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에 개봉한 김태용 감독의 영화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는 세상을 떠난 엄마, 식물인간이 된 연인이 생전의(사고 전) 모습으로 재현되어 살아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한다. 그래서 이 서비스를 이용자들은 삶과 죽음의 영원한 이별을 물리적 공간의 분리 정도로 인식한다.
고인(故人)이 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매일 대화하면서 일상을 나눌 수 있다면… 시나리오 작법에서 사용하는 ‘What if’의 대표적인 가상이 현실에 가까워졌다. 영화적 상상뿐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통해 고인의 특징을 학습시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대화하는 챗봇기술이 점차 상용화되어 가고 있다.

생전의 모습에 가깝게 구현한 디지털 휴먼 서비스
최근 국내외 AI 기업들이 ‘AI 추모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고인의 평소 대화 기록을 학습한 인공지능을 통해 죽은 이와 대화를 나누는 이 서비스는 해외에서는 ‘데드봇(Deadbot)’ 혹은 ‘그리프봇(Griefbot)’으로 불리며 상용화되는 추세다. 그리고 이제는 챗봇뿐만 아니라 대규모 언어 모델을 포함한 생성 AI를 기반으로 텍스트, 사진, 오디오, 비디오 및 기타 데이터들을 학습하여 고인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디지털 휴먼 서비스도 생겨나고 있다.
디지털 휴먼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3D 모델에 인공지능 기술을 더해서 인간처럼 보이고 행동하는 캐릭터다. 주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디지털 휴먼이 이른바 ‘애도 기술(Grief Tech)’을 통해 사적 영역 및 감성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 처음으로 고인을 재현한 콘텐츠가 소개됐다. 이 프로그램의 VR 영상은 모션 캡처와 딥러닝이 활용되었는데, 당시에는 기술의 미숙성 때문에 고인의 모습을 완벽히 구현하지는 못했다는 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지 생성 AI와 스컬핑으로 형태와 세부사항을 정교하게 구현하고, 모션 캡처와 리타게팅 등의 애니메이션 기술로 움직임이 현실적으로 향상되었다. 여기에 고인의 언어습관이 학습된 인공지능을 더하면서 유족이 기억하는 고인의 모습과 100%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게 됐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의 알렉사(Alexa)가 고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해 발표됐고, 이어에프터 AI(Hereafter AI)는 AI챗봇 형태, 스토리파일(Storyfile)은 영상통화 형태로 고인과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살아있는 자들의 슬픔
얼마 전 OTT 티빙의 오리지널 프로그램 ‘얼라이브’에서는 가수 울랄라세션의 리더였던 고(故) 임윤택과 뮤지션 고(故) 유재하가 인공지능 기술로 복원된 모습이 공개됐다. 이 밖에도 유명인들의 생전 모습이 복원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을 그리워했던 팬들의 그리움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점차 상용화되면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리버흄 미래지능 연구센터(Leverhulme Centre for the Future of Intelligence)는 ‘디지털 불멸’ 기술의 위험을 연구한 논문을 기술철학 학술지(Philosophy & Technology)에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술로 고인을 구현하는 ‘데드봇’ 서비스가 상업적으로 이용되거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사용될 경우 지속적인 정신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데드봇’ 서비스가 ‘이별’과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다루지만, 결국은 기업의 수익화를 위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서적으로 취약한 미성년자가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다. 일부 이용자는 자녀에게 부모나 아주 가까운 지인의 사망 사실을 숨기기 위해 ‘데드봇’을 사용하지만, 이것은 도리어 정상적인 애도의 과정을 방해해 심리적 외상을 남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곳곳에 ‘은밀하게’ 포함된 연계광고와 결제 유도는 해당 서비스가 애도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데드봇’은 유족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장기 구독료를 지불하도록 유도한다. 장례식이 끝난 후 지금 막 이별을 한 고인(로봇)이 유족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대화방에 초대하는 등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려고 작동함으로써 애도를 방해하거나 고인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해당 서비스는 이용자가 서비스 해지를 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용자는 이 서비스 이용 해지를 고인과의 두 번째 이별로 인식하여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진은 특정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하는 은퇴 혹은 디지털 장례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인공지능이 가져온 다양한 윤리적 이슈의 최우선은 인간의 존엄성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1저자인 카타르지나(Katarzyna Nowaczyk-Basińska) 박사는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상업적으로 악용되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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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06-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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