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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현정 리포터
2025-05-13

‘폭싹 속았수다’ 속 애순의 생존 유산은 해녀 유전자? 제주 해녀의 무호흡 잠수, 혈압 조절 유전자의 진화적 적응 규명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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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에 특화된 유전자가 있다?

"애순아, 살다가 똑 죽겠는 날이 오거든 잠녀 엄마 물질하던 생각해. ...(중략)... 죽어라 팔 다리 흔들면 꺼먼바다 다 지나고 반드시 하늘 보이고 반드시 숨통 트여”

올해 최고 화제작으로 꼽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대사다. 극중 주인공 애순(이지은 분)의 어머니 광례(염혜란 분)는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물질’에 비유해 전한다. 

물질은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행위다. 무호흡 잠수 기법이기 때문에 1회 잠수 시간은 보통 30초에서 2분 사이지만, 하루 평균 3~4시간 동안 평균 200여 회 잠수를 하는 고강도 중노동에 해당한다. 

극 중 광례가 애순에게 삶이 힘들면 “그 드신 물속에서 죽을 고비 골백번마다 살고 싶었던 잠녀 엄마가 물질하던 때”를 생각하라고 한 위로는 고된 물질에도 숨비소리 하나로 살아있음을 증명했던 해녀의 강인함을 이어받기 바라는 마음이었을 터다. 그런데 애순이 물려받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제주 해녀들에게 일반적인 생리 범위를 벗어난 극한 상황에 적응한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유타대학교 생의학정보학과 연구팀은 제주 해녀의 생리적·유전적 특성 연구 결과를 이달 초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Cell Reports)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제주 해녀의 잠수 능력은 개별 훈련과 단련을 넘어 오랜 기간에 걸친 진화적 적응의 결과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해녀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해녀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숨 멈춘 30초, 해녀의 심장은 슬로우 

연구팀은 해녀의 극한 환경 적응이 훈련의 결과인지 유전적·진화적 요인이 개입했는지를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의 첫 번째 초점은 해녀들의 심혈관계 반응이었다. 

연구팀은 제주 해녀(29명), 제주 비해녀 여성(26명), 서울 여성(31명)을 대상으로 찬물에 얼굴을 담그고 숨을 참는 ‘모의 다이빙 실험’을 실시했다. 이 실험을 통해 측정된 심박수 변화는 그룹간 차이가 극명했다. 해녀들은 실험 중 평균 18.8bpm의 심박수 감소를 보였는데 이는 제주 비해녀(12.6bpm)보다 뚜렷하게 컸다.

특히 한 해녀는 단 15초의 숨 참기 동안 심박수가 40bpm 이상 떨어지는 강력한 서맥 반응(bradycardia)을 보였다. 이 반응은 산소를 아끼고 뇌와 심장 같은 필수 기관으로 혈류를 집중시키는 대표적인 '다이빙 반사(dive reflex)'로 훈련을 통해 강화되는 특성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점은 제주 지역 비해녀들도 서울 여성보다 더 강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를 단순히 훈련의 결과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해녀의 생리학은 지역 인구 전체에 공유된 특성, 다시 말해 유전적 기반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 해녀는 반복적인 잠수 훈련과 자연선택을 통해 다이빙에 특화된 집단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Cell Reports

제주 해녀는 반복적인 잠수 훈련과 자연선택을 통해 다이빙에 특화된 집단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Cell Reports


해녀, 산소 저장 능력과 혈압 반응 뛰어나

무호흡 잠수 시 산소를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는 단순히 폐활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에 연구진은 해녀의 생리적 적응을 확인하기 위해 ‘산소 저장고’ 역할을 하는 비장(spleen)을 주목했다. 

비장은 산소를 포함한 적혈구를 일시적으로 저장하고 저산소 상태에서 수축하며 이들을 혈류로 방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해양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이 반응을 통해 잠수 시 산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연구진은 해녀의 생리적 적응을 평가하기 위한 핵심 지표로 비장의 크기를 설정했다. 참가자 84명을 대상으로 초음파 영상 장비를 이용해 비장 크기(부피, cm³)를 정량적으로 측정했으며, 세 집단—제주 해녀, 제주 비해녀, 서울 여성—간의 차이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제주 해녀의 평균 비장 크기는 평균 약 223.5 cm³로 측정되어 서울 여성(약 163.9 cm³)보다 약 36% 더 컸다. 제주 일반 여성 또한 비장 크기가 평균 204.3 cm³로 서울 집단보다 유의하게 컸다. 통계적으로도 이 차이는 뚜렷했다.

