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이 저하된 환자나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폐에 기생하며 치명적인 폐렴증상을 유발하는 녹농균. 녹농균은 중이염과 창상감염 등의 원인균으로도 알려져 매우 위험도가 높은 균으로 분류되고 있다.
녹농균 감염의 위험성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던 만큼 학계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항생제 연구 역시 계속 진행돼온 상태다. 항생제의 개별적 효능도 임상적으로 연구되면서 치료제로 사용되는 항생제는 작용기작에 따라 몇 종류로 분류된다.
다양하게 분류되는 항생제는 각각의 효능에서 차이를 나타내지만, 낭포성 섬유증 환자와 같은 만성감염자의 경우 한 종류의 항생제를 장기간 처방할 경우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주가 생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녹농균의 내성은 돌연변이를 통해 발생되거나 다른 개체로부터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전달받아 내성 균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내성 균주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임상적으로 여러 항생제를 혼합해 복합적 처방을 이용하고 있지만, 그 한계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신약 개발이 필요한 실정이었다.
녹농균 감염 차단하는 항생물질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녹농균의 감염을 차단할 수 있는 내성문제가 적은 항생물질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경상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 윤성철 석좌교수 연구팀이 연구를 수행, 해당 연구결과는 의생물학분야 저널인 ‘플러스 원’(PLOS ONE)
“현재 슈퍼박테리아와 같은 고도 내성세균이 증가하면서 기존 항생제를 대체할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내성세균이 증가하는 이유는 항생제를 오남용하거나 이를 장기간 처방하는 사례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고도내성’이라는 것은 세균 스스로가 여러 항생물질에 의해 생장이 억제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유전적 변이를 일으켜 항생물질을 무력화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즉,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어떤 항생제를 만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죠.”
세균을 완전히 죽이려는 시도가 역으로 세균이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도록 조장하는 격이 되므로, 항생제 개발은 결국 세균과의 영원한 싸움을 자초한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진화 시간적 입장에서, 인류는 과연 오랜 세월 지구에서 살아남은 세균과의 싸움에 승자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답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해법을 제시한다면 세균과의 합리적인 공존을 시도하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균이 인간 몸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차단함으로써 세균과의 공생을 유도하는 것이죠. 아니면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을 치르는 지혜가 필요하겠죠.”
즉, 이번 연구는 세균과의 국지전을 치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윤성철 교수팀은 세균의 생장을 직접적으로 막는 방법이 아닌, 병원성만을 특이적으로 억제해 내성을 완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감염을 일으킬 때 세균은 숙주세포에 침투하기 위해 람노리피드 물질을 분비합니다. 람노리피드는 폐의 상피세포 표면에너지를 낮춰 녹농균이 쉽게 침투할 수 있도록 세균이 분비하는 당지질이에요. 우리 연구팀은 이러한 람노리피드의 합성을 막아 세균의 무장을 해제하는 방식을 발굴했습니다. 이를 위해 선도 항생물질인 ‘2-브로모헥산산’을 발굴했죠.”
녹농균은 환자 폐의 상피세포 표면에너지를 낮춰 균이 쉽게 침투할 수 있도록 다량의 람노리피드를 분비한다. 이러한 물질은 녹농균의 병원성인자인 군집행동(스와밍 운동성), 바이오필름(biofilm)의 형성 등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농균이 폐의 상피세포에 침투하려면 군집을 이뤄 이동해야 하고 자기방어를 위한 바이오필름을 형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량의 람노리피드를 분비해 상피세포 표면을 교란시켜야 하죠. ‘바이오필름’ 이란 신호를 주고받은 세균이 세포 밖으로 고분자 물질을 분비해 형성하는 막을 의미합니다. 그 안에서 개체수를 늘리면서 숙주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죠.
이 때 ‘2-브로모헥산산’ 이 ‘람노리피드’를 합성하는 유전자(rhlA)를 효과적으로 저해해 세균의 침투를 막고 나아가 세균의 에너지 축적을 돕는 유전자(phaG)도 저해해 세균의 증식까지 차단하는 것이죠. 실제로 ‘2-브로모헥산산’이 첨가된 배지에서 배양된 세균은 람노리피드 생산과 바이오필름 형성이 저해됐고 군집이동 현상이 관찰되지 않았어요.”
