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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리포터
2026-06-25

보존과학, K-컬처의 시간을 지키다 유물의 내부를 읽고 미래 손상을 계산하는 첨단 보존과학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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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경주 금령총 기마 인물형 토기'는 1924년 발굴 이후 수십 년간 정교한 고대 의례용 조각상으로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 단층촬영(CT)의 투시 기술이 개입하면서 외형에 가려져 있던 유물의 실제 기능적 메커니즘이 확인됐다. 스캔 데이터를 열자, 인물 배후에 액체를 주입하는 깔때기형 수구(受口)가 나타났고, 말 가슴 전면에는 이를 배출할 수 있는 대롱 형태의 주구(注口)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이 확인됐다. 약 240㏄의 액체를 담아 기능하는 주전자, 1,500년 동안 표면적 형상 속에 침묵하고 있던 고대인의 역동적인 설계가 실증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마침내 규명된 것이다.

이처럼 문화유산은 눈에 보이는 고정된 표면이 전부가 아니다. 형상 너머의 화학적 성분, 내부의 구조, 장인의 미세한 공정은 유물의 물질성 내부에 데이터의 형태로 잠재되어 있다. 현대의 보존과학은 이 비가시적인 영역을 발굴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오늘날의 기술은 유물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마모되고 무너질지 그 미래의 손상 궤적까지 예측하며, 붕괴하지 않을 최적의 환경 조건을 사전에 프로그래밍한다. 유물을 바라보는 보존과학의 전선이 사후 수리에서 선제적 해석과 예측으로 이동하고 있다.

1,500년간 조각상으로만 분류됐던 국보 '경주 금령총 기마 인물형 토기'(신라, 5~6세기)는 CT 스캔으로 의례용 주전자임이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
1,500년간 조각상으로만 분류됐던 국보 '경주 금령총 기마 인물형 토기'(신라, 5~6세기)는 CT 스캔으로 의례용 주전자임이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


매개된 시선 — 비파괴 분석이 재구성하는 유물의 내부

현대 문화유산 보존의 제1원칙은 가역성과 최소 개입이다. 유물 고유의 물질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내부 정보를 얻는 비파괴 분석(Non-destructive Analysis)이 핵심 방법론으로 자리 잡은 이유다.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X선 형광분석(XRF)은 유물 표면에 X선을 조사해 방출되는 원소별 고유 형광 신호를 포착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청동기의 구리·주석·납 배합비나 고대 안료의 금속 성분을 수 초 안에 정량화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동일한 시대와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일지라도 원자재를 조달한 광산지에 따라 미량 원소의 조성 비율이 미세하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XRF 데이터는 이 고유한 '화학적 지문'을 추적함으로써 유물의 진품 감별은 물론 고대 교역로를 재구성하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원소 분석을 넘어 분자 구조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라만 분광분석(Raman Spectroscopy)이 동원된다. 단색광이 분자 진동과 상호작용하며 산란될 때 발생하는 미세한 에너지 변화를 측정해, 유기·무기 화합물을 식별해 낸다. 이 기법은 도자기 유약의 열화 상태를 진단하거나 중첩된 회화 안료의 층위를 가늠하는 데 탁월하다. 온습도 등 환경 변화에 취약한 채색 문화유산의 장기적인 손상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특히 유효하다.

라만 분광분석 장비 구성도. 레이저가 시료에 조사되면 분자 진동과 상호작용하며 산란된 빛이 분광기를 통해 검출되고, 그 에너지 변화가 유기·무기 화합물의 분자 구조 정보로 변환된다. ⒸModern Techniques of Spectroscopy
라만 분광분석 장비 구성도. 레이저가 시료에 조사되면 분자 진동과 상호작용하며 산란된 빛이 분광기를 통해 검출되고, 그 에너지 변화가 유기·무기 화합물의 분자 구조 정보로 변환된다. ⒸModern Techniques of Spectroscopy

초분광 분석(Hyperspectral Imaging)은 이러한 점적(點的) 분석 데이터를 공간적 영역으로 확장한다. 가시광선 영역부터 근적외선에 이르는 수백 개 파장 대역을 동시에 촬영해 2차원 데이터 큐브로 시각화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 특별전이 공개한 6세기 고구려 개마총 벽화 복원은 이 기술의 가치와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로 색이 바래 육안으로는 흔적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던 벽화의 도상이 특정 적외선 파장대에서의 흡수·반사 특성을 시각화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본래의 필치와 형상으로 되살아났다. 유물에 물리적 손을 대지 않고 데이터의 변환만으로 표면의 기억을 복원해 낸 셈이다.

