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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준래 객원기자
2016-11-25

암 치료한 박테리아, 스스로 자폭 난치병 치료에 '킬스위치'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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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스릴러 영화 ‘레옹’은 주인공인 킬러의 독특한 습관과 12세 소녀와의 우정 등으로 인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워낙 멋진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레옹이 수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마지막 장면이다. 그는 자신이 이미 회복 불능인 상태라는 것을 감지하고는 자폭 스위치를 당겨 주위의 악당들과 함께 사라지고, 그 덕분에 소녀는 목숨을 구한다.

인공지능 및 IT분야에 이어 바이오분야까지 킬스위치 기능이 적용되고 있다 ⓒ wikipedia
인공지능 및 IT분야에 이어 바이오분야까지 킬스위치 기능이 적용되고 있다 ⓒ wikipedia

자폭 스위치. 이른바 ‘킬스위치(kill switch)’에 대한 소식이 최근 과학계에서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프로 바둑기사를 이긴 지적 능력에 두려움을 느껴 구글의 딥마인드가 킬스위치 기능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도난방지를 위해 이 기능을 탑재시킨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킬스위치 기능을 난치병 치료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킬스위치 기능이 탑재된 박테리아를 이용하여 난치병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링크)

유전자 조작 기술로 박테리아를 로봇처럼 개조

로봇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암 같은 난치병 치료에 마이크로 로봇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로봇을 사람의 몸 안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의 미하일 사피로(Mikhail Shapiro) 교수와 연구진도 이 같은 연구를 시도하던 연구팀 중 하나였다.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진척이 없자,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실험을 다시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박테리아를 마이크로 로봇처럼 개조하기로 결정한 것.

원하는 신체 부위로 박테리아를 모으면 효과적인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 ⓒ Caltech
원하는 신체 부위로 박테리아를 모으면 효과적인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 ⓒ Caltech

물론 개조를 한다는 것이 박테리아를 로봇으로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박테리아가 인체 내에서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조작한다는 것이다.

사피로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첫 번째 기능은 약물을 원하는 인체 내의 위치에 정확하게 투여하는 것. 이를 위해서는 박테리아가 스스로 목표를 찾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사피로 교수는 “특정한 장소를 선호하는 박테리아의 성질을 이용하면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예를 들어 종양이 자라고 있는 세포의 내부는 산소 농도가 떨어지는 특성을 보이는데, 이런 곳에는 혐기성 조건을 선호하는 박테리아들이 주로 모인다”라고 설명하며 “특정 종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을 혐기성 박테리아가 분비할 수 있도록 유전자 조작을 한다면 이론적으로 볼 때 아주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킬스위치는 박테리아의 과다 증식을 막기 위한 기능

두 번째는 약물전달 보다 더 흥미로운 기능으로서, 미션을 마친 박테리아가 스스로 자폭할 수 있는 킬스위치 기능을 유전자 조작 기술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약물 전달 임무를 완수한 박테리아에게 왜 자폭 기능을 부여하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사피로 교수는 “만약 박테리아가 그대로 인체 내에 남게 되면 적정 수를 벗어나는 과다 증식을 통해서 오히려 환자를 해치거나 혹은 예기치 않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킬스위치를 유전자 조작기술로 부여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백질에서 박테리아가 자폭할 수 있는 킬스위치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라고 공개했다.

연구진은 우선 열에 민감한 단백질을 킬스위치의 소스로 삼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러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살모넬라균에 들어있는 단백질이  42~44℃에서 작동한다는 특징을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단백질이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36~39℃에서 반응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데 성공했다.

온도에 민감한 단백질의 특징을 활용한 킬스위치 기능  ⓒ Caltech
온도에 민감한 단백질의 특징을 활용한 킬스위치 기능 ⓒ Caltech

사피로 교수는 “예를 들어 박테리아가 투여된 환자의 체온이 37℃로 올라가면 단백질이 즉시 반응하면서 박테리아를 죽게 만들 수 있다”라고 소개하며 “이 같은 기능을 활용하면 박테리아가 자폭하거나 혹은 작동을 멈출 수 있게 맞춤형으로 디자인 할 수 있다”라고 기대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단백질의 이런 특징은 박테리아의 약물전달에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종양이 있는 부위를 초음파 등으로 온도를 올린 다음, 여기서만 약물을 분비하도록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피로 교수는 “박테리아의 장점 중 하나는 그냥 배양만 하면 쉽게 대량으로 증식해서 치료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히며 “다만 인체에 면역 반응을 유발하거나 혹은 그 자체가 감염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실제 활용을 위해서는 철저한 임상시험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김준래 객원기자
stimes@naver.com
저작권자 2016-11-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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