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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황정은 객원기자
2014-01-06

질병과 건강의 회색지대, 미병(未病)을 아시나요 [인터뷰] 이시우 한의학연구원 한의의료기술연구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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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몸이 계속해서 무겁고 피로한 상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사람의 신체 상태에 대해 ‘미병(未病)’ 이라고 이야기 한다. 뚜렷한 질병은 없지만 건강상 여러 가지 이상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 주로 나타나는 증상인 미병은 우리나라 성인 인구 대부분이 증상을 드러내고 있다. 성인 중 약 47%가 병이 없음에도 건강상 여러 가지 이상을 호소하고 있으며 약 70.7%가 피로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병, 질병과 건강의 중간상태

▲ 이시우 한의학연구원 한의의료기술연구그룹장 ⓒKIOM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지난 2012년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아직 세계적으로 낯선 개념인 ‘미병(未病)’을 집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기후와 라이프스타일, 식습관과 의생활의 모습이 과거와 다르게 변모하면서 현대인들 사이에서 미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증가하고 있다.

건강과 질병의 중간상태인 미병. 그 증상으로 인해 미병은 아건강(亞健康), 반건강(半健康) 또는 회색지대(grey zone)라고도 불린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피로감을 느낀다거나 뚜렷한 감기증상을 보이지 않지만 몸이 대체로 낮은 체온을 이어가는 것 등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의료기술연구그룹 이시우 박사팀은 최근 한 달 간 우리나라 성인 남녀 1천10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피로와 통증, 수면장애, 소화불량, 우울감, 분노, 불안감 등 총 7가지 미병과 관련된 증상을 보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약 47%가 병이 없음에도 건강상 여러 가지 이상을 호소하고 있으며, 7가지 증상에 대해서는 70.7%가 피로감을, 30.8%가 통증을 느꼈다.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18.7%, 소화불량 18.3%, 우울감 17.3%, 수면장애 16.7%, 불안감 12.8%의 순이었다.

“‘미병’은 병은 아니지만 피로와 통증, 소화불량, 수면이상 등의 불편한 증상을 호소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상적인 휴식으로 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인체의 회복력 저하 상태라고 보면 되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정상범위를 벗어나는 반건강군이 전체의 61.8%로 나타났어요. 이는 2004년 35%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죠. 미병 상태에 있는 인구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시우 박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에서도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이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스스로 인지하는 건강의 정도, 즉 ‘주관적 건강인지율’은 낮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시우 박사는 “이번 우리 연구원의 조사결과가 이러한 내용과 부합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미병 상태를 초래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합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몸의 회복력이 떨어지면서 발생하기도 하며 그 외에 불규칙적이고 부적절한 생활습관이 각종 스트레스를 유발하면서 발생시키기도 하죠. 현대에 들어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세균에 의한 감염이나 각종 전염병은 현대의학의 발달로 크게 줄었지만 사람의 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고령자 비율이 높아지고, 사회의 형태가 매우 복잡해졌잖아요. 환경은 변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처하기 위한 인체의 기능이상에 대해서는 아직 적절한 관리방법이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성과를 요구하는 사회 환경에서 개개인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점도 현대에 들어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죠.”

사실 ‘미병(未病)’이라는 개념은 약 2천여 년 전부터 존재했다. 당시의 한의서인 ‘황제내경’에 ‘뛰어난 의사는 병이 걸린 후에 치료하기보다 병이 걸리기 전의 상태, 즉 미병을 관리한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시우 박사는 “미병의 개념 자체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에서 모두 제시하고 있다”며 이와 유사한 개념인 서양의학의 ‘MUS’를 언급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medically unexplained symptoms)’ 을 뜻하는 것으로서 질병은 아니지만 불편한 증상들을 호소하는 증후군을 의미하곤 합니다. 다만 MUS의 경우 건강상태보다는 증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미래의 불건강‧질병상태를 먼저 관리하고자 하는 미병과는 차이가 있어요.”

완치보다 관리의 개념

▲ 최근 1개월 미병 관련 7개 증상 여부 ⓒKIOM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병과 관련해 사람들이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경우는 증상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통증의 경우 48.1%가 치료를 받고 있으며 소화불량은 34.2%, 수면장애는 12%, 피로 10.4%, 우울감 7.4%, 불안감 6.4%, 분노 2.4% 의 인구가 의료기관을 방문하고 있다.

이시우 박사는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이상을 느끼면서도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사람의 비율이 낮은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는 현재 의료체계가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를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미병 진단기준과 관리 가이드를 개발하고 나아가 맞춤형 미병 관리시스템을 구축해 국민들의 건강한 삶에 기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했다.

사실 미병은 그로 인해 의료기관을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완치보다 관리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증상의 유형을 분석하고 개체의 특성을 중시하는 한의학적 치료원리가 적당하다는 게 이시우 박사의 설명이었다.

“국내 미병 관련한 치료는 일부 한의원이나 한방병원, 그리고 한․양방 협진을 표방하는 병원에서 미병의 진단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방한의학회, 사상체질의학회 등에서 미병의 진단과 치료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본격적인 미병의 진단과 치료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어서 이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각 연구기관의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시우 박사는 인터뷰 내내 ‘우리나라에 맞는 미병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진단기준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글자 그대로 이야기 하자면 현재 중국과 일본에는 ‘그 나라에 맞는’ 미병 관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의료격차가 심한 중국에서는 기초보건으로서의 미병관리가 주로 이뤄지고 있고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죠.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간질환, 심혈관계 질환 등 주요 질환에서 높은 발생 빈도를 보이는 40~50대의 중장년층이 중요 관리대상으로 제시되고 있어요. 더불어 고령화 사회로의 빠른 진입은 의료비 급증을 초래하죠. 국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미병 진단기준을 목표로 하되 중장년층의 건강관리에 좀 더 중점을 두고, 한의학과 서양의학 두 의학체계의 장점을 흡수해 동서의학 융합의 진단기준을 설정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획일적인 기준이 아닌 고유한 개체특성도 진단기준에 반영하려고 추진 중이고요.”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미병은 현재의 기준으로 분명 병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앞으로 체계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감지된다. 이시우 박사는 “비만은 과거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국가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 됐다”며 “‘미지의 증상군’이라는 의미의 ‘신드롬X’는 어느새 대사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직 미병의 병태생리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아 병이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덧붙였다.

미병상태가 분명 관리를 통해 회복될 수 있고 앞으로의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는 만큼 이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 환경이 변화하면서 질병의 양상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질병은 아니지만 각종 증상을 호소하는 미병에 대해 대부분 공감을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적습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미병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든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실용화로 가기에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어요.

그러나 미병 연구는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많은 것이 밝혀지면서 미병의 실체에 대해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를 위해 앞으로 저희들이 탐색하고 발견한 것들을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이시우 박사팀을 비롯한 한의학연구원은 앞으로 한의학과 보건학, 통계학, 공학, 생물학의 등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로 구성된 연구팀을 마련해 미병 연구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이시우 박사는 “밖으로는 산학연의 다학제 연구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한의학과 의학, 그리고 ICT가 융합된 미병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국민 건강 수준 향상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01-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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