뿐만 아니라 연구팀은 야생형 녹농균 균주에 2-브로모알칸산을 처리하면 바이오필름 형성이 저해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여러 저해제 중 길이가 가장 짧은 2-브로모헥산산 저해제가 가장 강력한 저해 효과를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세균은 한 마리만으로는 숙주의 방어막을 뚫지 못해요. 여러 마리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협동으로 람노리피드를 분비해 침투하죠. 따라서 람노리피드의 합성을 차단하는 것은 세균이 숙주에 침투하기 위해 입어야 하는 ‘람노리피드’ 라는 당지질 성분의 갑옷을 못 입게 하는 것이므로 세균이 침투를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세균이 침투기회를 찾지 못해 숙주 밖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게 되죠. 학계에 처음 보고한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항생작용이 녹농균 슈퍼박테리아의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구는 또 다른 연구를 낳고
윤성철 교수팀이 발굴한 2-브로모헥산산 선도항생물질은 수 밀리미터(mM) 수준에서 90% 이상의 람노리피드 생성을 차단하는 것으로 그 효능이 입증됐다. 또한 세균세포 내로 이를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할 경우 마이크로미터(μM) 수준에서도 제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 받고 있다.
그렇다면 낭포성 섬유증과 패혈증, 전신감염 또는 만성감염증 치료에도 유용하게 이용될 것으로 여겨지는 윤성철 교수팀의 연구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윤성철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기존에 진행하던 다른 연구에서 파생된 부차적 연구를 마무리하는 과정 중에 얻어진 부산물” 이라고 이야기 했다.
생물리화학을 전공한 윤 교수가 생의학적으로 응용가치가 있는 유기고분자 생체재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도중 얻게 된 결과인 것이다.
“저희 연구실은 세균을 이용한 새로운 소재개발에 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합니다. 특히 세균을 분리해 유용한 소재를 얻고자 하죠. 그러던 중 ‘BM114 녹농균’ 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 ‘PHA biopolymers’ 생합성 경로를 추적하느라 여러 가지 저해제 화합물들을 스크리닝(screening)하고 있었죠. 그 중에서 ‘2-브로모알칸산’ 에 대한 연구를 지난 10여 년 간 진행해왔는데 결국 오늘에야 성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즉,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부차적 연구를 마무리하는 과정 중에 얻어진 부산물인 셈이죠.”
부차적인 연구결과이기에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 진행된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윤성철 교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분명 있다”고 이야기 했다.
“PhaG 효소 단백질의 저해활성을 직접 측정하기 위해 대장균에서 발현시킨 단백질을 활성화시키는 연구를 시도했어요. 해당실험이 2-브로모알칸산의 효소타깃을 알아내는 직접적 증거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죠. 총 세 명의 박사과정 생이 6년이라는 시간을 들였지만 해당 연구는 결론을 얻지 못했죠.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유전자의 변이체 등을 이용해 연구를 마무리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돼요. 지난 30여 년 동안 연구를 진행한 인생이지만 이번에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더욱 깨닫는 계기가 됐어요. 지금도 제 연구과제 중에는 10년 이상 진행해 오고 있는 과제가 있어요. 과정은 분명 힘들지만 최종적인 성과로 기쁨을 누리는 것, 그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삶 아닐까요?”
윤 교수의 이번 연구는 세균의 생장자체를 저해하는 기존 항생제와는 다르게 새로운 개념의 정략적 항생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병원성 세균과의 싸움에서 세균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치열한 전면전보다, 인간을 위협하는 병원성 인자만을 제한적으로 공략하는 지략이 필요함을 일깨줘 준 셈이다.
윤 교수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병원성세균의 내성문제를 상당히 해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발굴된 선도항생물질에 대한 독성실험을 진행할 것이다. 2-브로모헥산산은 치환지방산이지만 세균을 비롯한 생체 내에서 대사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대사산물에 의한 독성문제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친수성이 비교적 높아 체외로 쉽게 배출될 수 있어서 대체치료제로 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독성실험이 완료되고 임상단계를 거친다면 수년 내에 대체항생제로의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3-09-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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