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질환을 막는 방법에는 통상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병원균과 기생충을 항생제 같은 약으로 직접 처리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전염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최근 이 두 가지 방법 외에 세 번째의 전략이 개발돼 효과가 입증됐다. 바로 인체에서 병원체가 질병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제거하도록 조정하는 방법이다.
‘네이처 사이언스 리포트’(Nature Scientific Reports) 최근호에 발표된 이 발견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과학자들 간의 상호 협력이 이끌어낸 뜻밖의 수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대 암센터 이사인 댄 테오도레스쿠(Dan Theodorescu) 교수는 우연한 기회에 윌리엄 페트리 미국 버지니아대 감염병 및 국제보건학과 과장과 대화를 하면서 혁신적인 항암 과학기술을 감염병 연구에 적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들 연구팀은 논문의 제1저자인 첼시 마리(Chelsea Marie) 페트리교수실 연구원과 함께 인간의 어떤 단일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을 때 대장 벽 조직에 기생하며 질병을 일으키는 아메바 이질 원충(E. histolytica)에 대해 면역성이 부여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들이 작동을 멈추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아메바 이질 원충은 세계적으로 해마다 5,000만명을 감염시키고 심각한 설사로 인해 4만~11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기생충이다.

방광암 세포 라이브러리 이질 원충에 접촉시켜
첼시 박사는 댄 교수가 방광암 연구를 통해 축적한 세포 라이브러리를 아메바 이질 원충에 적용해 많은 세포들이 이 기생충에 의해 죽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특별히 수천 개의 독립적인 비활성 유전자를 가진 방광암 세포 라이브러리를 만들기 위해 RNAi라는 기술을 채용했다. 그런 다음 이들을 배양해 아메바 이질 원충에 접촉시켰다. 테오도레스쿠 교수는 “암 연구에서는 늘상 하는 일로서, 대개 어떤 유전자가 비활성일 때 항암치료에 더 잘 반응하는가를 찾는다”고 말했다.
마리 박사는 “이 아메바는 집속탄과 같은 게걸스런 킬러여서 우리가 숙주 세포들의 유전자를 어떻게 변형하든 이 세포들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리 박사의 생각은 맞았다. 아메바 이질 원충은 수천 개의 독립된 세포 배양조직들을 죽였다. 그러나 적은 수의 세포들이 기생충에 저항성을 보이는 것이 확인됐다. 이것은 단순히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일까 아니면 비활성 유전자들이 이들 세포들에 어떤 면역성을 부여했기 때문일까. 마리 박사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죽은 세포들을 제거하고 살아남은 세포들을 다시 기생충에 감염시켰다.
마리 박사는 “그것은 요행이 아니었다”며, “기생충에 감염시킨 뒤 살아남은 세포들을 아홉 세대에 걸쳐 반복적으로 같은 실험을 해서 선별한 결과 특별한 유전자가 결여된 세포들이 배양조직에서 더욱 강회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마리 박사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을 활용해 저항성을 부여한 유전자들을 식별해 낸 뒤 여러 요소들이 세포 안팎의 포타슘 흐름 조절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확인된 유전자로 KCNA3, KCNB2, KCNIP4, KCNJ3 그리고 SLC24A3이 포타슘 전달에 관여했다. 후속 실험에서 기생충으로 처리한 새로운 장(腸) 세포들은 세포 사멸 바로 전에 세포 안에서 세포 벽 바깥으로 포타슘이 흘러가는 포타슘 유출(efflux) 현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테오도레스쿠 교수는 “이를 통해 매우 명백한 추론이 가능하게 됐다”며 “기생충은 세포 사멸 바로 전에 포타슘 유출 현상을 일으키며, 포타슘을 전달할 수 없게 된 세포들은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염병은 병원체를 죽이고, 병의 확산을 막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왔으나, 이번 연구는 병원체의 특성과 숙주의 특성을 조절함으로써 질병을 예방, 치료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사하고 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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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9-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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