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협정의 주요 내용과 의의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월 20일 최근 3년간의 장기 협상 끝에 새로운 팬데믹 협정을 채택했다. 이는 2003년 담배규제기본협약 이후 WHO 역사상 두 번째로 성사된 주요 조약으로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19 팬데믹의 교훈을 바탕으로 마련되었다. 해당 협정은 미래 글로벌 보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중요한 첫걸음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협정을 통해 WHO 회원국들은 팬데믹 예방 조치 개선, 모니터링 역량 강화, 감염병 통제 및 팬데믹 예방 계획 수립에 합의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글로벌 보건법 전문가인 아옐렛 버먼은 이를 "그 자체로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공평성 조치가 포함되었다는 점인데, 체결된 협정에는 "팬데믹 관련 보건 제품의 전 세계적 생산 확대와 신속한 분배"를 보장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조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신에 대한 내용이지만 개인보호장비와 항바이러스제, 항생제와 같은 의료 치료제도 포함될 수 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제78차 세계보건총회에서 이 협정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참가국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했다. 팬데믹 협정은 미래의 전염병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인 공조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병원체 유전 데이터 공유 시스템의 중요성
팬데믹 협정의 핵심은 병원체 접근 및 이익 공유 시스템(PABS, Pathogen Access and Benefit-Sharing System)을 통한 국가 간 병원체 유전 데이터 공유로 볼 수 있다. PABS는 병원체 샘플 및 유전자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공유함으로써 백신과 치료제, 진단 기기 등의 신속한 개발·확보를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서 테스트 장비와 의약품, 백신에 대한 공동 접근도 보장되며, 가용 장비의 5분의 1은 저소득 국가에 할당될 예정이다. PABS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회원국들은 2026년 5월까지 세부 사항을 협의해야 한다.
이 시스템의 의도는 분명하다. 새롭고 치명적인 병원체에 관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공유하고 전염병의 확산을 늦추겠다는 취지다.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역학자 다니엘라 만노는 "백신과 진단 기술 개발에 필요한 유전 정보 공유를 위해 신속한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라 강조한다. 제약사들과 다른 국가들에서 관련 정보를 원활히 이용할 수 있어야 국제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보 접근성'은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보 접근성'이 감염병 대응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데이터 공유 시스템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발생했던 정보 공유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신종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각국이 기민하게 정보를 공유하여 백신 개발과 진단 검사의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부재와 그 영향
세계보건총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이슈는 '미국의 부재'이다.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가 두 번째 대통령직을 시작하면서 내린 행정명령을 통해 현재 미국은 WHO에서 탈퇴한 상태다.
미국의 탈퇴로 결국 WHO는 최대 자금 제공자이자 글로벌 보건 분야의 가장 큰 주체를 잃게 되었다. WHO는 향후 2년(2026~2027년)에 대한 예산을 기존 예산안의 약 21% 삭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금 부족 상태에 직면해 있다. 이에 5월 19일 월요일 개회 총회에서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남은 WHO 회원국들에게 활동 자금 조달을 위해 예산을 추가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미국은 이제 팬데믹 협정의 조항에 참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는 즉 미국 내에 기반을 둔 제약 회사들은 WHO의 팬데믹 협정에 의거한 조항에 따를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행보는 전 세계 보건 커뮤니티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으며 제2의 팬데믹 사태 예방을 위해 필요한 국제적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버먼은 미국의 행보를 두고 "팬데믹 협정의 분명한 걸림돌이자 제약"이라고 평가했다. 제약 산업 연구소의 상당수가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연구개발이나 기술 이전, 기타 협력 등 관련 사안을 장려할 정부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협력에 소극적이 입장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충분한 기술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소득 국가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줄어들어 팬데믹 대응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조약의 형평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하지만 바이오엔텍, 아스트라제네카 등 주요 코로나19 백신 개발 기업 중 상당수가 유럽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며 희망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만노는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협정이 다음 팬데믹을 막거나 제한하는 데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녀는 이와 같은 협정이 많은 국가들의 협력과 참여를 독려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각 나라의 민중들을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녀는 기술이 공유되는 방식에서 공평성을 유지함으로써 저소득 및 중간 소득 국가로부터 국제 시스템의 운영 방식에 대한 신뢰를 심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팬데믹 협정의 실효성은? 운영의 성공을 좌우할 핵심 현안들
병원체 유전 데이터 공유 시스템은 새로운 전염병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WHO의 팬데믹 협정이 미래의 세계적 보건 위기를 대비한 중요한 행보로 평가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협약이 코로나19와 같은 국제적인 팬데믹 위기를 준비하기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회원국들이 주기적으로 비대립적인 방식에 따라 상황을 점검함으로써 이행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앞으로 2026년까지 PABS의 세부 사항을 확정하고, 협정의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이다. 가장 큰 사안은 팬데믹 협약의 실질적인 이행과 미국의 탈퇴로 인해 부족하게 된 자금의 조달에 대한 것이다. 미국의 WHO 복귀 여부도 협정의 성공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번 팬데믹 협정의 성공은 각국 정부의 정치적 의지와 국제 사회의 협력에 달려 있다. 코로나19의 교훈을 바탕으로 전 세계가 함께 미래의 팬데믹에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의 주요 현안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서 팬데믹 협정은 사실상 의도 표명에 불과하며, 그 집행 과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는다. 일부 국가들은 협정 초안이 국가 주권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는데 초안의 최종 버전에서는 그러한 우려가 반영되어 각 국가의 법률과 정책을 이행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몇몇 전문가들은 이런 조치로 인해 팬데믹 협정에 대한 집행력이 약화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당 협정은 각 나라의 국내 문제에 대한 WHO의 어떠한 간섭 권한도 부여하지 않는다. 버먼은 법적으로 볼 때 "협정이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비판하며 "이것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라고 밝혔다.
즉, 협정의 성공은 팬데믹 대응을 위해 요구되는 예방책, 체계 등 마련을 위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자금 조달"과 각국 정부가 협정 내용을 실제로 이행하고 동참하려는 "정치적 의지"에 달린 셈이다. 현재 팬데믹 협정의 구체적인 자금 조달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세부 사항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6-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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