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를 이용한 연구: 미세한 생태계가 비만과 체중 조절에 어떤 역할을 할까?
인간의 장내에는 수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우리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과학계는 이 미세한 생태계가 비만과 체중 조절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워싱턴 대학교 세인트루이스의 제프리 고던(Jeffrey Gordon) 박사는 2006년부터 장내 미생물군과 비만의 관계에 대한 쌍둥이 연구를 수행하였다. 고던 팀은 2009년 Nature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비만인 사람과 마른 사람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체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다.
해당 연구에서 고던 팀은 154쌍의 일란성 및 이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장내 미생물 구성을 분석했다. 그들은 정상 체중인 집단에 비해 비만인 사람의 장 내에서 미생물 다양성이 감소하고, 피르미쿠테스(firmicutes)라는 특정 세균군의 비율이 증가함을 발견했다. 소위 뚱보균이라 불리는 이 미생물균은 몸속 당분의 대사를 촉진해 지방이 과하게 축적되도록 유도한다. 반면 비만을 억제하는 박테로이데스(bacteroidetes) 세균군의 비율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란성 쌍둥이 사이에서도 비만한 쌍둥이와 마른 쌍둥이 사이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고던 팀은 이후 더욱 혁신적인 후속 연구를 발표했는데, 그들은 체중이 크게 다른 일란성 쌍둥이(한 명은 비만, 다른 한 명은 마른)의 장내 미생물을 무균 마우스에 이식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놀랍게도 비만 쌍둥이의 미생물을 받은 마우스는 체중과 지방 조직이 증가하였으며 마른 쌍둥이의 미생물을 받은 마우스는 체중이 정상을 유지했다.
고던 팀 추가 실험을 통해 마른 쌍둥이의 미생물이 상대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비만 쌍둥이의 미생물을 받은 마우스와 마른 쌍둥이의 미생물을 받은 마우스를 함께 사육하며 변화를 관찰해 보았다. 실험 결과 비만 마우스의 미생물 구성이 마른 마우스의 미생물 구성 쪽으로 변화하면서 체중 증가가 방지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 이러한 효과는 마우스가 고섬유, 저지방 식이를 할 때에 한해 나타났다.
장내 미생물의 기능적 차이: 영양소 추출과 에너지 균형
2014년 코펜하겐 대학의 올레 페더슨(Oluf Pedersen)과 그의 동료들이 Nature지에 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그들은 덴마크 쌍둥이 레지스트리의 123쌍의 일란성 및 이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장내 미생물 다양성과 대사 마커의 관계에 대해 탐구했다. 그 결과 미생물 다양성이 낮은 개인이 미생물 다양성이 높은 사람에 비해 인슐린 저항성과 이상지질혈증, 염증 마커가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페더슨 팀은 같은 해 후속 연구에서 특정 장내 미생물 그룹이 식이 섬유를 발효하여 단쇄 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s, SCFAs)을 생성하는 능력에 주목했다. SCFAs는 장 건강을 촉진하고, 포만감을 증가시키며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2016년에는 스웨덴 찰머스 공과대학의 프레드릭 백헤드(Fredrik Bäckhed) 팀이 비만과 마른 일란성 쌍둥이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하여 에너지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 발현 차이를 조사했다. 연구에 따르면 비만 쌍둥이의 미생물에서 탄수화물과 지방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의 발현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팀 스펙터(Tim Spector)는 동료들과 함께 영국 쌍둥이 레지스트리의 1,126쌍 쌍둥이를 대상으로 장내 미생물 구성과 체질량지수(BMI)의 관계에 대해 조사했다. 그들은 특정 미생물 종(예: Christensenellaceae)의 풍부도가 BMI와 강한 부적 상관관계를 보이며, 이 관계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내 미생물 이식과 비만 치료의 가능성
2016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의료 센터의 맥스 니우딕(Max Nieuwdorp)은 대사증후군 환자에게 건강한 기증자의 분변 미생물 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FMT)을 수행한 결과를 보고했다. 이 연구는 건강한 기증자의 미생물을 받은 환자의 인슐린 감수성이 6주 동안 유의미하게 개선됨을 확인했다. 특히 인슐린 감수성의 개선은 특정 미생물(부티레이트 생성균)의 증가와 관련이 있었다.
2020년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로버트 크라우스(Robert Krause)는 장내 미생물 이식이 비만 관련 대사 장애 개선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고던의 쌍둥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마른 기증자로부터의 미생물 이식이 비만 환자의 에너지 대사와 체중을 개선 가능하리란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2021년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 연구소의 에란 엘리나브(Eran Elinav)와 동료들은 생활방식 중재와 결합된 자가 분변 이식(autologous FMT)의 효과를 조사했다. 참가자들은 건강한 식이와 운동 중재를 통해 체중을 감량한 후, 체중 감량 직후의 자신의 미생물을 저장했다가 몇 개월 후 다시 이식받았다. 이 접근법은 체중 재증가를 막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이는 특정 '날씬한' 미생물 구성을 유지하는 것이 체중 유지에 중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장내 미생물 이식에는 안전성 문제, 효과의 지속성, 최적의 기증자 선택 등 여러 도전 과제가 남아있다. 이에 연구자들은 보다 표적화된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
미래 전망과 임상적 함의
쌍둥이 연구를 통해 얻은 장내 미생물군과 체중 조절의 관계에 대한 통찰은 비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비만은 단순히 섭취 칼로리 불균형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개인의 유전적 배경, 식이, 생활방식과 연관된 것으로 장내 미생물과 숙주 간에는 복잡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장내 미생물군과 체중 조절에 관한 쌍둥이 연구에서 얻은 통찰은 비만 치료 및 예방 전략에 중요한 임상적 함의를 갖는다. 먼저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대사 건강의 중요한 지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생물 다양성 감소가 비만, 당뇨병, 염증성 장질환 등 여러 질환의 위험 요소라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는 식이, 운동, 항생제 사용 등을 통해 미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고 증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식이 조절이 장내 미생물에 미치는 영향과 그 효과의 개인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다. 2022년 팀 스펙터와 동료들이 발표한 PREDICT 연구의 후속 논문에서 건강한 식이(예: 지중해식 식단)가 대체로 유익하지만, 그 효과는 개인의 기저 미생물 구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영양 권장 사항에 개인의 미생물 프로파일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유아기 미생물 형성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2021년 호주 쌍둥이 레지스트리의 연구자들은 유아기에 형성된 장내 미생물이 이후의 대사 건강과 체중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는 제왕절개, 항생제 사용, 모유 수유 등이 장내 미생물 발달과 미래의 비만 위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는 더 큰 규모의 쌍둥이 코호트와 종단적 연구 설계, 그리고 다양한 인종 및 지리적 배경을 포괄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장내 미생물과 숙주 사이의 분자적 상호작용, 특히 미생물 대사산물이 숙주 대사와 면역 체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더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5-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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