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길이가 3㎜ 전후인 초파리는 영어명(fruit fly)에서 알 수 있듯이 썩은 과일을 매우 좋아한다. 썩은 과일 속에 알을 낳으면 거기서 부화한 유충이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과일 속 깊은 곳으로 구멍을 파고 들어가 양분을 섭취한다. 때문에 초파리는 감미로운 열대 과일을 변질시키는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에겐 이처럼 귀찮은 벌레에 불과하지만 생물학자들에게 초파리는 훌륭한 실험동물로 대접받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랑초파리의 경우 암컷 1마리가 400~900개의 알을 낳는데 하루 정도 지나면 부화하여 애벌레가 된다. 그 후 약 열흘 정도면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며, 2~3개월 정도 살다가 죽는다.
유전학 연구에서는 교배를 통한 실험이 필수이므로 이처럼 한 세대가 짧으며 번식을 많이 하는 초파리가 제격이다. 또한 좁은 장소에서 간단한 먹이로 많은 개체를 쉽게 기를 수 있다. 쥐로는 수십 마리를 대상으로 수행하는 실험을 초파리의 경우 수천 마리를 대상으로 할 수 있어 훨씬 더 의미 있는 통계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돌연변이가 많은 점도 초파리의 장점 중 하나다. 돌연변이는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탐구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되기 때문. 게다가 초파리는 사람의 질병 관련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몇몇 질병의 경우 생쥐보다 사람 질병 증상을 흉내 내기가 쉽고 편리하다.
때문에 초파리는 유전학 외에도 종분화 과정 같은 진화 연구, 행동과 생태에 관한 연구, 생리학, 세포 생물학과 발생에 관한 연구 등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연구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사람보다 우주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 특성으로 인해 최근엔 우주의 무중력 및 방사선, 옅은 산소에서 살아남는 방법 등 우주생물학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초파리의 또 다른 특성 중 하나는 뛰어난 후각이다. 과일 썩는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어디서 날아오는지 초파리들이 귀신처럼 모여든다. 이처럼 뛰어난 후각으로 초파리는 수소와 중수소를 냄새로 구별할 수 있다.
수소와 중수소를 냄새로 구별
중수소는 수소의 동위원소 중 하나로서, 정상 수소와는 달리 원자핵에 하나의 양성자와 하나의 중성자를 보유하고 있다. 즉, 정상 수소보다 약 두 배가 많은 원자량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중수소의 화학적 속성은 정상 수소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다. 이는 수소와 중수소의 냄새도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럼 초파리는 어떻게 냄새로써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걸까. 후각의 성립에 관한 기존의 지배적 이론은 “방향제 분자가 후각세포의 막에 존재하는 수용체 단백질의 구멍에 마치 열쇠가 자물쇠에 결합하는 것처럼 도킹한다”는 것이었다. 방향제 분자와 수용체 단백질의 도킹은 분자와 구멍의 형태에 의존하며, 이 형태가 들어맞지 않을 경우 뇌에 중성신호가 전달된다고 주장한다. 즉, 방향제는 분자의 형태에 의해 감지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MIT의 루카 튜린 박사는 방향제가 원자의 진동에 의해 감지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유력한 증거로 초파리의 수소 및 중수소 냄새 구별에 관한 이 연구결과를 꼽았다. 중수소의 경우 질량이 무거우므로 다른 원소와 결합하여 분자를 형성할 경우 정상 수소보다 느리게 진동한다. 즉, 이 진동수의 차이로 초파리는 수소 및 중수소가 각각 포함된 방향제를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튜린 박사팀은 중수소가 포함된 방향제를 기피하도록 훈련된 초파리가 나이트릴에도 기피 현상을 보인다는 실험결과를 얻어냈다. 나이트릴의 진동수는 중수소와 탄소의 결합에서 나타나는 진동수와 유사하므로 진동수의 차이로 초파리가 냄새를 맡는다는 자신의 이론이 확실하다는 것. 그러나 이 연구 하나만 갖고서는 기존의 후각성립 모델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할 수 없다는 견해를 보이는 과학자들이 많다.
초파리들은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의 농도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 알코올 농도 3~5%의 맥주에는 이끌리지만 보드카나 진 가까이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것. 그 이유는 바로 건강한 새끼를 얻기 위해서다. 적당한 농도의 에탄올을 함유한 식품에서 자라는 유충은 건강한 성충이 되어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는다.
꿀벌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꽃가루 매개자로서의 가능성
그런데 알고 보면 맥주 속의 효모가 향긋한 냄새를 피워 초파리를 유혹하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결과 밝혀졌다. 효모는 과일향이나 꽃향기를 내는 다양한 휘발성 대사물을 생성하여, 발효음료의 독특한 풍미에 기여한다. 이 냄새를 맡고 초파리가 날아들면 효모는 초파리의 다리에 있는 미세한 털에 달라붙어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된다.
즉, 서식지의 과밀화를 막기 위해 초파리를 이용해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가는 셈이다. 따라서 빠르게 증식하는 환경에 처할 경우 효모는 더 많은 향기를 내뿜어 초파리를 불러들인다. 한편 다른 곳으로 이주한 효모들은 근연관계가 먼 효모와 교배를 하기도 한다. 이 경우 초파리는 중매쟁이 노릇도 하는 셈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벨기에 루벵가톨릭대학교의 케빈 페르스트레펜 교수팀은 꿀벌이 점점 감소해가는 현 상황에서 새로운 꽃가루 매개자로서의 가능성을 초파리에게서 엿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호주의 과학자들은 초파리의 후각 능력을 마약과 폭탄을 찾아내는 새로운 기술에 적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서섹스 대학의 노보트니 교수가 이끄는 공동연구팀은 초파리에 있는 20여 종의 감각기 수용체 뉴런이 와인과 관련된 36종의 화학물질에 반응할 뿐만 아니라 생태학적으로 부적절한 약물, 연소성 물질, 폭발성 물질들에 관련된 화학물질 35종에 대해서도 반응하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결과가 향후 동물의 후각 능력을 모방한 ‘전자코’를 개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자코는 인간의 후각 시스템을 모방하여 냄새를 구분하고 화학적 성분을 분석해내는 전자장치를 말한다.
전자코는 화학검출기와 신경회로망 같은 패턴 인식 기능을 가진 장치로 구성되는데, 인간의 코가 연속적으로 다른 냄새를 맡지 못하며 맡을 수 있는 냄새의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완할 수 있다. 연구팀은 초파리의 후각 능력을 모방한 전자코가 만들어지면 폭발물이나 화학무기, 마약뿐만 아니라 식품의 품질 분석, 환경 모니터링, 화산 지질 모니터링, 해충 감지 등의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 저작권자 2014-10-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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