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통증, 삶의 질을 저하하는 원인
우리나라 사람의 약 5.8%는 퇴행성 디스크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3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퇴행성 디스크 질환(추간판장애)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연간 약 300만 명에 달한다. 특히 50세 전후를 기점으로 유병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50대 환자 수는 전체의 약 23%를 차지하며 60대에서는 그 비율이 26%를 넘어선다. 또한, 고령층의 경우 척추 주변 조직의 염증성과 퇴행이 겹치며 통증이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계적으로도 만성 허리 통증은 가장 흔한 근골격계 질환 중 하나다. 국제 보건통계에 따르면 세계 전체 인구의 약 12~15%가 만성적인 허리 통증을 경험했으며, 노동력 손실 1위의 원인으로 꼽힐 정도로 삶의 질을 크게 저하한다. 하지만 통증 완화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 치료법은 디스크 조직 자체의 퇴행을 되돌리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좀비세포?
퇴행성 디스크 질환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바로 ‘좀비 세포(zombie cell)’로 불리는 노화세포(senescent cell)다.
이들은 세포 주기를 멈추고 더 이상 분열하지 않지만 자멸도 하지 않은 채 대사적으로는 활발히 활동하는 비정상 세포다. 이러한 세포는 DNA 손상, 텔로미어 단축, 종양억제 유전자 활성화, 만성 염증 자극 등 다양한 스트레스에 의해 유도되며 세포 외로 염증성 사이토카인과 단백 분해 효소, 성장인자 등을 다량 분비한다.
이 같은 특징은 SASP(Senescence-Associated Secretory Phenotype, 노화 관련 분비 표현형)로 불리며 주변 조직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초기에는 조직 회복이나 암 억제에 유익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만성 염증과 조직 퇴행을 유발하는 주범으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노화세포가 디스크 조직에 축적되면 퇴행성 디스크 질환의 구조적 변형과 통증을 촉진하는 경로가 활성화된다. 디스크 내 세포 수는 줄고 세포 외 기질은 분해되며, 염증성 환경이 조성돼 통증 신호를 증폭시킨다.
그런데 최근 노화세포를 제거함으로써 척추 디스크의 손상을 억제하고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 Science Advances애 발표되어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매튜 만나리노(Matthew Mannarino) 박사와 캐나다 맥길대학교 정형외과 연구소 연구팀은 이를 입증한 동물실험 결과를 통해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
인간처럼 디스크가 닳는 생쥐로 실험 설계
해당 연구는 유전적으로 조작된 실험쥐를 대상으로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senolytic 약물 투여에 대한 변수로 설계됐다.
실험쥐는 유전적으로 생후 7개월에 접어들면 척추 추간판(디스크)의 수분이 줄고 연골이 마모되며 섬유륜이 퇴행하는 모델이다. 이들은 사람의 중증 퇴행성 디스크 질환과 병리학적으로 유사한 상태를 재현하며 행동학적 통증 반응에서도 인간 환자와 유사한 민감도를 보인다. 특히 기계적 자극에 대한 반응을 측정하는 von Frey filament test에서 높은 통증 민감성을 나타내며, 염증성 사이토카인 발현(CXCL1, IL-6), 디스크 공간 축소, 신경 말단 민감화 등도 관찰된다.
만나리노 박사는 “이 모델은 단순히 디스크가 낡는 것이 아니라, 노화세포가 누적되면서 주변 조직에 염증을 유도하고, 이로 인해 만성 통증이 유지되는 구조적 조건까지 갖다.”고 설명했다.
또한 연구팀은 노화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두 종류의 senolytic 약물을 활용했다. 하나는 천연 유래 물질인 o-바닐린(o-vanillin), 다른 하나는 p53/MDM2 경로를 억제하는 RG-7112이다. 두 약물은 이전 연구에서 인간 디스크 세포 내 노화세포 제거와 염증성 인자 감소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투여군은 A약물 단독, B약물 단독, AB 병용투여(고용량), 그리고 위약(placebo) 대조군이다. 모든 실험군은 8주간 일정 주기로 약물을 투여받았고, 이후 디스크 상태를 조직 병리학적·행동학적·영상학적으로 정량 분석했다.
노화세포 제거하니 통증이 개선돼
약물치료를 받은 실험쥐는 그립 강도, 꼬리 매달기, 차가운 자극에 대한 반응성 등 여러 통증 행동 테스트에서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 이들은 치료 전까지 통증 행동이 지속되었었지만 4~8주 치료 후에는 정상 수준으로 회복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진통 효과가 아니라 디스크 퇴행의 병리학적 원인이 근본적으로 해결된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분석 결과 두 약물을 함께 고용량으로 투여한 병용투여 그룹에서 가장 뚜렷한 개선이 나타났다.
이 그룹의 디스크 조직에서는 노화세포의 대표적 지표인 β-galactosidase 양성 세포가 평균 68% 감소했으며, 동시에 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사이토카인인 CXCL1과 IL-6의 발현 수준도 각각 52%, 49%씩 낮아졌다. 이는 세포 수준에서의 염증 반응이 확연히 줄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행동학적 통증 반응 평가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확인되었다.
통증 민감도를 측정하는 von Frey filament test에서 병용군 마우스의 반응 역치가 평균 3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극에 대해 더 둔감하게 반응했음을 의미하며 실질적인 통증 완화 효과를 시사한다.
또한, 마이크로CT를 활용한 영상 분석 결과에서는 병용투여 그룹의 디스크 두께가 평균 11% 증가하고 척추뼈 사이 간격도 눈에 띄게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 역시 디스크 구조의 기계적 안정성이 실질적으로 향상되었음을 의미한다.
통증만 덮지 않는 통증의 원인을 겨냥하는 치료법
연구를 이끈 만나리노 박사는 “기존의 대부분 치료법은 통증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우리는 디스크 퇴행의 근본적인 원인인 노화세포에 직접 작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는 이런 접근이 이론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그것이 실제 가능함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전임상 단계에서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인간 대상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실제 치료법으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특히 노화세포 제거 약물이 전신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연구 중인 영역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단순한 기초 연구를 넘어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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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4-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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