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첨단 생명과학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까?”
1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 센터에서는 제 62회 한국생화학분자생물학회(회장 나도선) 정기 학술대회가 열렸다. 해마다 열리는 학술대회지만 이번 대회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날로 늘어가는 생명과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에 부응하고 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국내 전문학술대회 중에는 처음으로 대중과의 친근한 만남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21세기 첨단생명과학이 우리 곁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한 이번 대중강연은 그 야심찬 포부답게 신경과학계의 최고 석학이라 일컬어지는 연구자들이 직접 대중강연에 나섰다. 이 대중 강연의 좌장을 맡은 한림대 최수용 교수는 “전문학회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대중강연의 좌장을 맡게 되어 영광”이라면서 “이 대중강연을 시발점으로 많은 시도들이 이어지길 바란다”며 소감을 밝혔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사람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생체과학연구부의 신희섭 박사였다. 「뇌 연구를 통한 마음의 이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선택한 신 박사는 “뇌를 연구하는 것은 마음을 연구하는 것과 같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우리는 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느끼는가, 왜 우리는 어둠과 천둥번개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는가, 우리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우리는 사물을 기억하고 학습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대기는 쉽지 않다. 신 박사는 이런 행동들이 모두 뇌의 활동에서 야기된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시한 동물 실험의 결과들을 제시했다. 특히 대중강연에 걸맞게 다양한 동물 실험의 결과들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여주어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눈에 띄었다.
신 박사는 “전통적으로 마음은 육체와는 별개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마음은 뇌기능의 발현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앞으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하다. 그러나 이런 지식의 축적은 결국 인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 ‘우리가 밝혀야 할 뇌의 비밀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음’을 시사하며 강연을 마쳤다.
이어 서울대 창의연구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는 오우택 교수가 「너희가 통증을 아느냐?」라는 다소 도전적인 제목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과연 고통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통증을 느낀다. 생물의 존재론적 측면에서 본다면 통증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우리는 통증에 민감하도록 진화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즉, 통증을 느끼게 하는 것들은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것들이기에, 이를 ‘고통스럽게’ 느끼도록 하면 이를 피하게 될 것이고, 그 것이 생명체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통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 교수는 “일시적 통증은 생명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속적인 만성 통증은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생활양식까지 바꿔놓기 때문에 통증을 조절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진통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오 교수는 감각신경 말단에 캡사이신 채널이 존재해 통증 신호를 뇌에 전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 캡사이신 채널의 연결 경로를 차단하는 방법을 통해 신개념의 진통제를 개발한 이 분야의 전문가다.
통증은 통증을 감지하는 감각신경말단이 자극을 받으면 이 신호를 뇌에 전달해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기존의 진통제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통증을 차단했다. 즉, 신경말단에서 감각신경을 자극하는 물질들을 차단하거나, 뇌 자체에서 신호를 차단하는 방법을 통해 통증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 등은 전자이며, 모르핀 같은 마약성 진통제들은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부작용은 덜하지만 진통 효과가 다소 미약하고, 후자는 진통 효과는 강력하나 중독, 내성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에 사용이 제한되는 단점이 있었다.
오 교수의 연구는 기존의 두 가지 방법 외에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고추가 매운 맛이 나는 것은 그 속에 든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오 교수는 캡사이신을 피부에 바르면 통증이 느껴진다는데 주목하고, 이 작용 매커니즘을 연구해 신경 말단에는 캡사이신에 작용하는 채널이 있어서 통증을 느끼며, 이 채널을 닫아주면 상당한 진통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해 새로운 진통 매커니즘을 찾아냈다. 실제 이 연구 결과는 기업과 제휴하여 임상에서 사용 가능한 진통제로 개발되었으며, 오 교수는 궁극적으로 부작용없는 강력한 진통제 개발을 목표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전문학회가 주도한 우리나라 뇌 연구 분야 최고 석학들의 대중강연은 처음 시도되는 것이었으나, 매우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강연 후에는 한국생화학분자생물학회에서 두 석학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고, 강연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경품추첨 행사가 이어졌다. 과학이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듯이, 이제 전문학술대회도 그들만의 잔치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들과 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번 대중강연은 그 첫걸음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 이은희 기자
- 저작권자 2005-05-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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