그러나 해녀와 비해녀 사이에는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고, 키·몸무게·나이 등을 보정하면 그마저도 사라졌다. 이는 훈련에 의한 생리적 변화가 아니라, 제주 지역 인구 전반에 걸친 유전적 또는 환경적 특성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결과를 두고 훈련보다는 지역 전체의 유전적 특성이 반영됐다고 예측했다. 즉, 바다와 함께 살아온 제주 여성들에게 공통된 생리적 적응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제주 해녀의 비장은 서울 여성보다 평균 36% 더 커 잠수에 유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wikimediacommons

제주 해녀의 비장은 서울 여성보다 평균 36% 더 커 잠수에 유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wikimediacommons

 

혈압 반응, 임신 중 잠수에 유리하게 작동했을 것

제주 해녀의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이완기 혈압(diastolic blood pressure) 반응에서도 나타났다. 

실험에 따르면 해녀의 이완기 혈압은 서울 여성보다 평균 약 10mm Hg 더 높았으며, 이 차이는 다이빙 전(p = 0.010), 다이빙 중(p = 0.0053), 회복기(p = 0.00051) 모두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이완기 혈압은 뇌로 가는 혈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무호흡 상태에서 산소 공급을 확보하는 핵심 기전으로 작용한다. 특히 해녀들이 임신 중에도 출산 직전까지 물질을 계속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같은 혈압 유지 능력은 산모와 태아의 생존 모두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수축기 혈압은 세 집단 간 차이가 없었다. 이는 해녀들의 혈압 반응이 단지 전신적인 혈압 상승이 아니라 정교하게 조절된 생리 반응임을 시사한다. 

더욱이 해녀뿐 아니라 제주 지역 일반 여성들 역시 서울 여성보다 일관되게 높은 이완기 혈압을 나타냈다는 사실은 이러한 반응이 단순한 개인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지역 인구 전체에 걸친 유전적 적응의 흔적일 수 있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제주 해녀의 유전적 혼합 그래프로 K=6(유전자 구성이 6개로 혼합)일때 해녀는 고유한 유전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Cell Reports

제주 해녀의 유전적 혼합 그래프로 K=6(유전자 구성이 6개로 혼합)일때 해녀는 고유한 유전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Cell Reports

 

유전자 하나, 생존을 바꾼 선택의 흔적

연구팀은 이러한 생리 반응의 기저에 유전적 요인이 작용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장 유전체 분석(Whole Genome Sequencing)을 수행했다. 

그 결과 rs66930627라는 유전자 변이에서 C 대립유전자가 제주 여성에게서 33%의 빈도로 발견되었으며, 이는 서울 여성의 7%보다 약 5배 높은 수치였다.

이 변이는 면역세포 및 혈압 조절과 연관된 FcgRIIA, FCRLB, HSPA7 등의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며, 이완기 혈압을 평균 약 10mm Hg 낮추는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세 가지 유전자는 염증을 억제하고 혈관 기능을 조절함으로써 혈압을 안정화하고 조직 손상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평소에는 혈압을 낮춰 고혈압성 질환을 예방하고, 잠수 중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혈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산소 공급을 최적화하는 쪽으로 작용한 셈이다. 

특히 임신 중  고혈압성 합병증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유전자는 반복적 잠수 환경에서 생식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적 이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연선택 분석(CLUES2 모델)에 따르면 이 유전자는 약 1,200년 전부터 제주 인구 내에서 강한 선택압을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주 인구의 병목 현상 시기와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특정 환경 조건 속에서의 생존 전략이 유전자 차원으로 고착되었음을 보여준다.

연구 책임자인 멜리사 일라르도 박사는 “해녀들은 인간 유전체가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사례”라며 “이러한 집단을 연구함으로써 혈압, 염증, 산소 대사와 관련된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해녀는 2016년 11월에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공식 명칭 '제주 해녀 문화(Culture of Jeju Haenyeo(women divers)'를 등재한 배경에 대해 "제주 해녀 문화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존중, 여성 공동체의 연대, 세대를 거쳐 전승된 지속 가능한 생존 방식의 상징이다.”라고 설명했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05-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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