이러한 시각적 확장의 정점에는 산업용 CT(컴퓨터 단층촬영)가 있다. 앞서 언급한 기마 인물형 토기의 주전자 기능 규명이 대표적이지만, CT의 적용 범위는 그보다 훨씬 넓다. 금속·도자기·목재를 가리지 않고 내부의 공극과 두께, 제작 공정을 입체적으로 투시한다. 목조여래좌상 복장물의 구조를 해체하지 않고 파악하거나, 청동기 주조 과정의 기포 분포를 확인하는 것도 CT를 통해 정밀하게 수행할 수 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 CT 분석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 CT 분석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


데이터가 기억을 대신할 때 — 50년 아카이브의 패러다임 전환

보존과학의 디지털 전환(DX)은 단순히 아날로그 종이 문서를 스캔하는 전산화 과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물이라는 물리적 대상과 이에 축적된 기억을 바라보는 인지적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에 가깝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가 구축 중인 통합 데이터 아카이브는 1976년 보존기술실 개설 이래 반세기 동안 누적된 보존 처리 이력을 체계화하는 정량화 작업이다. 특정 유물이 어떠한 화학적·물리적 경로를 거쳐 복원되었으며, 이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열화(劣化)를 겪었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거대한 시계열 데이터베이스다. 이 데이터에 AI 연산이 결합하면서 과거의 아카이브는 가상 복원과 가치 평가, 원격 진단을 단일 플랫폼에서 구동하는 '디지털 보존과학 시스템'으로 진화한다.

이러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데이터의 호환성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0년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문화유산 디지털 데이터의 표준화 작업을 주도해 왔다. 고해상도 2D 이미지, 비파괴 장비로 도출한 성분 데이터, 3D 메시 공간 데이터를 단일 구조로 통합하는 '멀티모달 애셋(Multimodal Asset) 체계'가 그 결과물이다. 이 표준화 덕분에 구축된 소장품의 3D 데이터는 이제 별도의 고성능 뷰어 프로그램 없이도 일반적인 웹 브라우저 환경에서 누구나 직관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공공 데이터로 확장됐다.

국가유산청이 운영하는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바로가기)'는 이러한 흐름을 국가적 인프라 수준으로 전면 개방한 사례다. 현재 약 48만 건의 문화유산 디지털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3D 정밀 스캔 원천 데이터와 에셋을 민간에 공유함으로써 문화유산 접근성의 개념을 지리적·물리적 공간의 문제를 넘어 기술적 인프라의 문제로 재정의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누리집은 약 6,003건의 문화유산 3D 데이터를 포함해 총 48만여 건의 디지털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한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웹화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누리집은 약 6,003건의 문화유산 3D 데이터를 포함해 총 48만여 건의 디지털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한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웹화면 


시간의 벡터를 미래로 — 예측 보존의 등장

한편, 보존과학을 오직 과거의 흔적을 수습하는 사후 학문으로만 규정하는 전통적인 프레임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현대의 보존과학은 생성형 AI와 고도화된 시뮬레이션 모델을 통해 시간의 방향을 미래로 돌려놓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AI 기반 환경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복잡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고정 변수로 입력받아 야외에 노출된 석조 문화유산의 미세한 수분 흡수율과 동결·융해에 따른 풍화 속도를 가상 공간에서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한다. 이를 통해 향후 10년, 혹은 30년 뒤 석탑의 구조적 균열이나 마모가 어느 지점에서 시작될지를 통계적으로 산출해 낸다. 붕괴나 훼손이 일어난 뒤에 기술이 개입하는 사후 처방 방식을 벗어나, 무너지지 않는 최적의 환경 조건을 사전에 프로그래밍하는 '예측 보존(Predictive Conservation)'의 실현이다.

특히 AI는 손상되거나 소실된 부위에 가장 적합한 복원안을 통계적 확률 매트릭스로 제시하는데, 이는 숙련된 복원가의 직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검토할 수 있는 객관적 선택지와 과학적 가이드라인을 확장하는 주체적 보조 도구로 작동한다.

소장품의 진위 감별 시스템 역시 고도화되는 추세다. 인간의 육안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미세한 필치의 떨림이나 안료의 노화 진동 특성을 방대한 정품 데이터 세트와 실시간으로 비교·대조하여 객관적인 확률값으로 산출한다. 전통적인 안목 감정이라는 주관적 경험 세계와 인공지능의 통계적 분석이 상호 보완을 이루는 하이브리드 구조가 보존 처리 현장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 개관 기념 특별전 '보존과학, 새로운 시작 함께하는 미래'가 이달 30일까지 센터 1층에서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 개관 기념 특별전 '보존과학, 새로운 시작 함께하는 미래'가 이달 30일까지 센터 1층에서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


현장에서 만나는 보존과학

K-컬처의 시간적 깊이는 지켜진 것들로부터 온다. 그 지킴의 방법론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 개관 기념 특별전 «보존과학, 새로운 시작 함께하는 미래»가 6월 30일까지 센터 1층에서 열린다. 1부에서는 1976년 보존기술실의 초기 연구 공간을 재현하고, 한국 보존과학의 기틀을 다진 故 이상수 선생의 모습을 AI로 구현했다. 2부에서는 개마총 벽화의 초분광 데이터와 기마인물형토기의 CT 단층 영상을 인터랙티브 스크린으로 직접 조작할 수 있다. 3부에서는 식리총 금동신발이 디지털 공간에서 원형을 찾아가는 복원 서사 전체가 펼쳐진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6-06-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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