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는 피지컬 AI(로봇 같은 몸을 가진 AI)가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다이나믹스는 더욱 유연해진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시제품을 선보였고, 다른 기업들도 가사 일을 돕는 가정용 로봇들을 내놓았다.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세상을 보고 듣는 기계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사람들은 ‘조만간 집집마다 나만의 로봇을 장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함께 인간형 로봇의 시대가 곧 가능할 것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로봇의 두뇌가 적어도 인간 수준의 반응 속도를 갖춰야 한다. 자율주행차는 보행자의 작은 움직임을 포착하는 즉시 멈추거나 피하는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몇 밀리초의 지연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케이블이나 무선망을 통해 중앙 프로세서로 전송되고, 계산된 결과를 다시 돌려받는 과정에서 시간 지연과 많은 전력 낭비가 발생한다. 물체가 움직이는 상황을 인식한 뒤 느릿하게 판단하는 로봇은 실제 현장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뇌처럼 계산하는 칩, 뉴로모픽 반도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뉴로모픽 반도체'라는 이름을 진행되고 있다. 말 그대로 뇌의 신경(neuro) 형태(morphic)를 본떠, 뇌처럼 빠르고 효율적으로 계산하도록 반도체 구조를 설계하려는 접근이다. 기존 컴퓨터는 계산을 담당하는 CPU 또는 GPU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가 분리되어 있다. 이 구조에서는 데이터가 두 영역 사이를 오고 가는 동안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고, 데이터의 양이 커질수록 병목 현상도 심해진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뉴런과 시냅스가 그물처럼 엮여 있어 계산과 저장을 같은 자리에서 처리한다. 새롭게 접한 내용이 시냅스의 연결 강도를 바꾸면 바뀐 상태가 곧 다음 계산의 재료가 된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이와 같은 뇌의 작동 방식을 모방하기 위해 인공 뉴런과 시냅스를 회로 안에 촘촘히 배치한다. 여기서 ‘인공 뉴런’은 뇌의 신경세포처럼 신호를 판단하여 다음으로 보내는 작은 부품을, ‘시냅스’는 뉴런과 뉴런을 잇는 연결부로 신호가 얼마나 세게 지나갈지 조절하는 다이얼 같은 소자를 의미한다. 카메라를 예로 들면 센서로 들어온 빛을 통해 중요한 정보인지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조금씩 학습해 가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카메라와 같은 광센서는 이미지를 연속적인 전압 신호로 만들어 멀리 있는 프로세서로 전송할 뿐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기억을 담당하는 메모리 소자 역시 이런 센서와 한 몸처럼 붙어있지 못한다.
빛 센서와 기억 시냅스를 한 기판 위에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된 논문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였다. 중국 베이징대학교의 양 박사 연구팀은 이황화몰리브덴(MoS2)과 하프늄-지르코늄 산화물(HZO)을 결합하여, 신호 감지와 연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인-센싱 컴퓨팅 소자를 개발하였다. MoS2는 가시광선 영역에서 뛰어난 광전 특성을 보이며 기계적 유연성이 높아 다른 물질과 함께 적층하여 제작하기 유리하다. 여기에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서도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강유전성 물질인 HZO를 도입하였다. HZO는 전압에 따라 내부의 분극 방향이 바뀌고 그 상태가 비휘발성으로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연구팀은 HZO의 분극 상태를 미세하게 조절하여 신호의 가중치를 결정하는 시냅스의 가소성을 모사하였다. 이를 통해 별도의 복잡한 회로 없이도 빛 정보를 실시간으로 인지하고 처리하는 고효율 인공 신경망 시스템이 가능해진 것이다.
연구진은 데이터 처리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뇌의 두 가지 암호화 전략을 채택하였다. 첫 번째는 자극의 세기를 신호의 개수로 환산하는 방식이다. 빛이 강할수록 정해진 시간 내에 더 많은 신호를 보냄으로써, 사물의 형태와 생상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두 번째는 TTFS(time-to-first-spike) 방식으로 첫 신호가 언제 나오는지에 주목한다. 강한 자극일수록 첫 신호가 도달하는 시간이 앞당겨지며, 이를 통해 시스템은 복잡한 계산을 거치지 않고도 중요한 정보를 즉각 파악할 수 있다. 개발된 인-센서 컴퓨팅 소자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RGB 색깔 패턴 인식 과제에서 91.7%의 정확도를 기록하고, 자율주행 환경에서 필요한 객체를 검출하는 과제에서는 93.5%의 높은 정확도를 달성하였다.
뉴로모픽이 바꿀 미래
물론 이번 연구는 아직 소규모 실험실에서의 시연 단계이다. 하지만 센서 내부에서 곧바로 스파이킹 신경망을 실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율주행차, 드론, 가정용 로봇 등 피지컬 AI의 핵심 요소인 시각 처리에서 큰 발전이 있음을 보여준다. 카메라가 주변을 바라보는 순간 곧바로 의미 있는 정보만을 추출하고 판단한다면, 로봇은 전력 소모를 줄이면서도 더 빠르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뇌를 그대로 복제하는 일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뇌처럼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반도체는 이미 현실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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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3-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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