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분사 1호 벤처기업인 이놈들연구소는 지난 8월 31일 미국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서 캠페인을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통화가 가능한 스마트밴드인 '시그널(Sgnl)'에 대한 당초 모금 목표는 10월 9일까지 5만달러.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제품을 해외 시장에 알리고 사전 고객을 확보해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20여일이 경과한 현재 캠페인 반응은 폭발적이다. 9월 21일 기준 이미 1800% 이상의 달성률을 보였으며 확보한 자금만 94만달러, 제품 구매의사를 밝힌 후원자가 5400명이 넘는다. 아직 보름 이상 더 남았기 때문에 더 많은 후원자와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현철 이놈들연구소 대표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큰 호응을 얻어 기쁘기도 하고 그만큼 부담스럽기도 하다"며 "현재 국내외 제품 인증을 추진 중이며 양질의 제품 공급을 통해 사용자들의 호응에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놈들연구소의 이번 성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제품이 핵심 요인이지만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서비스 플랫폼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크라우드 펀딩이 없었다면 '잘 알려지지 않은 스타트업이', '제품이 시판되기도 전에', '전세계 각 국의 사용자들을 단기간에 모으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크라우드 펀딩이 최근 스타트업들의 자금줄 및 글로벌 마케팅 채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8년 1월 인디고고(www.indiegogo.com)를 시작으로 형성된 크라우드 펀딩 시장은 10년이 채 되기도 전에 전세계 수십만 스타트업의 자금과 마케팅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킥스타터에서만 15개의 카테고리에서 4500개의 펀딩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전통적인 기업 자금원인 금융사의 투융자 및 벤처캐피탈 투자의 경우 스타트업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으로 느껴진다. 이에 반해 크라우드 펀딩은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어 진입장벽이 없다. 특히 제품이 나오기 전에 사전 고객을 미리 확보해 그 자금으로 제품 개발과 양산을 할 수 있는 것은 제조 스타트업에게는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일반 이용자나 미래 고객이 투자자가 되기 때문에 마케팅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오픈트레이드 조용기 대표는 최근 열린 벤처스퀘어 오픈업 세미나에서 "2015년에 해외에서 조달된 크라우드 펀딩 자금은 344억달러로 소위 죽음의 계곡이라 일컬어지는 창업 1~7년차의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놈들연구소 최현철 대표도 "하드웨어 기업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업과는 달리 제품 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스타트업들이 적지 않다"며 "크라우드 펀딩은 이 부분을 채워줄 뿐만아니라 국내외에 브랜드를 알리고 매출 성과를 높이는 효과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줄자로 유명한 베이글랩스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대박을 터뜨린 경우다. 3만달러를 목표로 올해 6월 29일부터 킥스타터 캠페인을 시작해 단 하루만에 목표액을 달성했다. 지난 8월 3일까지 34일간 진행된 캠페인의 최종 성적표는 킥스타터 모금액의 상위 0.1% 안에 들어가는 놀라운 성과다. 후원자만 무려 1만 700여명, 모금액은 목표액의 4500%인 135만달러 이상이다. 후속 투자는 물론 제품 판매와 계약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킥스타터보다 규모는 작지만 인디고고에서도 국내 기능성 의류 브랜드인 웨이브웨어, 3D프린터인 로쿱Y 등도 상당한 펀딩 성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이용한 캠페인도 활발하다.
빈 병을 활용한 병마개 모양의 블루투스 스피커 Cork를 개발한 미다스디자인은 와디즈에서 3차에 걸쳐 캠페인을 진행한 결과 모두 목표금액을 훨씬 웃돌았다. 각각 200만원을 목표로 내세워 1차 800만원, 2차 2270만원, 3차 2000만원 가량이 확보돼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국내에는 와디즈를 비롯해 텀블벅, 굿펀딩 등 10여개 업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스토리 펀딩, 뉴스 펀딩, 기부 펀딩 등 특정 주제에 초점을 맞춘 펀딩 사이트도 나오고 있다. 특히 크라우드 펀딩에서 성공하면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VC 등의 추가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 자금 규모에 관계없이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크라우드 펀딩을 위해서도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킥스타터 통계에 따르면 크라우드 펀딩에서 성공하는 비율은 44% 정도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긴 하지만 펀딩 규모가 워낙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실제 의미있는 자금 조달은 이 보다 비율이 더 적다. 이놈들연구소는 해외 전시회 참여를 비롯해 SNS나 기타 마케팅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용자들의 이메일을 꾸준히 리스트업한 것이 이번 펀딩에서도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펀딩에 성공했더라도 성과가 형편없거나 출시일, 납품가 등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오히려 기업 신뢰도가 추락하는 리스크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초의 소셜 로봇을 표방한 '지보(Jibo)'다. MIT 미디어랩 신시아 브리질(Cynthia Breazeal) 교수팀이 개발한 지보는 2014년 당시 크라우드 펀딩에서 당초 목표의 2288%에 해당하는 371만 410달러를 거둬들여 가장 성공적인 펀딩으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상용화 과정에서 지보의 출시일은 몇 차례 연기됐고 최근에는 북미 이외 지역 출시 불가 방침이 발표되면서 이용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드론 업체인 사이파이웍스도 킥스타터를 통해 목표치를 훨씬 웃도는 90만 달러의 자금을 끌어들이고 이후 VC로부터 2200만달러의 대규모 자금을 유치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부품 조달 차질 등으로 환불 조치를 발표함에 따라 후원자들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 조인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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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9-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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