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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빈 리포터
2026-02-06

세포의 과거 유전자 활동을 저장하는 타입캡슐 세포 내 소기관인 볼트 입자를 개조하여 mRNA의 안정적 보관소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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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발견된 이 세포 소기관은 성당 천장의 아치형 볼트 구조를 닮았다고 해서 ‘볼트(vault)’라고 이름 붙여졌다. Ⓒ Structure
1986년 발견된 이 세포 소기관은 성당 천장의 아치형 볼트 구조를 닮았다고 해서 ‘볼트(vault)’라고 이름 붙여졌다. Ⓒ Structure

세포 내부에는 핵이나 미토콘드리아처럼 그 형태와 역할이 뚜렷이 규명된 소기관들도 있지만,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고 미스터리한 것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볼트(vault)' 입자이다. 1986년 미국 UCLA의 레너드 롬 박사 연구진은 전자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던 중 핵산과 단백질로 이루어진 럭비공 모양의 복합체를 발견했다. 약 70 nm 길이의 이 입자는 성당 천장의 아치형 볼트 구조를 닮았다고 해서 '볼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흥미로운 점은 볼트가 세포 내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인간 세포 하나에는 평균적으로 약 1만 개의 볼트가 존재하며, 면역세포처럼 활동이 많은 세포에서는 그 수가 수만 개에 이르기도 한다. 세포가 이렇게 많은 자원을 들여 대량 생산하는 구조물이라면 분명 중요한 역할이 있을 것 같지만, 아직 볼트의 명확한 기능은 40년째 밝혀지지 않고 있다.

 

40년째 기능을 알 수 없는 세포 소기관, 볼트(Vault)

그런데 최근 볼트 입자를 사용하여 특이한 기술을 개발한 논문이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되었다. 미국 MIT와 하버드 의과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한 브로드 연구소의 페이 챈 박사 연구팀은 세포 내 mRNA(생명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의 설계도)들을 포획하여 볼트 입자에 저장하였다가 필요시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을 만든 것이다. 세포는 성장과 분화,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등 다이나믹한 외부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유전자들의 활성 상태가 변하고 그에 따라 발현되는 mRNA 종류도 달라진다. 이를 분석하려면 특정 시점의 세포에서 mRNA를 추출하고 분석하거나, mRNA에 형광 표지를 하여 실시간 영상을 촬영해야 하는데, 이 분석법들은 한 시점의 데이터만 제공하거나 일부 유전자에 대한 정보만 제공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페이 챈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이번 기술은 특정 가간 세포 내 mRNA의 변화를 통째로 들여다볼 수 있었고, 마치 세포 내 타임캡슐과 같다고 하여 '타임볼트(TimeVault)'라고 명명하였다. 

세포 내 미지의 소기관인 볼트를 활용한 타임볼트 기술 모식도. Ⓒ Science
세포 내 미지의 소기관인 볼트를 활용한 타임볼트 기술 모식도. Ⓒ Science

타임볼트 기술의 핵심 중 하나는 mRNA의 특징 중 하나인 폴리-A 꼬리(poly-A tail)이다. 세포 속 대부분의 mRNA는 끝부분에, 마치 연이나 풍선에 매달린 끈처럼 아데닌 염기 'A'가 길게 반복된 꼬리를 달고 있다. 폴리-A 꼬리는 mRNA 분자를 안정화하고 다른 단백질들이 붙을 수 있는 손잡이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 달라붙는 대표적인 단백질이 폴리-A 결합 단백질(poly-A binding protein, PABP)이다. 연구팀은 이 PABP 단백질을 개조하여 볼트 입자와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렇게 하면 개조된 PABP는 mRNA를 붙잡은 채 새로 만들어진 볼트 내부로 들어가고, 결과적으로 볼트 입자 속에 mRNA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mRNA 분자의 수명은 대개 수 시간에서 길어야 수일 정도로 매우 짧은데, 타임볼트에 저장된 mRNA들은 일주일 넘게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볼트 입자와 결합할 수 있도록 폴리-A 결합 단백질(PABP)을 개조(PABP-INT)하면 mRNA들을 볼트내부로 이동시켜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 Science
볼트 입자와 결합할 수 있도록 폴리-A 결합 단백질(PABP)을 개조(PABP-INT)하면 mRNA들을 볼트내부로 이동시켜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 Science

