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과 책임’을 주제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공동 개최하는 현장 토론회가 열렸다.
유전자를 연구하는 기초 과학자, 장애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 자폐 아이를 둔 아버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토론장 내 모두가 진지했다. 과학기술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토론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현 정권에서 제시하는 과학기술분야의 핵심 과제는 기초연구의 중장기적인 지원과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정책”이라며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위해 과학기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장 사례로부터 보는 발달장애인과 과학기술정책
발표는 현장 사례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호희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대전지부장은 자신을 “자폐 아이를 둔 아버지”라고 소개하며 발달장애인의 부모로서 겪는 어려운 점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발달장애는 청소년기까지는 학교라는 보호막 아래 조금씩 나아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성인기가 되면 아이는 갈 곳도 없고 부모는 더욱 힘들어진다”라고 밝히며 “발달장애는 30년에서 100년까지 지속되는 치매와 같다고 볼 수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지부장은 “과학기술계가 나서 발달장애의 원인 규명 및 근본적인 치료약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말하며 “치매 국가책임제와 유사하게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에 일조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유희정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임상의 측면에서 발달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유 교수는 “발달장애 진단 후 실제 장애 등록을 하는 경우는 소수다. 분당 서울대병원만 해도 작년을 기준으로 장애 등록을 위해 진단서를 발급받은 비율은 12.6%에 불과하다. 사회적 낙인과 같은 여러 가지 요소가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통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발달장애를 진단받았음을 지적했다.
유 교수는 발달장애가 드러나는 양상은 매우 다양하고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진단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진단은 당사자를 직접 관찰하고 양육자나 교사로부터 얻는 정보와 인지 능력에 대한 정량적 평가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며 “하지만 진단 도구는 영미권에서 만든 자료를 번역하여 쓰고 있다. 시간이나 비용도 문제지만 문화적 차이를 다 보정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희정 교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경우 동생에게서 재발률이 18.7%를 보인다거나 1000여 종의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는 등의 원인에 대한 가설이 분명히 있음에도 이러한 근거 기반의 진단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라며 바이오마커 (몸속 세포나 혈관, 단백질, DNA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내는 지표) 기반 진단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한, 유 교수는 “병은 길지만 연구는 짧다”며 발달장애가 아동의 문제가 아닌 성인과 노인으로 이어지는 문제임에도 긴 호흡의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해결책으로 생애주기별 개입과 지원을 위한 플랫폼 구축을 제안했다.
박수빈 국립정신건강센터 연구기획과 과장은 발달장애를 포함한 정신질환 전체에 대해 수행한 R&D 연구 사례에 대해 발표했다. 2014년 6월부터 시작한 과제는 영유아 발달장애 평가도구를 개발, 정신건강 코호트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그는 “과제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코호트 등은 연구비가 중단되면 이어나갈 수 없다”고 밝히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R&D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계와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토론자로 나온 김은준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는 발달장애 치료와 관련된 기초연구 성과를 소개하며 임상, 기초연구, 제약 분야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이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이지수 연구원은 실제 발달장애인들의 생활 속에서 과학기술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장애인을 위한 기술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장애인의 니즈 해결 관점이다”며 연구자와 장애인이 서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토론회 참석자들도 목소리를 냈다. 발달장애의 치료법 개발을 위한 장기적인 연구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발달장애인과 그들의 보호자들을 위한 단기적인 과학기술 연구도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염한웅 부의장은 “토론회를 마치고 마음과 어깨가 무거워졌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이전에 의견을 수렴하여 발달장애인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에 대한 자문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장 입구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과학기술 개발성과 우수사례 전시가 함께 진행됐다.
- 최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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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2-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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