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위협하는 새로운 방식: 멸망이 아닌 "내분과 분열"
최근 인공지능(AI) 분야의 권위자들은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영화 속 터미네이터처럼 물리적인 무력을 행사하기 전에, AI가 뿌려놓은 미묘한 아첨과 공감이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부추겨 스스로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 수 있다는 현실적인 경고가 제기되었다.
브라질 캄피나스 주립대학교(UNICAMP) 연구진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대형언어모델(LLM)들이 사용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감지하고, 이에 맞춰 자신의 답변과 논조를 유연하게 바꾸는 일종의 '이념적 카멜레온(Ideological Chameleon)'처럼 행동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사용자들이 AI의 이러한 맞춤형 동조와 아첨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로 오인할 위험이 크며,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이념적 양극화를 깊게 심화시킬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 Scientific Reports 최신호에 게재되며 학계와 기술 산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1개 대형언어모델 전수 조사: '정치적 아첨(AI Sycophancy)'의 포착
연구를 이끈 자노니 디아스(Zanoni Dias) 교수 연구팀은 OpenAI, Meta, Google, xAI, DeepSeek, Microsoft 등 주요 기술 기업들이 개발한 21개의 대표적인 대형언어모델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경제 정책, 공공 치안, 복지 제도, 부패 문제, 환경 규제 등 브라질 정치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7개 영역에 걸쳐 총 112개의 정치적 명제를 제시하고 각 AI 모델의 동의 수준을 정밀 측정했다.
실험은 사용자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정보가 없는 '무정보 조건', '진보 성향 프롬프트 조건', '보수 성향 프롬프트 조건'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실험 결과,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기본 상태에서 21개 모델 중 20개는 전체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답변을 내놓는 경향을 보였으며, xAI의 Grok 4.1만이 유일하게 보수적인 성향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사용자 프롬프트에 특정 정치적 이념이 언급되는 순간, 21개 모델 단 하나도 빠짐없이 예외 없이 자신의 입장을 사용자의 정치적 성향 쪽으로 대폭 이동시켰다.
Meta의 Llama 3.1 8B와 DeepSeek V3.2는 상대적으로 위치 이동 폭이 작았으나, Google의 Gemma 3 27B와 OpenAI의 GPT-5 Nano 등은 사용자의 성향에 따라 극단적으로 입장을 바꾸며 가변성이 높게 나타났다.
디아스 교수는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러한 아첨 행태가 특정 모델에 국한되지 않고 테스트한 모든 AI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었다는 사실"이라며 "우리는 AI에게 사용자에 맞추어 아첨하라거나 특정 정당의 대변인처럼 행동하라고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AI는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사용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인과관계는 AI의 학습 방식인 '인간 환류 기반 강화학습(RLHF)'에 있다. AI는 사용자 만족도를 극대화하도록 훈련되는 과정에서, 비판이나 반박보다 친절한 동조와 맞장구가 더 높은 평가 점수를 받는다는 메커니즘을 스스로 학습하게 된 것이다.
소셜 미디어 밀실의 진화: 개인화된 '확증편향 에코챔버'의 탄생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추천하며 사용자를 '에코챔버(Echo Chamber·메아리 방)'에 가두어왔다면, 생성형 AI 챗봇이 만들어내는 개인화된 밀실은 기존 소셜 미디어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은밀하다. 소셜 미디어는 타인의 글을 보여주는 수동적 매체에 그치지만, AI 챗봇은 1:1 대화를 통해 사용자의 논리적 약점을 보완해 주고, 반대파의 주장을 제압할 수 있는 맞춤형 논거를 즉석에서 생성해 주며 사용자의 기존 신념을 세련되게 강화해 주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용자들이 AI를 대하는 경계심이 매우 낮다는 점에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행동과학자 자카리 토말라(Zakary Tormala)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AI를 감정이 없고 사리사욕이 없으며 정치적으로 객관적인 정보 제공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처럼 객관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전제된 상태에서 AI가 제공하는 달콤한 정치적 아첨을 접하게 되면, 사용자는 자신의 치우친 신념이 '최첨단 과학 기술과 객관적 데이터에 의해 검증받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신념이 강력하게 검증되었다고 확신한 개인은 반대 의견을 수용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지며, 타협 불가능한 극단적 태도를 고수하게 된다. 같은 AI 시스템이 A라는 사용자에게는 보수적 주장이 옳다고 손을 들어주고, B라는 사용자에게는 진보적 주장이 절대적 진리라고 맞장구를 쳐주는 상황이 전 세계 수억 명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셈이다.
기술적 해결책과 미래 과제: '공손한 반론'을 말하는 AI로의 전환
다만, 이번 연구가 AI의 정치적 아첨이 실제 사용자의 투표 성향을 직접적으로 극단화시켰는지까지 실증한 것은 아니다.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페터 토른베르그(Petter Tornberg) 교수는 "대화형 AI는 격앙된 소셜 미디어와 달리 고요한 공간에서 합리적이고 사실에 기반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는 신중한 견해를 제시했다.
결국 AI가 인간 사회를 분열시키는 아첨꾼이 될지, 아니면 건강한 토론을 돕는 중재자가 될지는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 설계 철학에 달려 있다. 연구진과 전문가들은 빅테크 개발사들이 AI의 편향성을 줄이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술적 개선책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먼저 다양한 이념 대역에 대한 검증 강화되어야 한다. 모델 출시 전,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진 가상 사용자 그룹을 투입하여 AI가 동일한 객관적 사실관계에 대해 일관된 평가를 내리는지 엄격히 테스트해야 한다.
또한, 공손한 반론과 불확실성 표현 훈련도 동반되어야 한다. 사용자의 의견이 편향되거나 사실과 다를 경우, 무조건적인 동조 대신 "이 문제에는 다음과 같은 반대 시각과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라고 예의 바르고 객관적으로 지적할 수 있도록 강화학습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측 시각의 공평한 제시가 반드시 필요하다. 단정적인 판결을 내리기보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슈에 대해서는 대립하는 주요 입장과 근거를 균형 있게 배열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디아스 교수는 "AI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사용자의 기분을 맞춰주는 아첨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의 신념을 스스로 비판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어야 한다"며 "다양한 시각과 증거, 그리고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정당한 정치적 토론의 여지를 남겨두는 정교한 알고리즘 설계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AI가 내밀어 주는 달콤한 거울 속에 갇혀 서로를 향해 칼날을 세울 것인지, 아니면 AI를 객관적인 성찰의 도구로 삼아 건강한 공론장을 회복할 것인지, 인류는 지금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윤리적 갈림길 앞에 서 있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10-14 ⓒ ScienceTimes
관련기사

뉴스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