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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013-09-11

기생충으로 알레르기 질환 치료? 위생가설을 이용해 치료제 개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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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의 발달을 저하시키고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소득이 높고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일수록 발병률이 높다. 예를 들어 영국, 스위스, 호주 등의 국가는 케냐, 중국, 방글라데시 등의 국가보다 9~12% 정도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이 더 높다. 이는 모든 국가의 출생률 및 기대수명, 연령 구성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의 수치다.

도대체 어떤 요인이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에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은 위생 정도가 증가할수록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즉, 위생, 전염성 질병, 도시화 수치의 차이가 국가 간 알츠하이머 발병률의 차이를 나타내는 데 각각 33%, 36%, 28%씩 기여한다는 것.

위의 3가지 요인은 ‘위생 상태’라는 한 가지 경향에 대해 중첩적인 영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이 모두 합쳐질 경우 한 국가의 위생 정도가 알츠하이머 발병률을 42.5%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 위생가설은 지나치게 청결한 환경이 오히려 자가면역질환의 발생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morgueFile free photo
연구진은 이에 대해 미생물에 노출되는 것이 면역체계를 조절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주장했다. 미생물과의 접촉이 감소하면 면역체계에서 보병과 같은 역할을 하는 T-cell의 발달이 저해되고, 이러한 T-cell의 결핍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뇌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유형의 염증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산업화된 국가일수록 동물, 배설물, 토양에 접촉하지 않게 되고 항생제, 깨끗한 음용수 등으로 인해 미생물들과 접촉이 감소됨으로써 T-cell의 발달이 저해되고, 그 결과 알츠하이머병이 더 많이 발병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결과는 알츠하이머병도 1980년대 말에 등장한 ‘위생가설’에 적용된다는 걸 의미한다. 위생가설이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감염과 미생물에 대한 노출이 천식 및 알레르기, 아토피 등의 자가면역질환의 면역 형성에 관여한다는 주장이다. 즉, 현대인이 과거와는 달리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 성장함에 따라 병원체,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감염과 접촉이 없어져서 자가면역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기생충이 없어지자 꽃가루 등에 과민반응

특히 기생충은 지난 200만년 동안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체는 IgE라는 강력한 면역체계를 진화시켰다. 그러나 현대인의 경우 더 이상 기생충과 만날 기회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자 오랫동안 진화해온 신체의 자연적인 방어체계가 꽃가루 등의 작은 물질에도 과민반응을 하게 되어 알레르기와 아토피 등이 발병한다고 본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들도 많이 발표됐다. 어린이가 손을 하루에 5번 이상 씻고 목욕을 2번 이상 하는 등 지나치게 청결 상태를 유지하면 천식이나 발진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보고서가 있다. 또한 농촌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이 도심 지역의 어린이들보다 천식 등의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저항력이 5배 이상 높다는 보고도 있다.

그밖에도 도시와 농촌,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비교연구를 통해 먼지가 많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사는 아이일수록 알레르기 질환에 적게 걸린다는 연구결과들이 많다.

그러나 위생가설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과학자들도 있다. 천식의 유병률은 환자에게 ‘천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설문조사에 근거하는데, 천식의 진단율은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것. 예를 들면 인도의 의사들은 미국의 의사들보다 천식 진단을 내리는 비율이 낮다.

따라서 천식의 진짜 유병률은 현재 추정치와 다를 수 있으며, 그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 후진국의 천식 유병률이 선진국보다 낮다는 현상을 설명하는 위생가설도 무의미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최근 위생가설에 대한 유전학적 증거 및 위생가설의 메커니즘을 밝힌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어 머지않아 위생가설은 가설이 아닌 검증된 진리로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알레르기 질환과 이번에 발표된 알츠하이머병 외에도 위생가설에 적용되는 질환들이 더 있다는 연구결과들도 나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1형 당뇨병과 우울증이다.

기생충 단백질이 유력한 치료 후보물질로 부상

제1형 당뇨병은 자신의 면역계가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 베타세포를 공격해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영국에서는 매년 제1형 당뇨병 환자가 4%씩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유전적인 변화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빠른 증가추세다. 따라서 일부 과학자들은 기생충의 감염이 제1형 당뇨병의 발병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열대성 기생충인 ‘만손 주혈흡충’을 연구해온 케임브리지대학의 앤 쿡 교수는 마우스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 기생충의 감염이 제1형 당뇨병을 발생을 막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또 예일대와 시카코대학 연구팀도 위장관의 우호 세균이 1형 당뇨병의 발생을 예방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영국의 과학자들은 토양 속의 ‘Mycobacterium vaccae’라는 박테리아가 항우울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뇌에 작용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박테리아는 결핵균 계열에 속하는 박테리아로서 아무런 질병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면역세포의 과잉반응을 차단하고 면역체계의 가동을 촉진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위생가설을 이용해 자가면역질환의 새로운 치료제 개발도 시도되고 있다. 회충은 인간에게 지독한 설사와 빈혈 같은 고통을 주지만 자가면역질환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익한 측면도 제공한다. 이같은 기생충 감염이 유익한 근본적인 이유는 인체의 면역 시스템이 자기들을 공격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면역 반응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생충 단백질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바이아연방대학교 연구팀은 영국의 과학자들과 함께 에콰도르 어린이들의 대변에서 추출한 회충들을 잘 갈아서 이온교환 크로마토그래피를 사용해 기생충 단백질들을 분리해냈다. 이렇게 분리한 단백질 시료들을 인간의 면역시스템인 백혈구에 노출시킨 결과, 인터류킨의 분비를 변환시킴으로써 인체의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알칸타라 네베스 박사는 기생충에서 추출한 기생충 단백질들은 자가면역질환들을 치료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물질이며, 앞으로 기생충 감염의 부작용 없이 자가면역질환의 치료제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3-09-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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