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미국의 뇌 과학자가 어느 날 갑자기, 그러니까 58세가 되던 2005년, 놀라운 사실에 직면한다. 어떤 뇌 스캔 사진을 봤더니, 분명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것이었다. 저 인간이 누구지?
알고 보니 그 뇌 스캔 사진은 자신의 것이었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말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전혀 공감을 못하는 정신병의 한 종류이다. 잔인하게 연쇄살인을 하면서도 죽는 사람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냉혈한으로 알려진 바로 그 사이코패스 말이다.
유명한 살인자의 후손인 의대교수
제임스 팰런(James Fallon 1947~ ) 미국 어바린 의대교수가 쓴 ‘괴물의 심연’(THE PSYCHOPATH INSIDE)은 자신의 본 모습을 관찰한 뇌과학자의 자기고백서이다.
이때부터 뇌 과학자의 자기 성찰이 시작된다. 알고 보니 그의 조상들은 매우 유명한 살인자 집안이었다. 1673년 73세의 레베카 코넬(Rebbeca Cornell)이 46세 된 아들 토머스에게 살해됐다. 레베카 코넬은 코넬 대학 설립자인 에즈라 코넬(Ezra Cornell)의 조상이다. 레베카는 저자의 8대 아버지의 고조할머니였다.
더구나 레베카는 1892년 친부와 계모를 도끼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리지 보든(Lizzie Borden)의 직계조상인데, 보든은 저자의 사촌뻘이었다. 레베카의 후손인 앨빈 코넬(Alvin Cornell)은 1843년 아내 해나를 쇠삽자루로 때린 뒤 면도칼로 목을 그어 살해했다. 저자의 먼 할아버지인 존 래클랜드(John Lackland)는 영국 군주 중 가장 잔인하고 사기꾼이며 도덕관념이 없고 믿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역사책에서 희대의 난봉꾼이거나, 역적이거나,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살인을 했거나, 사기를 쳤거나 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후손은 지금도 사방에 흩어져 산다. 그리고 아마도 그 중 몇 사람은 바로 당신이나 나와 이러저러하게 엮인 조상일 수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괴물의 심연’을 쓴 저자의 고민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전적인 결함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일 것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유전적인 관점에서도 인간이 가진 2만개의 유전자, 46개 염색체, 60억개 염기쌍에 실린 정보는 단지 5%만을 알려줄 뿐, 95%는 비부호핵산(non-coding nucleic acid)라는, 비밀 뒤에 숨어있다는 것이 최근 밝혀진 내용이다.
저자는 공개강좌인 TED에 나가 사이코패스의 과학적 특징을 연설하는 뒤쪽에 잠깐 자기 가족력을 넣었다. (가족의 동의를 받았다.) 이것이 많은 반향을 일으켜 신문 인터뷰 기사로 나갔고, 범죄 영화에 응용됐으며, 세계적으로 120회가 넘는 강연과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2009년 한 TED강연은 지금까지 조회수 184만을 기록했다.
중요한 것은 팰런 교수가 살인 집안 가족력에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졌지만,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폭력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발견한 사이코패스의 세 가지 원인은 첫 번째는 유전적인 요소, 두 번째는 전측두엽의 유별나게 낮은 기능, 그리고 세 번째는 학대받은 어린시절이다.
유전자 보다 중요한 요인은 ‘행복한 어린 시절’
저자의 뇌는 살인자처럼 생겼고, 위험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에 유전자 결정론을 믿는다면, 저자는 폭력적인 사람이어야 했다.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졌지만, 제임스 팰런은 반사회적인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범죄전력도 없고, 당연히 전과도 없다. 무엇보다 사회에 다양한 방법으로 기여했다.
결국 이 사이코패스 학자는 전세계에 잠재된 사이코패스 동료들을 격려하고 힘을 주기위해 쓴 것 같다. 통계적으로 인구의 2% 정도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졌다.
제임스 팰런 교수는 운 좋은 사이코패스였기에 부모님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사이코패스적인 대담함(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과의 공감능력이 엄청나게 떨어진다)은 과학적인 탐구에 매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이코패스는 자아도취증이 강하고, 목표지향적이라 돈을 버는 사람 중에 많이 있다. 유명 인사 중 대표적인 사이코패스로 학자들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들기도 한다.
사이코패스는 제대로 양육될 때 유능한 지도자일 수 있다. 제임스 팰런 같이. 독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져보기 바란다. “나는 혹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7-01-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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