(자루) 등 여러 부위의 정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시드니 식물원의 곰팡이 전문가이자 수석 과학자인 브렛 서머렐 박사는 알광대버섯은 냄새가 나쁘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건조시키지 않는 한 빠르게 매우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상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선한 상태에서는 이런 특징적 냄새도 뚜렷하지 않아 여전히 식별이 어렵다.
패터슨은 처음에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버섯이라고 주장했다가 나중에 아시아 식료품점에서 샀다고 진술을 바꿨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해당 매장들에서 독버섯이 판매된 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최종적으로는 직접 채취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확한 채취 장소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으며 배심원단은 이토록 변화하는 진술을 신빙성 없다고 판단했다.

참고로 아마니타 속(Amanita genus) 버섯들은 대부분 독성을 가지고 있다. 동화에 등장하는 빨간 바탕에 흰 점박이의 광대버섯(fly agaric)도 같은 속으로, 알광대버섯의 사촌격이다. 하지만 일부 아마니타 속 버섯은 식용 가능하기도 하여 전문가가 아닌 이상 구별이 매우 위험하다. 이 때문에 전문 균류학자의 지도 없이는 야생 버섯 채취를 무조건 삼가는 것이 안전하다.
상업적 재배 불가능성과 외래종 문제
하지만 알광대버섯이 상업적으로 재배되어 슈퍼마켓에 판매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는 이 버섯의 독특한 생태적 특성 때문인데, 알광대버섯은 균근성(mycorrhizal) 버섯으로, 참나무와 너도밤나무의 뿌리와 공생 관계를 맺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버섯은 나무뿌리로부터 영양분을 얻고, 대신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상호 의존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알광대버섯은 반드시 참나무나 너도밤나무 밑에서만 자랄 수 있다.

상업적 버섯 재배는 고도로 통제된 환경에서 포자를 배양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나무가 전혀 없는 이런 환경에서는 알광대버섯이 자랄 수 없다. 따라서 서머렐 박사의 말처럼 알광대버섯이 상점에서 판매되는 버섯에 섞여 들어갈 가능성은 "솔직히 말해서 터무니없다"고 할 수 있다.
호주에서도 알광대버섯은 외래 침입종이다. 참나무와 너도밤나무 모두 호주 고유종이 아니며, 19세기 유럽에서 도입되었다. 참고로 정확한 도입 및 발견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알광대버섯의 첫 발견은 1960년대 즈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시드니를 비롯한 호주 주요 도시의 일부 지역에서 참나무 아래 알광대버섯이 자라고 있어 공중보건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호주의 균류학자들은 공중보건 관점에서 일부 지역의 참나무 제거를 논의하고 있다. 서머렐 박사 역시 시드니에서도 가능하다면 공중보건 위험 관점에서 일부 교외 지역의 참나무 제거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외래 참나무를 제거하면 버섯 중독의 주요 원인을 없앨 뿐만 아니라 호주 고유 식물이 자랄 공간도 확보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법 개발과 미래 전망
가장 큰 문제는 오랫동안 알광대버섯 중독에 대한 특효 해독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치료법은 위세척, 활성탄 투여, 수액 공급 등의 지지요법과 함께 실리빈(silibinin)이나 페니실린 같은 약물을 사용하는 정도였는데, 중증의 경우 간이식이 유일한 생명 구조 방법이었다.
하지만 최근 획기적인 발견이 있었다는 희소식이 있었다. 2023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인도시아닌 그린(indocyanine green, ICG)이라는 기존 의료용 염료가 알광대버섯 중독의 해독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CRISPR 기술을 이용해 알파-아마니틴에 저항성을 보이는 세포를 찾던 중 STT3B라는 단백질이 독성 발현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STT3B는 N-당화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로, 이 단백질이 없으면 세포가 알파-아마니틴의 독성에 저항할 수 있다. 연구팀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약물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결과 인도시아닌 그린이 STT3B를 억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세포 실험, 간 오르가노이드, 그리고 마우스 실험에서 인도시아닌 그린은 알파-아마니틴의 독성을 효과적으로 차단했고, 동물의 생존율을 크게 향상시켰다.
참고로 인도시아닌 그린은 이미 간 기능 검사나 안과 검사에서 널리 사용되는 안전한 염료로, 임상 적용이 비교적 용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발견은 지금까지 치료법이 제한적이었던 독버섯 중독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공한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필요하며, 투여 시기와 용량 등에 대한 추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제한점이 있다.
한편 알파-아마니틴의 정밀한 독성 메커니즘이 역설적으로 암 치료제 개발에도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사뭇 놀라운 사실이다. 이는 항체-약물 접합체(antibody-drug conjugate, ADC) 기술을 이용해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표적 치료제로 개발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자연계의 치명적인 독이 인류의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생명과학의 아이러니한 면모를 보여준다.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Synthesis of the Death-Cap Mushroom Toxin α-Amanitin (독우산광대버섯 독소 α-아마니틴의 합성)", Matinkhoo et al. 201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9-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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