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흔한 바이러스성 감염을 일으키는 호흡기 세포 융합 바이러스(RSV)가 어떻게 우리 몸의 세포에 침입해 감염을 일으키는지가 새롭게 밝혀졌다.
캐나다 앨버타대 연구진이 이끄는 국제협동연구팀은 세포의 문 앞에서 기다리는 RSV(respiratory syncytial virus) 바이러스가 출입문 초인종을 만들어 수용체를 호출하는 속임수를 써서 세포 속으로 침입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3일 자에 발표했다.
논문 시니어 저자인 앨버타대 데이비드 머천트(David Marchant) 부교수(의학 미생물학 및 면역학)는 “호흡기 세포 융합 바이러스는 해마다 전 세계에서 15만~20만 명에 달하는 환자, 특히 유아 및 어린이들을 사망케 하는 흔한 감염원”이라고 지적하고, “이번 발견은 RSV 감염의 첫 단계 중 하나를 확인한 것으로, 바이러스와 세포 수용체 간의 상호작용을 차단할 수 있다면 감염 발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해마다 20만 명 사망…아직 백신이나 치료제 없어
현재 많은 바이러스가 그렇듯, 이 RSV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으며, 아직 개발 가능성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RSV는 대부분 유아와 어린이에게 영향을 미쳐 폐와 기도를 감염시킨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실상 거의 모든 어린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이 RSV에 감염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 바이러스 감염증은 전 세계적인 유아 입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며, 말라리아 다음으로 유아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다.
RSV는 세포와 융합한 지 수 분 안에 세포 안으로 침범하는 독감 같은 다른 바이러스와 달리, 세포에 접근해 감염시키기 전 몇 시간 동안 세포 표면에 머무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뉴클레올린 수용체가 바이러스에 문 열어줘
2011년에 머천트 교수팀은 세포 안에 있는 뉴클레올린(nucleolin, NCL)이라는 수용체가 RSV의 세포 침입을 용이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RSV는 이 세포 수용체와 결합해 업혀 들어가는 방식으로 세포로 침입한다. 그러나 먼저 뉴클레올린이 어떻게 그리고 왜 ‘문으로 오게 되었는가’는 알 길이 없었다.
머천트 교수팀은 이번 새로운 연구에서 RSV가 IGF1R이라 불리는 두 번째 수용체와 PKC-zeta로 알려진 유전자 단백질과 결합해, 신호 즉 출입문 초인종(doorbell)을 생성함으로써 뉴클레올린으로 하여금 바이러스가 기다리고 있는 세포 표면으로 오도록 호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단 뉴클레올린이 표면에 도착하면 RSV는 초대받지 않았으면서도 당당한 손님처럼 이 수용체와 결합해 세포 안으로 들어가 감염을 일으키게 된다.

“치료법으로 개발하려면 수 년 더 소요”
머천트 교수는 “RSV는 본질적으로 세포 안에서 정상적이고 건강한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진화됐다”고 설명하고, “바이러스가 먼저 IGF1R과 결합하도록 진화됐는지 아니면 뉴클레올린과 먼저 결합하도록 진화됐는지와 같은 흥미로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몇 년 더 연구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발견이 미래의 새로운 치료법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가능한 치료법 개발에는 몇 년이 더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머천트 교수는 “우리는 감염 과정에서 뉴클레올린의 하류에 있는 다른 수용체들을 차단하는 것과 같은 수많은 치료제 후보들을 실제 임상에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라고 전하고, “그런 신호들을 억제할 때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는지는 아직 모르기 때문에 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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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06-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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