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로 100명 이상이 죽고, 400건 가까운 폐 손상 의심사례가 나타나면서 생활 속의 화학물질 피해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비교적 단기간에 피해가 노출된 사례지만, 우리가 의식주 생활에서 접촉하는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환경호르몬)은 눈에 보이지 않게 장기간에 걸쳐 인체 건강에 큰 피해를 끼친다. 이는 돈으로 따져도 엄청난 액수로 알려진다.
최근 미국 뉴욕대 랭고니 의료원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플라스틱 병, 금속 통조림 캔, 세정제, 내연제, 장난감, 화장품과 농약을 통해 날마다 위험 화학물질에 저농도로 노출됨으로써 발생하는 보건 비용과 손실 비용이 미국에서만 연간 34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과 접촉해서 발생하는 피해 총액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3%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 조사 결과는 의학저널 ‘랜싯 당뇨와 내분비학’(The 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 17일자 온라인판에 발표됐다. 피해 비용은 이 화학물질들이 독성을 나타내서 일으킬 수 있는 15개 이상의 의료문제로부터 산출했다. 연구진은 화학물질에 대한 인체 노출은 소비제품을 사용하거나 제품들이 망가지는 중에 사람들이 은연 중 독성물질을 먹고 이것이 몸에 쌓여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신경장애로 어린이 IQ도 떨어뜨려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은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 몸의 자연적인 호르몬 기능을 방해해 건강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일본학자들이 '환경호르몬'이란 이름을 붙여 우리 나라에서도 이 용어가 많이 쓰이나 정식 명칭은 아니다. 이들 화학물질의 종류로는 △주석으로 만든 식품 캔의 안에 입히는 비스페놀 A(BPA) △플라스틱 음식 용기와 많은 화장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가소제(프탈레이트) △가구나 포장재 등에 불이 잘 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쓰는 내연제(PCB와 같은 PBDEs) △농약(클로르피리포스와 유기인산화합물) 등이 있다.
3년에 걸쳐 수행된 이번 분석은 미국 내에서 통상적인 내분비 교란물질로 인한 비용 손실 평가로는 최초의 연구다. 연구진은 이 같은 화학물질에 노출됨으로써 신경장애와 행동장애가 증가될 뿐만 아니라 IQ 수치를 떨어뜨리고 남성 불임, 태아 결손, 자궁내막증, 비만, 당뇨병과 몇몇 종류의 암 발생이 늘게 한다고 지적했다.
논문의 제1저자인 리오나르도 트라샌드(Leonardo Trasande) 부교수(역학)는 “이번 연구는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이 건강 비용은 물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증하는 증거에 또 다른 무게를 실어줬다”고 강조했다.(동영상 설명 http://bcove.me/67y9cs0m)

내연제와 농약이 관련 질병 3분의 2 차지
연구진은 이번 조사를 위해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에 참여한 사람들의 혈액 표본과 소변을 분석해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이 들어있는지를 살펴봤다. NHANES는 주요 질병의 유병률과 위험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매년 5000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조사 결과 높은 독성이 있는 내연제 PBDE와 농약이 전체 내분비 교란 물질로 인한 질병 부담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했고, 이 화학물질들은 대부분 태아에게 신경계 손상을 일으켰다. 트라샌드 교수는 특히 해마다 PBDE 노출이 어린이들의 전체 IQ를 1100만 정도 낮추고, 추가적인 4만3000례의 ‘지적 장애’를 일으키며 그에 따른 질병 비용이 266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농약 노출은 IQ치를 180만 떨어뜨리고 매년 7500례 이상의 장애와 함께 447억 달러의 총 건강비용 손실을 낳는 것으로 분석됐다.
트라샌드 교수는 PCB 같은 화학물질은 규제가 좀더 심한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같은 연구팀이 지난해 유럽지역에서 화학물질로 인한 질병 손실을 분석한 결과 10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됐다. 그는 “우리 분석에 따르면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강력한 내분비 교란 물질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며, “정부 승인을 받기 전 상품 제조에서 화학물질 사용의 안전성 시험만이 아니라, 일단 소비재로 사용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감시 항목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폐증, 비만, 당뇨, 자궁내막증, 심장병 등 부추겨
연구팀이 계산에 넣은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로 인한 다른 주요 질병군에는 1500례의 자폐증과 4400례 이상의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가 포함됐다. 특히 5900명의 성인 비만과 1300례의 당뇨병, 8만6000례의 자궁내막증 발생에 플라스틱 가소제인 프탈레이트 노출이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지목됐다. 이로 인해 460억 달러의 손실비용이 발생하고 심장병과 뇌졸중 같은 혈관질환으로 1만700명이 조기 사망했다는 분석이다.
트라샌드 교수는 분석에 사용된 통계 모델링에는 특별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질병 통계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계산은 비교적 낮은 척도로 잡았기 때문에 만약 모든 질환자를 포함시킨다면 실제 비용은 훨씬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분비 교란 물질 접촉 최소화하려면
시니어 연구자인 테레사 아티나(Teresa M. Attina) 박사는 가족들이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몇가지 간단한 일을 꾸준히 실천하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을 담거나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랩을 씌워 전자레인지에서 음식 조리하는 것을 피한다.
● 플라스틱 음식 용기는 식기세척기로 씻지 말고 손으로 닦는다.
● 바깥 바닥의 리사이클(재생) 표시 안에 3이나 6, 7 숫자가 쓰여진 플라스틱 용기는 플라스틱 가소제가 사용됐을 수 있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것이 좋다.
● ‘모든 원료가 천연(all natural)’ 혹은 ‘무향료(fragrance-free) 화장품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김병희 객원기자
- kna@live.co.kr
- 저작권자 2016-10-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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