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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신기술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2013-06-24

도전성 있는 과제 '성실실패' 인정 성실실패… R&D 적용 방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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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부 출연연구소의 A연구원은 세라믹 전문가다. 세라믹 재료의 강도를 3년간 30% 높여 신소재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구도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세라믹 강도를 높이는 것보다 전기적 성질을 바꾸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훨씬 더 좋은 신소재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런데 A 연구원은 그동안 해온 대로 세라믹 강도 연구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연구 성과를 판정하는 내부 규정 때문이다. 당초 정한 계획대로 하지 않으면 실패한 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제출한 연구계획서에서는 3년 동안 매년 세라믹 강도를 10%, 20%, 30% 개선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연구중단 조치가 취해질 수 있어, A연구원은 강도연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복합기술에 맞는 성실실패 제도 필요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엘타워컨벤션에서 미래창조과학부, KISTEP 주최로 연린 '연구개발 성실실패 인정과 재도전을 위한 공청회'에서 정민원 미래창조과학부 성과평가국 연구제도과장은 한 언론에 게재된 ‘도전·비전 없는 R&D 사례’를 인용해 연구평가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R&D연구현장에서 도전적 연구과제들을 발굴하기 위해 성실실패를 인정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엘타워컨벤션에서 미래창조과학부, KISTEP 주최로 연린 '연구개발 성실실패 인정과 재도전을 위한 공청회'.

창조적 연구를 위해 A연구원과 같은 연구를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를 성실히 수행했을 경우 불이익을 면제해주는 성실실패를 인정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과거 연구과제 평가에서 일단 ‘실패’로 인정되면 즉시 제재조치가 부과됐다. ‘실패’로 판정된 사례들 중에는 연구개발 내용 누설 및 유출, 기술료 미납, 연구개발비 용도외 사용 등 범죄적 행위들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A연구원의 사례처럼 연구계획 수정으로 인해 제재를 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한 전직 출연연구원장은 최근 연구가 점점 더 복합기술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계획을 바꾸어야 할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할 경우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연구를 평가하고 있는 위원들이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점점 더 다양해지는 융합연구 현장에서 이런 변화를 수용하고 창조적 연구를 지원할 수 있도록 ‘성실실패’를 보다 더 철저히 인정하는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직 연구원장의 주장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공공 R&D를 수행하면서 각 부처별로 각각 다른 연구과제 평가 제도를 적용하고 있는 중이다. 각 부처별로 수행중인 연구 내용이 다른 만큼 평가 역시 서로 다른 기준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현재 정부의 기본 방침은 이렇게 산발적으로 진행돼 오던 평가 제도를 일원화해 공통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성실실패 연구를 지원해나가자는 것이다.

이전에 과제평가에서 일단 ‘실패’로 인정되면 즉시 제재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정부(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성실실패’ 연구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진다. 일단 ‘성실실패’로 인정되면 제재조치를 면제하고 지속적으로 지원이 이어진다.

평가과정에서 가장 고려하고 있는 내용은 ‘도전성’이다. 당초 연구목표가 도전적으로 돼 있을 경우 실패 가능성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외부요인으로 인한 실패도 고려대상으로 넣고 있다. 시장 환경, 정부정책 변화 등으로 인해 목표달성에 차질이 생겼을 경우 성실실패로 인정한다는 안을 마련해놓고 있다.

미비점 보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

성실실패로 인정된 연구결과물들에 대해서는 2단계 가치평가가 이루어진다. 연구과정에서 나타난 기술성, 사업성 등에 대한 평가다. 실패 사례에서 성공사례로 변신한 3M사의 ‘포스트잇’, 머크사의 발모제 ‘프로페시아’, 화이자 사의 ‘비아그라’ 등처럼 차후 성공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독창성과 후속연구에 대한 기여도다. A라는 연구결과를 위해 B라는 접근방식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을 경우에도 비롯 실패는 했지만 성실실패로 인정받게 된다.

성실실패 제도의 최종 목표는 가능성 있는 연구과제에 대해 재도전의 기회를 열어주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연구평가위원회와는 별도로 (성실실패연구를 위한) 전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중이다. 미래부는 이 미비점을 보완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이 제도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가적으로 실시하려는 성실실패 제도 성공을 위해 연구현장 상황도 충분히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관계자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은 도덕성이 결여된 연구과제들이다. 자칫 성실실패 연구 범주에 끼어들 수 있어 제도 자체를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산업기술 R&D 과제 평가 결과를 보면 총 2천907건의 연구과제 중 불성실 수행으로 판정된 경우는 29건에 불과하다. 이 29건의 불성실 수행 연구과제 중에서 성실실패 사례를 골라낸다 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공공연구에 있어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기업과 대학 연구과제에 대해 차별화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기업의 경우 속성상 영리를 추구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이전부터 매우 철저한 성과관리가 이루어져 왔다. 성실실패에 대해서도 많은 고려가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대학의 경우 영리보다는 명분을 중시하고 있다. 보건산업진흥원 김종석 신기술개발단장은 성실실패 제도를 도덕성이 확보된 대학 연구에 적용해줄 것을 주문했다. 연구자들의 도덕성과 결부시켜서 선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성실실패 제도를 과제 선정과정서부터 포괄적으로 함께 운영해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도전적 과제일수록 실패 부담을 크게 안고 있기 때문에 평가위원회에서 이를 충분히 고려해주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평가 자체가 매우 애매모호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며, 도전성에 대한 정확한 기준마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서경석 정책개발실장은 성실실패 연구결과들을 공유할 수 있는 데이터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가 R&D 정보시스템에 성실실패 연구데이터를 추가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3-06-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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