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연쇄 성폭행 범죄가 발생했다. 범인은 10여 명의 여인을 성폭행했는데 그 방법이 기괴했다. 창문을 주시하다. 방안에 있는 여인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 창문을 따고 들어가 여인의 침대에 잠입하는 식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여인의 머리카락, 발 등을 만지며 자신의 성욕을 충족했다. 당시 언론은 이 징그러운 범인에게 ‘시리얼 크리퍼(Serial Creeper)’라는 별명을 붙였다. 연속적으로(serial) 창문을 넘어가는 넝쿨식물(creeper)이라는 의미다.
2일 ‘사이언스뉴스’에 따르면 미국 플로리다주 경찰은 필사적으로 이 범인을 잡으려고 했다. 2013년 9월 높은 광대뼈, 뾰족한 턱, 부드러운 피부에 검은 머리와 눈을 지닌 라틴계 남자 몽타주를 배포했다. 시민들에게 이런 인상의 범인을 발견하면 신고해줄 것을 부탁했다.
범인의 눈과 머리카락, 혈색 등 재현
몽타주를 작성했지만 범인을 본 목격자는 한 명도 없었다. 모든 범죄가 밤에 발생한 만큼 성폭행범을 볼 수 없었다. 목격자가 없는 상황에서 몽타주가 작성될 수 있었던 것은 유전자 분석기술 때문이다.
경찰은 컴퓨터 합성영상기법인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 기술을 활용했다. CGI란 컴퓨터를 통해 합성영상기법으로 창조되어지는 이미지를 말한다.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범인의 DNA를 파라본 나노랩스(Parabon NanoLabs) 란 벤처회사로 가지고 갔다.
버지니아 주 레스턴에 있는 이 회사에서는 4500달러를 받고 유전자 분석을 실시했다. 그리고 분석을 통해 나온 인적 정보를 가지고 범인의 머리색, 눈빛, 안색, 그리고 가계·혈통 등을 재현(mash-up) 해냈다.
파라본 나노랩스에서 이 작업을 수행한 엘렌 크레이태크(Ellen Greytak) 바이오인포매틱스 담당자는 “유전자를 가지고 범인 얼굴을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범인을 찾고 있는 경찰 당국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불과 수년 전까지 유전자를 통해 사람을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대한 유전자정보를 다루고 있었지만 사람의 모습을 재현해내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CGI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자분석 기술인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 기술과의 융합이 가능해졌다. 플로리다 주 성폭행범 사례처럼 과학자들은 범인의 유전자를 정밀 분석해 그 특징들을 영상화하고 있다.
이 기술이 더 발전해 범인의 코와 눈 사이즈까지 예측할 수 있다면 향후 범죄 수사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관계자들은 조상들의 모습은 물론 20만 년 전에서 4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최초의 인류 네안데르탈인 얼굴도 재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래 인류의 모습 영상화할 수 있어
일부 지지자들은 시일은 많이 걸리겠지만 유전자 분석을 통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녀들 얼굴까지 영상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얼굴을 재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직 꿈에 불과하다.
실제로 지금 과학자들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인종적 차이, 눈·머리카락·안색 등을 구분해내고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조상은 물론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골의 성(性)과 지역적 가계혈통 등을 밝혀내고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대학의 법의학 분자생물학자인 만프레드 카이저 (Manfred Kayser) 교수는 인류의 조상인 고대 인류의 모습을 재현해내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어떤 사람을 상상하듯이 조상들의 얼굴을 재현해낼 수 있으며, 분석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영상 재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영국의 왕 리처드 3세의 뼈로부터 채취한 DNA를 분석해 이 악명높은 왕의 모습을 재현했다.
카이저 교수는 리처드 3세가 푸른 눈에 밝은 블론드 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카이저 교수 연구팀이 이런 주장을 펼 수 있는 것은 히리스플렉스(HIrisPlex)와 같은 첨단 기기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2013년 개발된 이 기기는 붉은색 머리카락은 80%, 검은색은 87.5%, 금발은 69.5%까지 탐색이 가능했는데, 지금 그 성능이 더 향상돼 거의 90% 선까지 정확도를 보이고 있다. 또 눈과 피부 색깔 등 보다 더 세밀한 특징까지 알아낼 수 있다.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지만 키, 얼굴 크기와 같은 다른 특징들은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특징들을 찾아내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민들레 씨를 찾아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는 카이저 교수의 설명이다.
분석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성능이 개발되지 않는 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의 얼굴을 재현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그러나 항상 그래왔듯이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고 지금의 상황을 바꾸어놓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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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12-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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