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규제 전쟁: 미국과 EU의 엇갈린 길, 글로벌 기술 패권의 향방은?
ChatGPT의 등장 이후 AI 기술은 더욱 빠른 속도로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의료 진단부터 금융 서비스, 자율주행까지 AI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분야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AI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1,500억 달러에서 2030년 1.8조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라고 한다.
문제는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새로운 (혹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 대체에 대한 우려, 알고리즘 편향성 문제, 개인정보 보호, 딥페이크 등 AI 기술의 악용 가능성 등이 대표적인데, 특히 최근에는 AI 기반 감시 기술의 확산이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처럼 최근 인공지능 (AI) 기술이 전 세계 산업과 일상을 재편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두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상반된 길을 걷고 있다. 특히 미국 도날드 트럼프 행정부의 '혁신 우선' 기조와 EU의 '안전 우선' 정책이 충돌하면서, 글로벌 AI 패권을 둘러싼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은 명확하게 규제 완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EU는 안전 우선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정책 차이를 넘어 미래 기술 패권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즉, 현재 글로벌 AI 생태계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는 셈이다.
미국의 전략: '혁신 우선' 기조로 규제 완화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AI 분야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인데, 4년간 5,000억 달러를 AI 인프라에 투자하는 이 계획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술 투자 프로그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AI 혁신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히며 미국의 기업들이 불필요한 규제에 발목 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혁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발표 현장에서 선언한 바 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세부 투자 계획을 살펴보면, 양자컴퓨팅 연구개발에 1,000억 달러, AI 칩 제조 시설 확충에 1,500억 달러,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에 2,500억 달러가 각각 배정되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민간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기술 개발 가속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미국 기업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특히 스타트업들의 혁신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EU의 대응: 안전과 윤리를 앞세운 포괄적 규제
반면 EU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법제화된 'AI Act'는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법인데, 해당 법은 AI 시스템의 위험도에 따라 규제 수준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서 EU의 AI Act는 AI 시스템을 네 가지 위험 수준으로 분류한다. 용인할 수 없는 위험(사회적 점수 시스템, 실시간 생체인식 등), 고위험(의료기기, 자율주행차 등), 제한된 위험(챗봇, 딥페이크 등), 최소 위험(스팸 필터, AI 게임 등)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수준의 규제를 적용한다.
브뤼셀의 한 EU 정책담당자는 "우리의 접근 방식은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라고 설명했는데, 이러한 규제가 유럽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먼 미래의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최근 유럽도 변하고 있다. 2월 중순 열리고 있는 파리 AI 정상 회의에서 EU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AI 행동 정상회의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정상회의 개막 연설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이 빠르게 추진된 것은 규제 완화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유럽은 규제를 단순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EU는 강력한 규제 기조에서 한발 물러서는 새로운 정책 변화를 시사했는데, 이는 미국, 유럽과 중국 중심의 AI 시장에서 유럽의 입지를 더 키우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재 글로벌 AI 시장에서는 미국 기업들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OpenAI 등이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으며, 중국의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최근 파리에서 열린 AI 액션 서밋은 이러한 갈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과 EU의 대표들은 AI 규제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전을 제시했고, 국제적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결국 관건은 혁신과 안전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인데, 너무 엄격한 규제는 혁신을 저해할 수 있고, 지나친 규제 완화는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각 나라들이 미묘한 균형점을 어떻게 찾아갈지가 향후 AI 기술 발전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응과 과제
명실상부 선진국인 우리나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뒤처질 수는 없다. AI 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한국은 AI 글로벌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과 기술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AI 컴퓨팅센터와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규제 개선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의 'K-AI 전략'이다. 이는 미국과 EU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을 지향하는데 기업의 혁신을 장려하면서도 안전과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또한, 최근 대한민국 정부는 AI 분야를 국가전략기술로 추가하고, 12대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2027년까지 정부 R&D의 35%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기초연구에 역대 최대 규모인 2조 9300억 원을 지원하여 AI 산업의 성장을 가속화할 예정이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
AI 기술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문제는 이 기술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여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이다. 미국과 EU의 상반된 접근은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향후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두 접근 방식의 수렴 가능성도 제기한다. 결국 혁신과 규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면서도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하게 관리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접근이기 때문이다.
한편, AI 규제를 둘러싼 미국과 EU의 대립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 경쟁을 넘어 미래 기술 패권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기에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면서, 기술 혁신과 사회적 가치의 조화를 이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김민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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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2-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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