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전자 센서 중 하나다. 약 3억 2,000만 명이 스마트 스피커 등과 연결된 마이크에 음성을 입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스마트 스피커의 확산은 보안상 우려도 불러오고 있다.
실제로 2018년 미국 오리건주의 한 부부는 아마존의 AI 스피커 ‘에코’가 자신들의 사적인 대화를 유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부의 대화를 명령어로 착각해 녹음된 대화를 타인에게 전송한 것이다.

2019년에는 구글의 음성인식 AI 서비스인 어시스턴트 기기가 녹음한 대화 파일 1,000여 개가 유출되었다는 사실이 벨기에 언론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스마트 스피커는 이처럼 대부분 음성 파일 유출 위험을 안고 있어서 사용자들이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이크를 꺼놓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음성 유출 사고를 전혀 걱정할 필요 없는 ‘프라이버시마이크(PrivacyMic)’가 개발됐다. 미국 미시간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이 장치의 핵심은 인간의 청력 범위를 초과하는 주파수에서 발생하는 초음파 소리다.
식기세척기·컴퓨터 모니터 등을 작동시키거나 우리가 손가락을 흔들 때도 20㎑(킬로헤르츠) 이상의 주파수를 가진 초음파 소리가 난다. 우리는 들을 수 없지만 개나 고양이, 그리고 프라이버시마이크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95% 이상의 정확도로 개인 일상 활동 식별
이 장치는 이처럼 우리 주위에서 발생하는 초음파 정보를 종합해 언제 서비스가 필요한지 확인하고, 그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지할 수 있다. 연구진은 프라이버시마이크가 95% 이상의 정확도로 가정과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미시간대학 전기 및 컴퓨터공학부의 앨런슨 샘플(Alanson Sample) 부교수는 “홈오토 시스템이나 스마트스피커가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상황은 많지만, 반드시 대화를 들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면서도 청각적 정보를 절대 녹음하지 않는 장치를 발명했다”라고 말했다.
프라이버시마이크는 기기 자체에서 바로 청각 정보를 필터링할 수 있다. 따라서 오디오 데이터가 녹음된 후 보안 조치를 취하거나 액세스 권한을 가진 이들을 제한하는 암호화 및 기타 보안 조치보다 더 안전하다. 그런 조치들은 해커에게 취약할 수 있지만, 프라이버시마이크에는 그런 정보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장치가 가정용 초음파 기기를 통해 노인들의 가정에 도움이 필요한 징후가 있는지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호흡기 환자의 폐 기능을 모니터링하거나 약물 부작용 및 기타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음파 신호를 임상시험 참가자들에게서 청취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즉, 의사와 의과대학에서 환자들이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환자들의 삶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전례 없는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오디오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집이나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실제로 파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양치질, 화장질 변기 소리 등 수백 가지 소리 포착
연구진은 이 장치를 개발하기 위해 양치질, 화장실 변기 소리, 진공청소기 및 식기세척기 작동, 컴퓨터 모니터 등 일상 활동에서 발생하는 수백 가지의 소리를 포착하는 작업을 했다.
그런 초음파 신호의 핵심 정보를 더 작은 파일로 압축하고 인간의 청각 범위 내에서 소음을 제거한 후 그것을 듣기 위한 라즈베리파이 기반의 장치를 만들었다. 라즈베리파이란 교육용 목적으로 개발된 초소형 컴퓨터를 말한다.
그 결과 음성을 필터링하거나 모든 가청 콘텐츠를 제거하도록 설정할 수 있는 이 장치는 95% 이상의 정확도로 일상 활동을 식별했다. 또한 연구진은 이 장치에서 수집된 오디오를 청취하는 실험을 통해 참가자 중 단 한 명도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컴퓨터협회(ACM)가 최근에 주최한 ‘컴퓨터-인간 상호작용 학회(CHI 2021)’에서 발표됐다. ACM CHI는 인터랙션 디자인과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학회다.
프라이버시마이크는 아직 개념 증명 단계이지만, 연구진은 스마트 스피커와 같은 장치에 유사 기술을 구현하는 것은 약간의 수정만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초음파 소리를 듣는 소프트웨어와 그것을 감지하는 마이크만 있으면 쉽고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미시간대학 기술이전사무소를 통해 이 장치에 대한 특허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21-06-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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