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0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하계대회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가 개막식 축사를 맡았다. 세계 90개 국가에서 1600명 이상이 참가한 이 행사는 ‘하계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행사다.
리 총리는 “혁신은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꺼지지 않는 엔진”이라고 강조하며 “시장 촉진과 사회활력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창업공간을 가질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대중창업 만인혁신(大衆創業 萬衆創新)’ 전략이다.
“누구나 창업을 하고 개인마다 혁신을 일으킨다”는 의미의 이 문장은 일주일 뒤 17일 열린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다시 한 번 등장했다. 수출 중심의 구체제에서 내수 중심의 신체제로 전환하는 새로운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올해에는 중국 정부의 공식 업무에 등재되어 전국 곳곳에서 창업과 혁신 운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19일 ‘중국판 창조경제 ‘대중창업, 만인혁신’, 사상 최대의 창업붐 조성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새로운 경제정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분석했다.
성장 둔화된 중국경제 살릴 비법은 ‘창업’
지난 30년 동안 10%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온 중국 경제는 최근 들어 “한겨울을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구의 노령화, 근로자의 부족, 부동산 개발투자 둔화, 과잉생산으로 인한 과도한 공급, 수요자들의 구매력 상실, 지방정부의 도덕적 해이 등이 겹치면서 경제 침체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리 총리는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보고를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7% 안팎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는 2014년보다 조금 낮아진 수치이며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수출을 통한 고속성장의 혜택을 누려온 중국이 내수시장의 확대를 기반으로 하는 신체제로 전환을 준비 중이다.
그 핵심에 ‘대중창업 만인혁신’ 정책이 있다. 200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에드먼드 펠프스(Edmund S. Phelps)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의 조언을 받아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올해 3월 중국 정부는 “대중창업 만인혁신 그리고 공공제품·서비스라는 양대 엔진을 통해 경제의 양과 질을 모두 높인다”는 내용을 업무보고에 포함시켰다. 이 때부터 전국에서 창업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국가공상총국 통계에 따르면 작년 9월에서부터 올해 3월까지 8개월 동안 중국 내에서 214만 개의 기업이 새로 생겨났다.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33%나 늘어난 수치다. 창업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검색엔진 바이두는 ‘대중창업 만인혁신’ 업무보고 발표일 직후 창업에 대한 검색 건수가 연초에 비해 5배 가까이 뛰었다고 밝혔다.
리 총리는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창업을 장려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베이징 서북쪽의 ‘창업거리’ 현장을 찾았다. 서점이 밀집해 있던 곳이 최근 카페로 리모델링 하면서 창업의 대표지로 떠오른 곳이다. 여기서 “정부는 모르는 대중의 마음을 시장은 알고 있다”고 강조하며 시장 중심으로 창업과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창업은 쉽게, 기존 기업은 크게, 실패해도 다시
그러나 실제 효과로 이어지기까지는 많은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창업 △기업의 성장 △파업 후 재창업 가능성의 3가지를 장애물 돌파의 원동력으로 분석했다.
우선 ‘창업’에 있어서는 누구나 쉽게 회사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지난해 2월 ‘등록자본 등기제도 개혁안’을 비준했다. 기업 등록비의 최소금액 요구가 폐지되고 출자방식도 자율화한다는 내용이다. 이제는 1위안만 있으면 누구든 창업 등록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올해는 등록 소요시간을 5일로 단축한다고 발표하면서 제도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업의 성장’ 측면에서는 운영비용 조달력을 높이고 정부 관리감독을 줄이며 창업사기를 막음으로써 전체적인 효율을 높이는 것이 주요 과제다. 지난 10년 동안 최저임금이 1배나 치솟으면서 기업의 부담도 커졌다. 공무원들이 재량권을 거들먹거리며 기업에게 뇌물을 요구하는 병폐도 만연해 있다. 문서를 위조해서 정부 보조금을 타내거나 실적을 부풀려서 투자자를 모집하는 일도 잦다.
‘파업 후 재창업’은 우리나라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도전적인 창업은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이 전체 시장 분위기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중국은 파산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법원이 파산을 인정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예를 들어 파산제도가 발달한 미국은 매년 7만 건에 달하는 파산 판결이 내려진다. 반면에 중국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연 평균 4천 건에 불과했다. 파산 절차가 까다롭고 소요비용이 높다는 이유로 대부분 야반도주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파산 소요비용은 기업자산의 22%로 미국의 3배 가까이 된다.
그럼에도 중국의 창업 붐을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국가경제의 체질 자체를 바꿀 만큼 강력한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정부, 기업, 대중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점이 저력으로 꼽힌다.
‘대중창업 만인혁신’ 정책 발표 이후 정부부처는 창업환경 개선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내규 개선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심지어 대학생들의 창업활동도 학점으로 인정할 것을 각 대학에 요구하고 있다. 레노버, 하이얼 등의 대기업들도 혁신 창업 플랫폼을 만들어 장기적 생존을 모색하는 추세다. 샤오미, 알리바바, 화웨이 등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중국 창업주들의 약진도 대중들의 마음을 자극해 창업으로 유혹하고 있다.
- 임동욱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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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5-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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