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가 사상 최초로 ‘초박형 이색 재료에서 손실이 거의 없이 전하를 이동시키는’ 전자 스위칭 시연에 성공했다. 이 실험은 실온의 저전류 전기장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시연 성공으로 새로운 ‘위상 트랜지스터’ 개발에 한발 다가서게 됐다.
‘위상 트랜지스터’는 물질을 원자 단위 2차원으로 만들 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을 이용한 것으로, 차세대 정보통신 전자장비의 핵심부품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초박형 트랜지스터가 개발되면 수많은 작은 트랜지스터가 최신 스마트폰의 정보처리를 맡아 신속한 온오프 스위칭으로 전자 흐름을 제어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얇은 카드 형태의 작은 크기에다 배터리 성능과 처리속도가 월등한 ‘꿈의 스마트폰’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 많은 ‘집적’ 위해 대체 재료 연구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더 작은 장치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전통적인 트랜지스터 재료들은 공통적으로 비효율성을 갖고 있었다. 에너지 손실을 유발해 열이 축적되고, 이로 인해 배터리 수명이 짦아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장치가 저전력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대체 재료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호주 모나쉬대와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버클리 랩) 과학자들로 구성된 이번 연구팀은 버클리 랩의 고등 광원 시설(Advanced Light Source ;ALS)에서 X선을 이용해 대체 재료를 성장시키고, 이를 연구했다.
비스무트화 나트륨(Na3Bi)으로 불리는 이 물질은 ‘위상학적 디랙 반금속’(topological Dirac semimetal)으로 알려진 두 물질 가운데 하나다. 어떤 경우에는 전통적인 재료로, 또 다른 경우에는 위상학적 재료로서 작동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 독특한 전기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 물질의 위상학적 특성은 ALS의 초기 실험에서 처음 확인됐다.
위상학적 속성을 가진 재료는 현재 과학계에서 연구가 집중되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며, 2016년에는 재료의 위상 특성과 관련된 이론을 개척한 과학자들에게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됐다.

위상학적 재료, 차세대 유망 전자장치
위상학적 재료들은 장치에서 에너지 손실과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트랜지스터와 전자장치, 컴퓨팅 응용물의 유망한 차세대 소재로 꼽히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특성들이 실온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이는 극한 냉각을 필요로 하는 초전도체와 구별되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위상학적 재료는 또한 재료가 구조적 결함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도 성능이 지속될 수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ALS 한인과학자인 모성관(Sung-Kwan Mo) 박사는 “ALS에서 연구된 이 물질을 전기 전도성 상태에서 절연 상태 혹은 비전도성 상태로 전환하는 일은 비교적 용이한 작업”이라며 “때문에 미래의 트랜지스터 응용물로 적합하게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0일자에 자세히 발표됐다.

초박형 비스무트화 나트륨으로 실험
이번 연구의 또다른 중요한 측면은 모나쉬대 팀이 비스무트화 나트륨에 대한 두 가지 조절 방법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는 비스무트화 나트륨의 원자를 벌집 패턴의 단일층으로 배열할 수 있도록 극단적으로 얇게 성장시키는 방법, 나머지 하나는 각 원자층의 두께를 조절하는 방법이다.
모 박사는 “누구든지 어떤 장치를 만들 때 기왕이면 얇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라며, “이번 연구는 비스무트화 나트륨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낮은 전압에서 전기적 속성도 쉽게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위상 트랜지스터(topological transistor) 개발에 한 발 다가섰다”고 덧붙였다.
연구에 참여한 모나쉬대 물리학자인 마이클 퓨러(Michael Fuhrer) 박사는 “초저에너지 위상 전자장치는 현대 컴퓨팅에서 점증하는 에너지 소비에 대한 해답”이라고 말하고, “정보통신 기술은 이미 전세계 전력량의 8%를 소비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1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LS X선 빔라인 활용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분자 빔 에피택시(molecular beam epitaxy)라는 과정을 활용했다.이는 ALS 빔라인 10.0.1의 초고진공 하에서 실리콘 웨이퍼 위에 재료 샘플을 한 면에 몇 밀리미터씩 측정하면서 성장시키는 것이다.
빔라인을 사용하면 샘플을 성장시킨 다음 같은 진공 조건 아래에서 실험을 수행할 수 있어 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

일반적인 위상학적 재료에서 전자는 재료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고 재료의 나머지 부분은 전자 흐름을 막는 절연체 역할을 한다.
연구팀이 동일한 샘플에 대한 일부 X선 실험을 호주 싱크로트론에서 수행한 결과, 초박형 비스무트화 나트륨이 독립적(free-standing)이며, 성장기반이 되었던 실리콘 웨이퍼와 화학적으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기능하는 다른 위상학 물질 찾고 있는 중”
연구를 이끈 모나쉬대 물리학자 마크 에드먼즈(Mark Edmonds) 박사는 “이런 가장자리 경로에서 전자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고 말하고, “이것은 전통적인 전기 도체에서 전기 저항을 일으키는 ‘후방 산란(back-scattering)’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에서 연구팀은 초박형 물질이 전기장을 받을 때 완전하게 전도성을 갖게 되며, 약간 더 높은 전기장을 받으면 물질 전체가 절연체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 박사는 “이렇게 응용물을 통해 전기적으로 구동되는 스위칭은 중요한 단계”라고 지적했다.
일부 다른 연구에서는 어떤 물질을 첨가해 전기적 특성을 얻는 화학적 도핑, 혹은 기계적 변형과 같은 메커니즘을 추구해 왔으나, 스위칭 작동을 제어하거나 수행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드먼즈 박사는 “연구팀이 차세대 초저에너지 전자장치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같은 방법으로 온오프 스위칭이 될 수 있는 다른 샘플들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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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12-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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