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고자 주인공인 과학자는 손상된 뇌기능을 회복시켜주고 인지기능을 향상시켜 주는 치료제를 개발한다. 이 약물의 임상실험 대상으로 유인원들이 이용되고, 한 유인원에게서 ‘시저’라는 이름의 새끼가 태어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저를 자신의 집에서 키우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저의 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바로 공상과학 영화의 전설로 통하고 있는 ‘혹성탈출’ 리메이크 버전(remake version)의 줄거리다. 오래 전에 개봉된 오리지널 버전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이지만, 유인원이 사람을 능가하는 지능을 갖는다는 기본적인 소재는 동일하다.
오리지널 버전이 개봉된 1968년 당시만 해도 영화의 줄거리는 그야말로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상상’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거의 5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주변여건이 많이 달라졌다. 영화 속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가능한 ‘미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의 뇌질환 규명을 위해 혼합 뇌 시도
의료기술 전문 매체인 메디컬익스프레스(medicalexpress)는 최근 미 로체스터대의 과학자들이 실험용 쥐의 뇌에 인간의 신경교세포(glial cells)를 주입했을 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고 보도하면서, 실험 결과 쥐들의 기억력과 인지력이 현저하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관련 링크)
위험하고 엽기적으로 보이는 실험을 진행한 이유에 대해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로체스터대의 스티브 골드만(Steve Goldmann)박사는 “살아 있는 쥐의 뇌 속에 있는 사람의 세포를 연구함으로써, 뇌 질환을 보다 잘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했다”라고 설명했다.
골드만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연구진은 현재 인간의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을 쥐에게 적용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발성경화증이란 뇌와 척수의 중추신경계에 신경이 침범하여 장애를 유발하는 신경학적 질환이다.
탈수초성질환(demyelinating disease)의 일종으로서, 신경세포의 세포체에서 길게 뻗어 나온 가지인 축삭돌기를 둘러싸고 있는 수초가 파괴되는 병이다. 이는 마치 전선의 피복이 벗겨지는 것과 같은 질환으로서, 그에 따른 영향은 상당히 심각하다. 수초가 파괴되면 신경 전도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물론, 신경 세포가 파괴되어 신체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연구진이 다발성경화증 치료를 위해 인간의 신경교세포를 쥐에게 이식하여 만든 혼합 뇌는 쥐 뇌세포의 절반을 차지하는 쥐의 뉴런(Neuron)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뉴런을 지지하는 거의 모든 신경교세포는 사람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경교세포는 신경세포 자체는 아니지만 신경 조직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다양한 세포들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골드만 박사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혼합 뇌는 인간의 뇌가 아니라 여전히 쥐의 뇌다. 하지만 뉴런 세포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사람의 세포”라고 밝혔다.
생명 윤리 논란 피하기 위해 원숭이는 제외
연구진은 우선 낙태한 태아에서 채취한 신경교세포 중에서도 별 모양의 ‘성상교세포’를 실험용 쥐의 뇌에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자 신경교세포들이 희소돌기신경교세포(oligodendroglia)로 분화한 다음, 신경 수초를 복구하고, 신경 기능까지 향상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성상교세포는 뻗어 있는 많은 돌기 때문에 별처럼 보이는 신경교세포로서 뇌와 척수에 대부분 존재한다. 혈뇌장벽의 안쪽 세포들을 생화학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혈관벽에 돌기가 붙어있어 신경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골드만 박사는 “우리가 발견한 사실이 향후 인간에게 적용이 가능해진다면, 현재까지 난치병으로 분류되어 있는 다발성경화증 치료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들 쥐를 상대로 표준적인 기억력과 인식에 대한 실험을 실시한 결과 쥐의 지능이 훨씬 더 높아졌다는 사실이었다. 분석 결과 혼합 뇌로 이루어진 쥐의 기억력이 과거보다 4배나 좋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사람의 뇌세포를 이식받은 쥐는 미로 찾기 테스트에서는 다른 쥐들보다 2배나 빨리 길을 찾았고, 전기와 소리 자극에도 반응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래서 이들 쥐의 뇌를 살펴본 결과 기억과 학습의 중추인 해마의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Synapse)가 다른 쥐보다 튼튼해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기억 및 인지 능력이 향상된 원인에 대해 연구진의 관계자는 “너무 엄청난 결과여서 우리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라고 전하며 “인간의 성상교세포가 쥐의 것보다 10배에서 20배 정도가 더 큰 만큼 신경신호를 조정하는 기능도 높기 때문에, 이런 기능이 쥐의 머리를 비약적으로 좋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분석했다.
세포 분야의 권위자인 독일 루트비히막시밀리안대의 볼프강 에르나르드(Wolfgang Ernard) 교수도 “태아의 세포가 다른 종에서도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고 말하며 “세포의 어떤 특성에 의해 그런 작용이 일어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그런 특성이 어떻게 발휘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골드만 박사는 태아의 세포를 사용했다는 도덕적 문제와 새로운 종의 쥐가 탄생할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에 대해 “사람의 뇌세포를 이식했더라도 결과물은 분명히 사람이 아닌 쥐”라고 강조하며 “다만 앞으로 일어날 문제 등을 고려하여 원숭이 등으로 실험을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내 연구진도 성상교세포를 연구하여 뇌질환 정복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KIST 뇌과학연구소의 이창준 박사팀은 최근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성상교세포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고 이를 통해 기억장애가 발생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바 있다.
이번 결과는 기존 연구들이 대부분 신경 세포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비신경세포에 집중하여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기억 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을 밝혀냄으로써 더욱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기억력 상실 및 치매 등과 같은 뇌질환 치료에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 stimes@naver.com
- 저작권자 2014-12-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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