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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천연두 바이러스의 운명 2016년 이후 폐기 여부 결정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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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 제33차 총회에서 천연두 분과위원장인 도널드 A. 핸더슨 박사는 지구상 최악의 질병에 대한 소멸을 선언했다. 1977년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항구도시 메르카에서 알리 마우 말린이라는 23세의 천연두 환자가 발견된 이래 발병 사실이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1979년부터 예방접종을 중단했으며, 1993년 11월에는 그 병을 제1종 법정전염병 목록에서 삭제했다. 인류 역사상 지구상에서 한 질병을 완전히 박멸하는 데 성공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세기에만 3억 명이 사망함으로써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켰던 그 질병의 정체는 바로 천연두였다.

천연두에 걸리면 약 7~17일의 잠복기간을 거친 후 두통과 일시적인 정신착란, 구토증세와 함께 대표적 증상인 발진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전염성이 매우 높아 거의 3명 중 1명이 전염되는 질환이었다. 또 감염된 사람 중 약 1/3이 사망에 이른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미국과 러시아의 두 연구소에 공식 샘플로 보관되어 있다. ⓒ CDC public domain
천연두 바이러스는 미국과 러시아의 두 연구소에 공식 샘플로 보관되어 있다. ⓒ CDC public domain

천연두는 농업이 처음 시작된 기원전 1만년경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처음 나타나 고대 이집트 상인들에 의해 유럽 및 인도 등지로 퍼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157년에 사망한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에게도 천연두의 증상과 비슷한 발진의 흔적이 발견됐으며, 중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1112년경 천연두가 묘사되어 있다.

천연두는 특히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치명상을 입혀 아즈텍제국과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아즈텍을 침입한 스페인 지원병 중 한 명이 천연두에 걸린 이후 거대한 아즈텍 제국은 전체 인구의 1/3 이상이 이 질병으로 인해 죽어나갔다.

당시 유럽인들은 천연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처음 이 질병을 접했던 아즈텍인들은 면역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아즈텍 제국은 전쟁다운 전쟁 한 번 치러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멸망했다. 그 후 천연두는 페루의 잉카 제국으로 옮아가 그곳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최근 NIH 실험실에서 살아있는 채 발견돼

옛날 우리 조상들은 이 병을 ‘마마’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것과 더불어 가장 무서운 것이라 하여 생긴 말이 바로 ‘호환마마(虎患媽媽)’였다. 무당이 마마신에게 집안의 아이들에 대한 무사안녕을 비는 굿이 ‘호구거리’이며, 못생긴 여자를 일컫는 ‘박색(薄色)’이란 단어도 마마를 앓아 곰보 자국이 생긴 얽은 얼굴이란 뜻의 ‘박색(縛色)’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지난 7월 1일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천연두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지난 60년 동안 사용되지 않던 실험실의 밀봉된 유리 시약병 6개 가운데 2개에서 살아있는 천연두 바이러스가 나온 것.

이 문제의 천연두균 표본은 즉시 미국 질병통제예방본부(CDC)로 이송된 후 추가 조사를 마친 다음 모두 고압멸균기 속에서 파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다. 국제협약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가 천연두 바이러스의 폐기를 직접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WHO의 담당자가 직접 CDC가 있는 애틀란타로 가서 폐쇄회로 TV를 통해 폐기 장면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에볼라 사태로 인해 비행 일정을 잡기 어려울뿐더러 여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담당자가 아직 CDC로 가지 못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WHO에서는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이 바이러스를 폐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미국과 러시아에서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천연두 바이러스의 공식 샘플에 대한 폐기 여부에 다시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80년 WHO에서 천연두의 소멸을 공식 선언한 이후 천연두 예방접종은 종결됐으며 각국에서 보관하고 있던 천연두 바이러스도 폐기됐다. 백신 제조를 위해 채집, 배양한 천연두 바이러스들이 1984년까지 74개 연구기관에서 폐기된 것.

그러나 미국의 CDC와 러시아 국립 바이러스·생명공학연구센터(VECTOR)의 단 두 곳만은 예외였다. 이 두 연구소에서 800개의 유리관에 보관하고 있는 천연두 바이러스는 WHO에서도 인정하는 공식 샘플이다.

이에 대해 개발도상국 및 제3세계 국가들은 미·소 양강이 그 샘플을 이용해 생물학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과 구 소련의 과학자들도 처음엔 폐기에 동의했으나 1999년 이후 입장이 바뀌었다. 3가지 가능성에 대비해 바이러스 폐기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

유전자 조작 가능성에 대비해야

첫째는 미라나 유물 속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래 전에 매장된 인간의 시신에서 종종 바이러스가 발견된 적이 있지만, 아직까지 DNA를 복구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보존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시베리아 같은 영구동토대의 지하 무덤에 보관된 미라가 완벽한 천연두 바이러스를 포함하고 있을 개연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둘째는 이번에 NIH에서 발견된 것처럼 천연두 바이러스를 비밀리에 보관한 곳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천연두 바이러스가 미국과 러시아의 두 연구소에만 존재할 거라고 믿는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

셋째는 자연계에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은밀한 실험실에서 천연두 바이러스가 합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1990년대 이후 천연두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만천하에 공개되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구나 기존의 바이러스를 유전적으로 조작해 숙주를 바꾸거나 약물 저항성을 강화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과학계에서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WHO에서는 미국과 러시아의 이 같은 주장을 감안해 그동안 천연두 바이러스의 공식 샘플에 대한 폐기를 수차례 연기해왔다. 지난 5월에도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의를 가진 WHO의 의사결정기관인 세계보건의회(WHA)는 천연두 바이러스 샘플의 운명을 다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대신에 WHO는 ‘생물학적 테러리스트들이 천연두 바이러스를 합성할 위험이 어느 정도인가’에 관한 평가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이 보고서는 이를 경우 2016년에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천연두 바이러스의 공식 샘플에 대한 운명도 그때 결정될 계획이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4-11-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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