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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준래 객원기자
2018-08-24

거미독이 희귀질환 치료제? 간질병 드라베 증후군에 활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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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죽이는 독은 때로는 생명을 살리는 약이 된다.

‘비소’의 경우가 그렇다. 치명적인 독소를 지닌 물질이지만,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단계의 매독이나 혈액암에 약과 함께 사용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초이자 토양을 산성화시키는 유해식물로 유명한 ‘미국자리공’도 마찬가지다. 이 식물에서 추출한 항바이러스 물질이 현재 암이나 에이즈 등의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사례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거미의 독에서 분리한 성분을 간질 치료제로 활용하는 연구다. (관련 기사 링크)

거미의 독이 희귀 간질병 치료에 적용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 CC0 Public Domain
거미의 독이 희귀 간질병 치료에 적용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 CC0 Public Domain

거미독에서 확보한 성분으로 뇌졸중 치료 효과 거둬

거미는 독특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 특유의 모습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거미는 생태계 입장에서 보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포식자이자, 해충을 없애주는 익충이다. 또 거미가 내뿜는 줄이나 독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유용한 화학 물질로 개발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거미의 독은 대략 100여 가지 정도다. 이들 대부분은 근육이완에 강력한 효능을 갖고 있는데, 잡은 곤충을 마비시켜 꼼짝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호주 퀸즐랜드대학과 플로레이신경과학연구소(Florey Institute of Neuroscience) 공동 연구진은 이 같은 효능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하고 있는 희귀 간질(뇌전증)의 치료제로 활용이 가능한 지를 파악하기 위해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물리면 15분 만에 즉사한다는 독을 지닌 깔때기그물거미 ⓒ australianmuseum
물리면 15분 만에 즉사한다는 독을 지닌 깔때기그물거미 ⓒ australianmuseum

전 세계 의료계가 이들의 연구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1년 전에 거미독에서 뇌졸중을 치료할 수 있는 성분을 성공적으로 추출했기 때문이다.

퀸즐랜드대의 ‘글렌 킹(Glenn King)’ 교수와 연구진은 지난해 ‘깔때기그물거미(funnel web spider)’의 독에서 뇌졸중을 치료할 수 있는 성분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이 거미의 독은 15분 만에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거미독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일부 성분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이 이 성분만을 추출해 뇌졸중 환자의 뇌에 투입한 결과, 신경세포(neuron)가 파괴되는 것을 막아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 성분에 ‘힐라(Hilla)’라는 이름을 부여한 다음, 본격적으로 분석 작업에 착수했다.

뇌졸중이 발생하게 되면 뇌혈관이 멈추고 뇌세포에 산소 공급이 차단된다. 그런데 힐라는 산소 공급 차단을 막아주는 복합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인터뷰에서 킹 교수는 “뇌졸중이 발생한 쥐를 대상으로 2시간 동안 힐라를 투입한 결과 80%의 뇌손상을 막을 수 있었다”라고 전하면서 “치료를 하지 않은 쥐와 비교했을 때 65%의 뇌세포를 더 보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뇌졸중과 비슷한 기전인 희귀 간질에도 적용

킹 교수와 공동 연구진은 지난해에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희귀 간질인 ‘드라베 증후군(Dravet Syndrom)’의 치료에 거미독을 적용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뇌졸중과 간질은 손상된 뇌의 위치와 범위만 다를 뿐 발생 프로세스는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드라베 증후군은 주로 영‧유아기 시절에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일명 ‘유아 간질’로 불리는 질환이다. 지난 1978년 의사였던 드라베(Dravet)에 의해 최초로 공개된 질환으로서 40000명 당 1명 정도에 나타나는 희귀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드라베 증후군의 무서운 점은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다가 생후 1년 후 본격적으로 발작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첫 발작 시 고열을 동반하거나 온 몸이 딱딱해지는 강직 현상이 함께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가 6~8주 이내에 발작이 재발하게 되면 15분 이상의 오랜 시간 동안 발작이 진행되는 ‘간질중첩증’이 나타난다. 이 외에도 고열에 상관없이 짧은 시간 동안 의식을 잃거나 신체 일부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작이 일어나는 부분발작 등이 발생하게 된다.

나트륨 농도 조절에 관여하는 뇌의 기능에 문제가 생겨 드라베 증후군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Coherent Chronicle
나트륨 농도 조절에 관여하는 뇌의 기능에 문제가 생겨 드라베 증후군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Coherent Chronicle

발작이 나타난 아이는 이후 인지능력 및 언어, 그리고 운동 등 전반적인 발달이 2살 이후로 정체된다. 결국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하게 된다.

발병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신체의 나트륨 농도를 조절해주는 뇌 기능에 이상이 생겼을 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료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는 환자의 80%가 나트륨 농도 조절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진이 거미독에서 분리한 성분을 투여하자 나트륨 농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정상적으로 회복됐다. 연구진은 시간이 지나자 뇌 신경세포 기능을 회복되고 경련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킹 교수와 연구진은 이 성분을 ‘Hm1a’라 명명하면서 “실제 치료제 개발까지는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아있지만, 기존 약물로는 효과적 치료가 어려운 드라베 증후군이 거미의 도움을 받아 완쾌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김준래 객원기자
stimes@naver.com
저작권자 2018-08-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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