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제작과 과학 컨설턴트의 역할- 과학과 오락 사이의 균형
할리우드 영화는 종종 오락성을 위해 현실성을 '희생'하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쿨의 법칙 (영화 제작에서 재미와 오락이 현실성보다 우선시된다는 원칙)"에 따라 재미와 오락이 사실적 묘사보다 우선시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최근 영화 제작자들은 과학적 정확성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수백, 때로는 수천 명의 스텝들과 함께 일하는 복잡한 영화 제작 과정에서도 과학적 현실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영화 제작 측에서는 이를 위해 전문 과학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추세이다.
과학 컨설턴트의 핵심 역할
듀크 대학의 생물학자 모하메드 누르는 공상 과학과 판타지의 차이점은 공상 과학이 실제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학 컨설턴트는 '과학적 사실'이란 핵심 요소를 기반으로 영화 속 공상과학과 판타지를 구분한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현재의 과학에 근거하여 영화 속 과학적 원리나 미래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다.
과학 컨설턴트는 단순히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창의적인 스토리텔링과 과학적 정확성 사이의 균형을 찾아내는 중재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SF드라마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에는 정체불명의 외계 질병이 등장하는데, 컨설턴트 누르는 이를 신종 프리온 질환(Prion disease)의 일종으로 묘사할 것을 제안했다. 프리온 질환은 치명적인 신경계 감염 질환으로 사람을 포함해 동물이 감염되면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뇌 기능을 잃게 된다. 단백질로만 이루어져 유전물질이 없음에도 전염이 가능한 매우 특이한 병원체를 가지며 대표적인 프리온 질환으로 광우병(감염된 쇠고기 섭취를 통해 감염)이나 쿠루병(감염된 시체 섭취를 통해 감염)이 있다. 스타트렉 드라마 에피소드에서는 Kili 난민들이 외계 질병으로 인한 신경계 장애로 치료를 받는 장면이 나오며, 이들이 Urna라는 행성의 식물을 먹고 병에 감염된 사실이 등장한다. 이처럼 과학 컨설턴트들은 현실 과학을 미래 가능성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스타트렉 외에도 다양한 영화와 TV 프로그램에서 과학 컨설턴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브레이킹 배드'에서는 오클라호마 대학의 화학자 도나 넬슨이 메스 제조에 필요한 화학 물질을 배우들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작품은 화학 지식을 정확하게 표현하면서도 흥미로운 스토리를 전개한 성공적인 사례이다. 또 미국의 인기 TV시리즈였던 '빅뱅 이론'에서는 데이비드 잘츠버그 교수가 과학 컨설턴트로 참여하여 화이트보드에 표시되는 실제 과학적 발견과 방정식들을 제공했다. 이 시트콤은 과학자들의 일상을 재미있게 묘사하면서도 실제 과학적 개념을 정확하게 다루었다.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는 미네소타 대학의 제임스 카칼리오스 교수가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그는 원래 "만화책을 통해 배운 물리학의 모든 것"이라는 강의를 통해 반 데르 발스 힘과 같은 실제 과학적 개념을 슈퍼히어로 세계에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앞선 사례들을 통해 확인한 것처럼 과학 컨설턴트들은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는 역할을 넘어 현실 세계의 논리와 영화 속의 논리를 조화시켜 이야기에 설득력을 주고 현실감을 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과학 컨설턴트들은 자원봉사로 지원하며 자신들의 전문 분야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열정으로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영화 등 콘텐츠의 질적 향상은 물론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다.
창의적인 스토리와 과학적 이론 사이의 타협
영화나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과학 컨설턴트의 모든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과학적 정확성이 스토리텔링의 흐름이나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고려해 타협되기도 한다. 누르는 스타트렉 제작 과정에서 화학적 신호로 의사소통을 하는 외계 종족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는데, 개념이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궁극적으로, 이야기가 과학을 능가한다"는 것이 제작 현장의 현실이다.
타협의 과정에서 과학 컨설턴트들은 가능한 한 과학적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르는 영화의 내용은 모두 픽션이지만 시청자들에게 현실로 느껴지도록 만들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래의 과학'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과학 컨설턴트들은 끊임없이 상상력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적 정확성을 추구한 영화의 상업적 성공 사례
흥미로운 점은 과학적 정확성을 추구한 영화들이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션'과 '인터스텔라'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영화들은 전문가들의 과학적 컨설팅을 받아 현실적인 묘사를 구현해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킵 손은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인터스텔라'의 블랙홀을 구현했으며, NASA의 짐 그린은 '마션'이 화성 생활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도록 도왔다.
이러한 노력은 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두 영화 모두 전 세계적으로 수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고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오스카상의 다양한 부분에 후보로 올랐다. 그중에서도 '인터스텔라'는 시각효과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누르는 영화들이 제공하는 현실성의 정도 차이를 뷔페에 비유하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소재나 내용이 정말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주의 일인지 과학적 이론이나 배경에 대해 이해하길 원하는 관객들도 있다."고 분석한다. 영화의 과학적 정확성은 단순한 교육적 가치를 넘어 영화의 완성도와 상업적 성공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과학 교육의 수단으로써의 영화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강력한 교육 도구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초등학교 과학 시험 점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영화와 같은 대중 매체는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의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4학년 학생들의 과학 점수는 1995년에 비해 현재 9점이나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 컨설턴트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단순한 직업적 열정을 넘어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다. 누르는 듀크 대학에서 스타트렉을 커리큘럼에 통합하여 진화와 유전 이론을 설명하는 등,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팬 컨벤션에서 강의를 진행하며 사람들의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실제 과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힘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가상 미디어가 실제 과학 분야의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NASA의 짐 그린은 원래의 스타트렉 시리즈가 어린 시절 자신이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고 언급했다. 누르는 우리가 스타트렉 시리즈를 '대중문화'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며 작품의 인기가 과학에 대한 흥미로 이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고 설명한다.
영화나 드라마 등 콘텐츠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과학 교육과 미래 과학자 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미디어 제작에서 과학 컨설턴트의 역할은 단순히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과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적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영화의 질적 향상뿐만 아니라 대중의 과학 이해도 증진에도 중요한 기여하고 있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5-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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