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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년 전 누군가는 사후세계를 위해 치즈를 준비했다? 고대 토기가 밝혀낸 신비로운 치즈 제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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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년 전 누군가는 사후세계를 위해 치즈를 준비했다?

최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타클라마칸 사막 가장자리에 위치한 샤오허 묘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미라들의 목 주변에서 3,500년 된 치즈가 발견되었다.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치즈 샘플로 고대인들이 유제품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로 여겨진다. 

이 발견으로 고대인들이 발효 과정의 핵심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Yimin Yang
이 발견으로 고대인들이 발효 과정의 핵심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Yimin Yang

고고학자들이 이 고대 치즈를 분석한 결과, 이는 단순한 보존식품이 아니라 발효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케피어 스타터 그레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고대인들이 사후세계에서도 치즈를 만들 수 있도록 필수적인 재료를 함께 매장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발견은 유제품이 단순한 식량을 넘어 고대 문명에서 갖는 문화적, 종교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유제품 '혁명'

사실 인류가 언제부터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는지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여러 고고학적 증거들은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이 우유를 소비했음을 보여준다. 세계 각지에서 발굴된 고대 토기 잔여물의 지방산 탄소 동위원소를 연구한 결과 그 안에서 우유 잔여물이 발견되었다. 영국에서는 기원전 4000년부터 인간이 우유를 소비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고, 신석기 시대 농업으로 유명한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역에서는 기원전 7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유 소비 증거가 확인되었다. 아나톨리아 농민들은 광범위하게 이주했으며 이들이 유제품 기술을 각지로 전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에서도 3200년이나 된 치즈가 발견된 바 있다 ©이집트 카이로 대학교
이집트에서도 3200년이나 된 치즈가 발견된 바 있다 ©이집트 카이로 대학교

우유 지방 흔적은 지하에서 수천 년을 버티기 어렵다. 그러나 아나톨리아 토기 파편에서 유지방의 흔적이 높은 빈도로 발견된다는 사실을 두고 미루어 볼 때, 과학자들은 이 우유가 치즈와 같은 장기 보존 가능한 유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치즈 제조가 당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건강상 이점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우유를 치즈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유당(lactose) 수치가 감소하는데, 이는 유럽 전역에서 유당 불내증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매우 중요했다. 성인이 락타아제(유당 분해 효소)를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널리 퍼진 것은 약 3,000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고대 토기가 밝혀낸 치즈 제조의 비밀

흥미롭게도 2023년 요크 대학교의 연구는 고대 치즈 제조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연구진은 폴란드에서 발굴된 신석기 시대 후기 토기에서 단백질 구조를 발견했다. 이는 소, 염소, 양의 우유로 만든 치즈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발견은 고대인들이 단순히 우유를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발효 과정을 이해하고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치즈 제조는 미생물학적 지식이 필요한 정교한 기술이다. 따라서 이러한 발견은 당시 사람들의 식품 가공 기술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술이 한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농업 기술과 함께 유제품 가공 기술이 고대 문명들 사이에서 활발히 교류되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술이 한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Getty Images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술이 한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Getty Images

 

샤오허 미라와 3,500년 된 케피어

현재까지 '생존한' 가장 오래된 치즈 샘플은 중국 북서부 샤오허 묘지의 청동기 시대 미라들의 목 주변에서 발견된 3,500년 된 것들이다. 중국과학원 연구팀이 이 표본들을 분석한 결과 이는 케피어(세균 발효 우유) 치즈로 확인되었는데, 과학자들은 이 치즈에서 현재 케피어에서도 발견되는 락토바실러스 케피라노파시엔스(Lactobacillus kefiranofaciens)와 피치아 쿠드리아브제바이(Pichia kudriavzevii)를 포함한 다양한 세균과 효모 종의 DNA를 발견했다. 이는 놀라운 발견으로 3,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미생물의 DNA가 보존되었다는 것 자체가 과학적으로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덩어리들이 단순한 치즈가 아니라 케피어 스타터 그레인(치즈 발효를 시작하는 데 사용되는 농축된 세균 집락으로 현대에도 케피어 제조에 필수적으로 사용함)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러한 발견으로 고대인들이 발효 과정의 핵심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유기물이 탁월하게 보전된 것은 샤오허 묘지와 타클라마칸 사막의 극도로 건조한 환경 덕분이다. 이러한 자연적 '미라화' 과정은 일반적으로 분해되기 쉬운 유제품까지도 수천 년간 보존할 수 있게 해줬는데, 실제로 이 지역의 미라들은 완벽하게 보존된 의복, 장신구, 그리고 이번에 발견된 치즈까지 포함하여 고대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타임캡슐 역할을 하고 있어서 흥미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사후세계를 위한 소중한 선물

전문가들은 당시 이러한 케피어 스타터 그레인들은 사후세계로 가져갈 소중한 선물로 여겨졌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서 고대인들의 내세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데, 현재와 마찬가지로 고대인들 역시 사후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실제로 고대 문명에서 무덤에 함께 매장되는 부장품들은 대개 죽은 자가 사후세계에서 필요로 할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케피어 스타터 그레인과 함께 무기, 장신구, 식량, 그리고 일상용품들이 주로 발견되었다.

고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민들 사이에서 유제품은 단순한 식품을 넘어서 생존의 핵심 요소였다 ©Getty Images
고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민들 사이에서 유제품은 단순한 식품을 넘어서 생존의 핵심 요소였다 ©Getty Images

이는 고대인들이 사후세계에서도 지속적인 삶을 영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그곳에서도 치즈를 만들어 먹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완성된 치즈를 매장한 것이 아니라 치즈를 만들 수 있는 '도구'를 함께 매장했다는 점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관행은 고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민들 사이에서 유제품이 단순한 식품을 넘어서 생존의 핵심 요소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유목 생활에서 가축과 그들이 제공하는 우유, 그리고 이를 가공한 치즈는 장거리 이동과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 요소였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고대의 지혜

이번 발견은 현대 미생물학과 고고학의 만남이 만들어낸 성과로 분석된다. DNA 분석 기술의 발전 덕분에 3,500년 전의 미생물을 현재의 종과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고대 발효 기술의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놀라운 점은 현재 케피어에서 발견되는 미생물들과 고대 치즈에서 발견된 미생물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는 케피어 제조 기술이 3,50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전승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현대의 케피어 역시 여전히 스타터 그레인을 사용해 제조되며, 이 그레인들은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온다 ©Getty Images
현대의 케피어 역시 여전히 스타터 그레인을 사용해 제조되며, 이 그레인들은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온다 ©Getty Images

현대의 케피어 역시 여전히 스타터 그레인을 사용해 제조되며, 이 그레인들은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온다. 어떤 가정에서는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 된 스타터 그레인을 사용하기도 한다. 샤오허 묘지의 발견은 이러한 전통이 훨씬 더 오래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번 연구는 고대 DNA 분석 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DNA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해되기 쉽지만 극도로 건조한 환경에서는 수천 년간 보존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 덕분에 우리는 고대인들의 일상생활과 식생활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연구진들은 이렇게 발견된 고대 미생물들을 현대의 케피어 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만약 성공한다면 3,500년 전의 맛을 현재에 재현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이 단순히 과거를 이해하는 도구를 넘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07-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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