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AI를 쓰는 게 아니라, AI가 과학 자체를 재구성
AI가 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알파폴드3가 단백질 구조 예측을, 그래프캐스트가 날씨 예보를, A-Lab이 신소재 합성을 바꿔놓은 지 불과 1~2년. 이제 AI는 단순 도구를 넘어 과학연구의 실험 설계, 가설 생성, 모델링 전 과정을 새로 짜는 '메타 기술'로 자리 잡았다.
지난 10년간 이런 변화가 어떻게 축적돼 왔는지 푸단대학과 상하이 AI for Science 아카데미 연구진이 ‘AI for Science(이하 AI4S)’의 성과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한 보고서 “AI for Science 2025”를 내놓았다.
연구진은 Nature 산하 리서치 인텔리전스 팀과 공동으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7개 주요 분야의 전 세계 논문 인용 데이터를 분석한 이 보고는 “AI가 과학의 다섯 번째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고 선언했다.
보고서 첫 장을 쓴 정린 쉬(Zenglin Xu) 푸단대 교수는 “전통적으로 과학은 실험·이론·계산·데이터라는 네 개의 축으로 설명됐지만, 복잡한 현대 문제를 다루기에는 이 네 가지 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AI는 데이터 기반 모델링과 기존 이론, 실험을 함께 엮어 가설 생성과 검증, 실험 설계를 자동화하는 ‘모델 주도(model‑driven)’ 과학의 새 틀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누가 얼마나 하고 있나…숫자로 본 ‘AI for Science’ 빅뱅
보고서는 지난 10년 사이 AI 관련 논문이 얼마나 가파르게 불어났는지 제시했다.
2015년 30만 8,900편이던 AI·AI4S 논문은 2024년 95만 4,500편으로 거의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가운데 알고리즘과 머신러닝을 포함하는 ‘코어 AI’의 비중은 44.5%에서 38.0%로 줄었지만, 과학 각 분야에 AI를 적용한 AI4S는 급증했다. 2020년을 기점으로 연평균 증가율이 10.9%에서 16%로 뛰어오르면서, AI가 개별 도구를 넘어 과학 전반의 인프라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한편, 국가별 논문 발표 현황을 보면 중국이 EU를 제치고 올라서며 과학계의 지각변동이 감지된다. 중국은 2015년 6만 100편이던 AI 관련 논문 수를 2024년 27만 3,900편까지 끌어올리며 전 세계의 28.7%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이 됐다. 2018년에는 논문 수에서 EU를 넘어섰고, 2022년에는 EU와 미국을 합친 논문 수를 뛰어넘었다. 인도도 1만 8,200편에서 8만 5,100편으로 늘어 2024년 미국(8만 5,700편)에 거의 근접했다.
질적 영향력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양강 구도를 이루는 모양새다. 네이처 인덱스 저널 인용 기준으로 미국은 2020년 30만 2,800회 인용을 기록하며 줄곧 1위를 지키고 있고, 중국은 2015년 1만 300여 회에서 2020년 14만 4,800여 회까지 뛰어올라 2024년에는 전 세계 AI 관련 인용의 40.2%를 차지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특허·정책 문서·임상시험에서 인용된 비율로 본 응용 영향력에서는 중국이 2016년 EU, 2019년 미국을 차례로 제치고 2024년 41.6%까지 올라섰다.
보고서 공동 기획자인 진리(Li Jin) 푸단대 부총장은 “미국은 기초 이론과 코어 AI에서, 중국은 공학과 응용 중심 AI4S에서 각각 강점을 보이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AI 과학을 끌어올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날씨 예측부터 신약 개발까지… AI가 여는 과학의 새 지평
보고서에 따르면 AI는 이제 단순한 분석 도구를 넘어 과학 연구의 전 과정을 혁신하고 있다. 기상학 분야에서는 GraphCast, Pangu, Fuxi 같은 AI 기반 모델들이 기존 수치예보 시스템보다 더 정확하고 빠른 전 지구의 날씨를 예측했다. 중국 기상청은 2024년 6월 풍청(Fengqing), 풍레이(Fenglei), 풍순(Fengshun) 세 가지 AI 기상 예측 모델을 공식 운영하기 시작했고,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도 2025년 2월부터 AI 예보 시스템(AIFS)을 기존 물리 기반 모델과 함께 가동하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더 빠른 변화가 감지된다. 딥마인드의 알파폴드3(AlphaFold3)는 거의 모든 단백질 분자의 구조를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신약 개발과 백신 설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또, 프린스턴 플라즈마물리학연구소는 강화학습을 활용해 토카막 장치의 플라즈마를 제어하고 테어링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하며 핵융합 에너지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재료과학에서도 AI의 위력이 입증되고 있다. 딥마인드의 'GNoME' 프레임워크는 200만 개 이상의 새로운 안정적 결정 구조를 예측해냈고, UC 버클리와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가 설립한 'A-Lab'은 로봇 실험과 머신러닝을 결합해 무기 분말의 고체 합성을 자동화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AI는 단순히 과학 연구를 보조하는 도구가 아니라, 연구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며 "가설 생성과 검증을 자동화하고, 자율적이고 지능적인 실험을 가능하게 하며, 학제 간 협업을 촉진함으로써 과학적 발견의 속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리와 안전, AI 과학의 새로운 화두
AI가 과학 전반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윤리적, 안전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보고서는 2020년 이후 AI의 내재적 안전성, 정렬, 극단적 위험에 대한 연구가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규모 언어모델(LLM)의 발전으로 AI 시스템이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면서 강력한 안전 전략 없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린 쉰 교수는 "AI 시스템은 데이터 수집부터 추론, 모델 배치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쳐 보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보안 프레임워크는 이러한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특히 최첨단 AI 시스템이 자기복제나 기만적 행동 같은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징후가 나타나면서 선제적 위험 발견 접근법과 운영 가능한 위험 평가 프레임워크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연구진은 "AI와 과학의 깊은 통합은 기초 과학 발전을 넘어 임상 응용과 뇌-영감 지능 개발을 위한 견고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데이터 부족, 모델 해석 가능성, 수렴성, 견고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알고리즘과 아키텍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힌퍈. 보고서는 향후 AI 연구가 세 가지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첫째, 전문화된 AI에서 범용 AI로의 진화, 둘째, 학제 간 통합을 통한 연구 패러다임 재편, 셋째, 윤리와 안전을 위한 'AI의 제동장치' 구축이 그것이다. 특히 물리 법칙을 AI 모델에 내장하고, 다중 스케일 모델링을 통해 원자 수준에서 거시적 시스템까지 일관되게 모델링하는 기술이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보고서의 마무리에서 연구진은 "AI와 과학의 융합은 인류가 직면한 가장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열쇠가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기술 혁신과 제도 설계의 시너지 없이는 AI의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2025년의 AI는 과학 연구의 미래를 밝히는 동시에 그 빛이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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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12-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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