그렇다면 아직 기능을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세포마다 수만 개씩 존재하는 볼트 입자를 타임볼트로 개조하여 사용할 때, 세포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놀랍게도 타임볼트가 세포 안에서 mRNA를 포획하여 저장하고 있더라도 세포 자체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임볼트를 도입한 세포와 일반 세포 사이에 성장이나 생존 면에서 눈에 띄는 차이가 없었고, 전체 유전자 발현 패턴을 분석하여도 특이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세포에는 자신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더라도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는 셈이다.

 

세포의 유전자 발현 기록을 보관하는 타임캡슐로 개조

연구진은 타임볼트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세포에 스트레스 자극을 준 후 그 반응을 기록하는 실험을 수행하였다. 세포에 일시적으로 고온과 같은 자극을 주면, 스트레스 대응 유전자들이 활성화되는데, 자극이 지나가면 곧 원래 상태로 회복되기 때문에 이 찰나의 순간 동안 유전자 발현 변화를 타임볼트가 기록할 수 있을지 확인한 것이다. 실험 결과, 열 자극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급등하였던 유전자들에 대한 mRNA가 타임볼트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타임볼트가 세포 내 찰나의 유전자 변화도 놓치지 않고 온전히 기록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술을 질병 치료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을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항암 치료에 내성을 가지는 암세포에서 타임볼트의 성능을 확인해 보았다. 일반적으로 항암제를 암세포에 처리하면 대부분은 죽지만 극소수 세포가 약물을 견디고 살아남는데, 이를 퍼시스터(persister) 세포라고 부른다. 퍼시스터 세포는 돌연변이로 항암제에 저항성을 가지는 것과는 달리, 일종의 휴면 상태로 들어가서 약물의 작용을 피한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증식하여 암을 재발시키는 원인이 된다. 연구팀은 퍼시스터 세포가 약물 처리 이전에 어떤 유전자 발현 패턴을 보이고 있었을지, 일반 암세포와는 약물 처리 전부터 무엇이 달랐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약물 처리 전 암세포에서 타임볼트를 가동해 보았다. 그 결과 퍼시스터 세포에서는 AKR1C1, CXCL8와 같은 유전자들이 이미 높게 발현되어 있었고, 이들을 억제하는 약물과 함께 병용 투여하자 이전까지 살아남던 퍼시스터 세포들까지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었다. 암세포가 치료제를 맞기 전 미리 켜두었던 생존 스위치를 찾아내어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는 전략을 제공한 것이다.

 

항암제에도 죽지 않는 암세포들(Persister cell)은 약물 처리 전 어떤 상태였을지 타임볼트로 확인하였다. Ⓒ Science
항암제에도 죽지 않는 암세포들(Persister cell)은 약물 처리 전 어떤 상태였을지 타임볼트로 확인하였다. Ⓒ Science

 

타임볼트로 암세포의 생존 스위치를 찾아내어 완벽하게 치료

연구진은 앞으로 타임볼트를 단일 세포 수준 연구로 확장하고, mRNA뿐 아니라 단백질이나 다른 분자 정보까지도 기록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볼트를 활용한 응용 연구가 활발해졌지만 정작 볼트의 본래 기능은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볼트는 여전히 자신의 비밀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지만, 세포의 비밀을 담아둘 금고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언젠가 볼트의 진짜 기능이 밝혀져 세포 생물학의 오랜 수수께끼가 풀리길 기대한다.

볼트의 진짜 기능이 밝혀져 세포 생물학의 오랜 수수께끼가 풀리길 기대한다. Ⓒ Getty Images
볼트의 진짜 기능이 밝혀져 세포 생물학의 오랜 수수께끼가 풀리길 기대한다. Ⓒ Getty Images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A genetically encoded device for transcriptome storage in mammalian cells, Chao et al., 2026, Science

정회빈 리포터
acochi@hanmail.net
저작권자 2026-02-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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