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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병희 객원기자
2017-02-28

최신 치료약, 검증보다 출시 먼저? 트럼프 정부 신약 검증 완화책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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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나 가족이 암 진단을 받으면 누구나 최선의 치료를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새로운 치료가 환자에게 득보다는 해를 줄 때도 있다. 이런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건당국에서는 신약의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철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미국 예일대 암센터에서는 한 종양 전문의의 사례를 들어 현재 트럼프 정부에서 진행되는 신약 검증 완화책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새로운 치료법이 해보다 득이 많으려면 안전성과 효과가 충분히 검증돼야 한다.  사진 : Pixabay
새로운 치료법이 해보다 득이 많으려면 안전성과 효과가 충분히 검증돼야 한다. 사진 : Pixabay

새 치료법의 부작용을 더 많이 알았다면?

80세 부친이 호진킨 병으로 진단받았을 때 아버지는 너무 몸이 약해져서 더 이상 걷기가 어려웠다. 종양 전문의는 암 치료를 위한 화학요법이 병을 호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때 항체를 사용하는 치료법이 대안으로 등장했다. 이 치료법은 환자의 정상세포는 그대로 두고 암세포만을 파괴하는 새 표적치료제였다.

아버지는 검증이 덜 된 치료법에 서명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게 전화해 “신약이 화학요법보다 실제로 더 나은지 어떻게 알 수 있니? 그게 네가 하는 연구 아니니?”하고 물었다.

실제로 그렇다. 나는 암 치료 결과 연구자로서, 초기 소규모 연구에서 성공적인 새로운 암 치료법이 일상적인 임상 치료법으로 채택됐을 때 실제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연구한다. 부친이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만한 새 치료법에 대한 대규모의 신뢰할 만한 연구가 아직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직감이 인도하는 대로 따르시라고 말했다.

되돌아 보면 아버지가 새 치료법이 나타낼 수 있는 가능한 부작용들에 대해 더 많이 알았다면 과연 그 치료법을 선택했을지 궁금하다. 치료를 시작하자 처음에는 종양이 줄어들었고, 힘을 되찾았다. 그러나 몇 달 후 발에 가벼운 통증이 나타났고, 이어 다리에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주치의는 치료 부작용으로 통증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부친은 이 부작용으로 걷기가 어렵게 되고 다시 침대에 누워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번에 그를 쇠약하게 한 것은 병이 아니라 치료였다.

그런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처럼 부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신약 치료를 받았다. 비싸지만 보험으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었고, 비싼 치료비는 새 치료법이 뭔가 특별할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미국 의료계에서는 FDA가 신약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요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 Pixabay
미국 의료계에서는 FDA가 신약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요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 Pixabay

신약 임상시험,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만 하는 건 문제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약 100명의 환자에 대한 소규모 연구만을 토대로 이 치료법을 승인했다. 임상 연구 대상 환자의 평균 나이는 31세로 부작용은 드물었다. 이는 암 치료 연구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많은 의학적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노인보다는 대체로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신약을 테스트한다.

새로운 암 치료법은 종종 중요한 과학적 진보를 반영하지만 실제로 환자에 미치는 영향은 ‘한 방에 끝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복잡한 새 치료법은 초기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블랙박스처럼 나중에 치료 결과를 분석하고 나서야 부작용 등의 원인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신치료법은 환자들에게 고려해야 할 절충안이 없이 기본설정이 그냥 ‘예’이다. 게다가 치료비도 엄청 비싸다.

불행히도 미국 정부는 신약 평가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제약회사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규제를 축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FDA 청장 후보도 신약에 필요한 연구를 줄이고 더욱 빨리 시장에 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공유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제약사 임원들과의 모임에서 신약 관련 규제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발표를 해 의료계와 소비자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취임 선서를 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 : Wikipedia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제약사 임원들과의 모임에서 신약 관련 규제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발표를 해 의료계와 소비자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취임 선서를 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 : Wikipedia

‘신약 검증은 줄이고, 검증 위한 연구 기금은 불확실’

‘21세기 질병 치료 법안’(The 21st Century Cures Act)은 이미 기업들이 덜 엄격한 증거를 가지고도 FDA 승인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제약사들이 지지한 반면 소비자단체들이 반대한 이 법은 지난해 12월 의회를 통과해 발효됐다.

그러나 미국 보건인적자원부 산하 ‘보건 연구와 질 관리 기구’(AHRQ)와 오바마 정부 아래서 많은 지원을 받았던 ‘환자중심 성과 연구소’(PCORI)와 같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과를 연구하는 대형 연구기금 제공처들은 현재 의회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환자는 최첨단 치료법을 신속하게 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치료가 득보다 해를 끼치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실제 환자 치료를 위해 새 치료법에 대한 평가 노력을 배가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우리는 증거가 좀 덜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FDA는 신약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요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열정과 자금 지원이 초기 소규모 임상시험 외에 실제로 환자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지를 시험하는데 투입돼야 한다.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시험 중인 약은 많은 환자들에게 투여해서는 안된다.

종양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부친은 사망하기 전 나와 가진 마지막 대화에서 “나 같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상황을 연구해야 하지 않니?”하고 물었다. 반어적인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냥 “네, 해야 지요.”라고 대답했다.

김병희 객원기자
kna@live.co.kr
저작권자 2017-02-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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