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선보인 공상과학영화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에서는 적혈구만한 크기의 초소형 잠수정이 등장한다. 사람 몸에 투입된 이 잠수정은 인체 구석구석을 이동하며 질병을 발견하고 치료한다.
최근 마이크로 의료로봇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영화 속 상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마이크로 의료로봇은 1㎝ 이하 크기의 의료 기기가 인체 내부에 삽입돼 이동하면서 진단과 치료를 하는 것을 일컫는다. 환자의 빠른 회복과 병원의 높은 수익, 정부의 의료부담 최소화 등을 위해 의료기기는 절개 최소화, 즉 최소침습을 지향하게 되는데, 최소침습의 궁극적인 해법을 바로 마이크로 의료로봇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의료산업의 패러다임이 로봇을 활용한 최소침습수술로 변하면서 세계 의료로봇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이 발표한 ‘2018년 의료로봇시장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17억 8100만달러이던 세계 의료로봇시장은 5년간 연평균 16.1% 성장해 오는 2018년에는 37억 6400만달러(한화 4조369억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절개 없이 간편하게 현대병 치료한다
혈관치료용 로봇은 인체 내 혈관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노폐물이나 종양 등을 제거한다. 예를 들어 혈액이 막혀 생기는 심근경색, 동맥경화증 등의 질환이 발생했을 때 인체를 절개하지 않고 로봇을 외부에서 조종해 막힌 부위를 뚫는 것이다.
로봇(Robot), 나노(Nano), 바이오(Bio) 기술이 총 결합된 최첨단 융합기술로 현재 이 분야에서의 연구개발이 중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혈관치료용 마이크로 로봇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관련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모은다.
지난 2010년 전남대 로봇연구소에서는 인간과 비슷한 강한 혈류와 혈압을 가지고 있는 돼지 혈관 내에 직경 1㎜, 길이 5㎜의 마이크로 로봇을 투입하는 실험이 진행됐다. 로봇을 신체 곳곳에 투입시킨 후 원격으로 바깥에서 위치를 제어하고 이동시키며 막힌 혈관을 뚫는 실험이었는데 성공했다.
2012년 부경대학교에서도 혈관이동형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마이크로 로봇 내부에 나노기술을 적용한 유체가압 추진 장치를 장착해, 일정한 압력으로 피가 흐르는 혈관에서 로봇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키는데 성공했다. 또한 로봇에는 별도의 배터리가 사용되지 않아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알약 하나로 온 몸 구석구석 진단
최근 활발하게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는 마이크로 의료로봇 분야 중 하나는 ‘캡슐 내시경’이다.
기존 내시경 검사는 입과 혀, 목을 마비시키는 약을 먹은 후 의사가 기다란 관을 목으로 삽입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환자에게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벽이나 식도 등에 상처가 나기도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병원에서는 캡슐 내시경을 상용화해 사용하고 있지만, 자체 운동기능이 없어 의사의 직접 진단이 불가능하고, 일반 내시경을 쓰기 어려운 소장에 국한해 사용돼 왔다.
체외 무선조종 캡슐내시경은 의사가 자유롭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기존 캡슐내시경으로 12~24시간 걸리던 진단 시간도 20~30분으로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캡슐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내시경 시술 때 구토가 나거나 장기 파손 등의 걱정도 거의 없다. 이 로봇이 촬영하는 중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즉시 그 곳에 준비돼 있는 약물을 주입할 수도 있다.
무선조종 캡슐내시경은 전남대에서 혈관치료용 로봇기술을 우연히 소화기관용 캡슐내시경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개발했다. ‘캡슐형 내시경 구동제어시스템’을 포함한 관련 기술들은 의료기기 전문기업에 이전됐으며, 상용화가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오는 2027년까지 ‘능동형 캡슐내시경’관련 매출이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확한 약물전달로 ‘난치병’도 극복
기존의 암 진단치료의 한계를 로봇을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전남대 박종오 교수팀은 박테리아와 마이크로 약물캡슐을 결합한 ‘박테리오봇’을 개발했다. 크기가 직경 3㎛(마이크로미터, 1마이크로미터는 100만분의 1m)로 아주 작다. 로봇은 생물체인 박테리아와 약물이 들어 있는 마이크로 구조체 2개 부분으로 구성된다.
스스로 암을 인지하고 편모를 이용해 암에 접근하고 공격하는 박테리아의 특성을 활용, 마이크로 구조체에 약물을 실어 인체에 주입하면 특정 부위로 약물을 이동시킬 수 있다. 박테리오봇은 암세포에 도착하면 마이크로 구조체를 터뜨려 암 표면에 항암제를 뿌린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는 몸속을 움직이면서 원하는 부위에 치료약물 및 줄기세포를 전달할 수 있는 3차원 다공성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 개발했다. 자성물질(니켈)과 생체적합성 재료(티타늄)을 코팅한 3차원 구조물 형태로 제작된 이 로봇은 자기장 제어를 통해 원하는 부위로 보낼 수 있어 약물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치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치매나 망막변성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 연구진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보다 고도화된 마이크로 의료로봇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심장의 움직임과 혈류 등을 고려해 효율적으로 마이크로 의료로봇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는 한편, 로봇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복합 영상시스템 및 영상분석 기법 등도 개발할 예정이다.
DGIST 마이크로로봇연구센터 관계자는 “다른 의료로봇에 비해 마이크로 의료로봇은 좀 더 원천성이 높고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확실한 선두주자가 없어 경쟁적으로 연구개발이 이뤄지는 상황”이라며 “아직까지 뚜렷한 선두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국내 원천기술 확보하고, 우수한 기술을 개발한다면 마이크로의료로봇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백나영 기자
- 저작권자 2015-08-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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