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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준래 객원기자
2018-08-29

실패한 항생제들도 합치면 '약'? 의약계 병합요법 유행… 돈과 시간 절약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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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가진 세균이 증가하면서 인류는 새로운 재앙을 맞이하고 있다.

더 이상 항생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과거로 회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50년에는 세균 감염으로 인한 전 세계의 사망자수가 매년 1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 같은 재앙이 닥치기 전에 인류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노력의 우선순위로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것이 첫 손에 꼽히지만, 과거에 이미 만들었다 실패했던 약물을 재활용 하는 방법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관련 기사 링크)

생명을 구했던 항생제가 점차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 free image
생명을 구했던 항생제가 점차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 free image

과거 항생제 사용한 병합요법으로 성과 거둬

항생제 개발도 유행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1980년대의 제약시장이 대표적인 경우로서,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16개의 항생제가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아 선을 보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들이 하나 둘 등장하면서 과거와 같이 개발만 하면 일정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던 상황이 사라지게 된 것.

특히 전문가들은 살모넬라균이나 티푸스균 등이 포함되는 ‘그람음성균(Gram-Negative)’에 대한 항생제 개발이 더디게 진행됐던 점을 세균이 다시 득세하게 된 원인으로 꼽는다. 그때까지 항생제에 대해 열세를 보였던 세균이 내성을 얻을 시간을 벌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다시 역전시키고자 인류는 돈과 시간을 투자해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고 있다.

문제는 신약 개발이 만만치 않은 과정이라는 점이다. 후보 물질을 선별하는 단계부터 까다로운 임상시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돈과 시간을 소모해야만 한다.

이에 최근 의약계는 이미 과거에 개발됐던 항생제에 대해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약효가 미미하거나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밀려났던 항생제를 다시 한 번 재기시켜 신약처럼 활용한다는 취지다.

잊혀진 항생제를 함께 쓰는 병합 요법이 의약계의 유행이 되고 있다 ⓒ membs.org
잊혀진 항생제를 함께 쓰는 병합 요법이 의약계의 유행이 되고 있다 ⓒ membs.org

이 같은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의료기관으로는 이스라엘의 ‘여전도병원(BIDMC)’이 꼽힌다. 이 병원의 연구진은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20여 종의 세균을 대상으로 콜리스틴(colistin)을 중심으로 한 병합 요법을 연구하고 있다.

콜리스틴은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항생제 최후의 보루’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약효를 자랑했던 항생제다. 하지만 콜리스틴 역시 내성을 가진 세균이 발견되면서, 단독 사용만으로는 원하는 치료효과를 얻지 못하게 됐다.

이에 연구진은 콜리스틴과 기존의 19종 항생제를 더하는 병합 요법을 사용해 내성을 가진 세균에 적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콜리스틴만을 단독으로 사용했을 때와 비교해 병합 요법이 세균의 90% 정도를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BIDMC의 테아 브레넌 크론(Thea Brennan Krohn) 박사는 “항생제에 대한 내성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과거에 효과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심해서 사용하지 않았던 약물까지 다시 항생제의 후보 물질로 거론되고 있다”라고 전하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성을 가진 세균을 없애기 위한 인류의 총동원령으로 이해해 달라”라고 설명했다.

잊혀진 항생제를 오늘날의 여건에 맞게 재조명

과거에 개발됐던 항생제를 오늘 날에 이르러 재활용하는 방법은 국내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그 선두주자로 꼽히는 인물이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의 김의석 교수다.

김 교수는 지난봄에 개최됐던 대한화학요법학회의 춘계학술대회에서 ‘오래된 항생제의 부활(Revival of old drug)’이라는 주제로 항생제 재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항생제의 내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사라지거나 잊혀졌던 항생제들을 오늘날의 여건에 맞게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특정한 감염 사례 중에서 과거의 항생제를 중심으로 사용했을 때 2차 피해(collateral damage)가 생길 가능성을 낮추거나, 항생제에 대한 내성률이 낮아진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항생제에 대해 세균이 내성을 가지는 과정 ⓒ healthnavigator.org
항생제에 대해 세균이 내성을 가지는 과정 ⓒ healthnavigator.org

예를 들어 포스포마이신(fosfomycin) 같은 과거 항생제의 경우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CRE)을 포함한 내성 세균에 감염됐을 때 다른 항생제와 함께 사용하면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포마이신의 경우 그동안 많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 거의 없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도태됐던 사실이 있는 만큼, 한계점도 있다.

새로 개발되는 항생제에 비해 과거의 항생제는 PK(Pharmacokinetics)나 PD (Pharmacodynamics)연구가 전체적으로 부족하며, 상업성이 떨어짐에 따라 구할 수 없는 약들이 많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PK는 시간경과에 따른 체내 항균물질의 농도를 말하며, PD는 이들 농도와 항균효과의 관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과거의 항생제와 새로운 항생제를 함께 사용하는 방법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문제는 자금. 이 때문에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그러나 효과가 검증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합쳐 추가 연구에 대한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준래 객원기자
stimes@naver.com
저작권자 2018-08-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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