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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이성규 편집위원
2005-10-10

과학적 지식 뒤엎은 헬리코박터균의 발견 2005 노벨상 바로 읽기<3> 생리의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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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과학적 지식이 오히려 과학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장애물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과학적 지식을 맹신한다. 과학적 지식이 그렇다면 그것을 뛰어넘는 상상을 포기해 버린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믿고 있는 과학적 지식을 뒤집어 버리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내기란 상당히 힘들다. 자신의 부질없는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과정도 어려울 뿐더러 타인의 배타적인 선입관을 깨부수는 것도 힘들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호주의 병리학자 로빈 워런과 내과의사 배리 마셜은 바로 그런 어렵고 힘든 길을 개척한 주인공들이다.

1979년 퍼스병원의 병리학자였던 워런 박사는 만성위염 환자들을 대상으로 현미경 조직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환자의 약 50% 정도가 위(胃) 아랫부분에 조그만 갈매기 모양의 박테리아를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당시만 해도 위 속에 세균이 살 수 있다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위는 염산이나 황산보다 더 강한 산성을 띤다. 위벽 세포로부터 분비되는 위산의 pH가 0.78이나 되기 때문이다. 위는 이처럼 강한 산성으로 음식물을 1mm 이하로 잘게 부수는 소화작용을 한다. 또한 위액에는 단백질 대부분을 분해할 수 있는 펩신이란 효소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쇠도 녹여버린다는 위 속에 세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었다.

하지만 워런 박사는 그 박테리아가 위염을 일으키는 주범일 것으로 추측하고, 학회에 이 같은 연구 내용을 보고했다. 당연히 돌아온 결과는 거짓말을 한다는 오명만 뒤집어쓰고 말았다. 워런 박사의 이 같은 오명을 벗겨준 사람이 마셜 박사다.

워런 박사의 발견에 관심을 갖게 된 마셜 박사는 약 1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생체검사를 시도했다. 그 결과 특정 박테리아가 모든 위염과 위궤양, 십이지궤양 환자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박테리아를 증명하기 위해 곧 배양실험에 착수했다. 위 점막의 조직을 떼어내 균의 배양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연구에 지친 나머지 마샬 박사는 휴가를 떠나게 된다. 휴가에서 돌아와 보니 놀랍게도 인큐베이터 안에 균이 배양되어 있었다. 휴가를 떠날 때 인큐베이터에 들어 있는 위 점막 균을 버린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일화를 남기며 그가 찾아낸 위 속의 박테리아가 바로 헬리코박터균이다. 정확한 명칭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로서, 헬리코(Helico)는 나선을 뜻하고 박터(bacter)는 세균을 의미한다. 또 파일로리(pylori)는 균의 발견 부위인 위의 유문부(십이지장과 연결되는 위의 가는 부분)에서 유래됐다. 어원을 그대로 풀면 위의 유문부에 있는 나선 모양의 세균이다.

강한 산성의 위 속에서도 헬리코박터균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위산의 공격에 대한 대비책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바로 위산을 중화시킬 수 있는 염기인 암모니아로 된 보호벽이 있었다. SF영화에서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에 방어벽이 있어 지구인들이 쏘아대는 포탄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세균에도 그런 보호벽이 있을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위염과 소화성 궤양 같은 소화기 질환은 생활습관과 스트레스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만 믿고 있었다. 마샬 박사는 헬리코박터균이 위염과 궤양을 일으킨다면 그것을 없앰으로써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치료 방법을 찾는 실험대상으로 마샬 박사는 바로 그 자신을 선택했다.

어느 날 마샬 박사는 헬리코박터균이 가득 찬 컵을 꿀꺽 마셨다. 그로부터 1주일 뒤 마침내 구토가 시작되고 위가 쓰리는 통증으로 마샬 박사는 배를 움켜쥐고 뒹굴어야 했다. 즉시 항생제를 먹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마샬 박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여러 종류의 항생제를 한꺼번에 먹고서야 헬리코박터균이 제거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로써 그동안 난치성 질병 중의 하나로 알려진 위염과 소화성 궤양을 항생제와 산분비 억제제로 치유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현재 헬리코박터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위궤양 및 십이지궤양과의 관련이 밝혀지는가 하면 국제암연구기관(IARC)에서는 헬리코박터균을 발암인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또 특정한 헬리코박터균만이 위장 질환을 일으킨다는 주장과 한국인에게서는 위암과 헬리코박터균의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도 헬리코박터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개인마다 유전적 차이가 있다며, 이 균에 감염됐다고 해서 모두 위장 질환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어쨌든 앞으로도 헬리코박터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기 위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워런 박사와 마샬 박사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첨단 이론이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존의 평이한 기술, 즉 내시경 탐색과 염색법, 세균배양법 등만으로 아주 큰 성과를 거두었다. 위대한 발견은 복잡한 지식이나 첨단이론보다 사고를 뒤집은 새로운 발상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준 사례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들의 수상에 박수를 보내는 이가 더욱 많은지도 모르겠다.

이성규 편집위원
저작권자 2005-10-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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