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와 같은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기술 발전이 가져올 인류의 미래를 그려내는 SF 영화에서 AI의 비중도 커질 수밖에 없다. SF 블록버스터 '고질라'(2014)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를 연출한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신작 '크리에이터'는 이런 흐름을 대변하는 듯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AI는 인간의 지시를 수행하는 기술의 차원을 넘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다.
2055년 AI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핵폭발을 일으켜 대량 살상을 초래했다는 설정에서 이 영화의 이야기는 출발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미국은 'AI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AI 로봇 제거 작전에 나선다. AI 개발을 계속하는 아시아 지역이 주요 타깃이다. 인간과 AI 로봇이 공존하는 아시아는 AI가 벌이는 항전의 근거지가 된다.
미국은 '노마드'로 불리는 가공할 신무기를 투입한다. 노마드는 공중에 뜬 채 지상을 샅샅이 수색하고, 미사일로 목표물을 정밀 타격한다.
미국의 특수부대 정예 요원 출신인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 분)가 AI와의 전쟁에 투입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노마드의 공격으로 아시아에서 실종된 아내 마야(젬마 찬)를 찾겠다는 개인적인 목적을 가지고 작전에 뛰어든다. 네팔어로 창조자를 뜻하는 '니르마타'란 이름의 AI 설계자가 인류에 대한 반격을 위해 개발했다는 신무기를 찾아내 파괴하는 게 조슈아의 임무다.
이 신무기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AI 로봇 알피(매들린 유나 보일스)로 밝혀진다. 알피를 발견한 조슈아는 임무를 저버리고 그와 함께 마야를 찾아 나선다. '크리에이터'에서 AI 로봇은 알피에서 보듯 인간과 유사한 생명체로 그려진다. 알피는 어린아이처럼 TV를 보고, 때로는 눈물도 흘린다. 천국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모습에선 종교적인 영성까지 느껴진다. 아시아 지역의 사원에서 승려 복장을 한 AI 로봇도 여럿 등장한다. 알피가 능력을 발휘할 땐 마치 참선을 하듯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는 것도 흥미롭다.
자유를 위해 투쟁할 줄 안다는 점에서도 AI 로봇은 인간을 닮았다. AI 로봇 전사 하룬(와타나베 켄)은 AI의 해방을 위한 전쟁을 이끈다.
이 영화는 AI가 인격체에 가까울 만큼 발전한 걸 전제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AI가 과연 인간과 유사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을 깊이 파고들지는 않은 느낌이다. 이 점에서 AI와 인간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AI를 소재로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쳐 재미를 추구한 작품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AI 로봇은 인류와 공존할 수도, 대립할 수도 있는 존재란 점에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시리즈에 나오는 외계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에드워즈 감독은 최근 국내 언론과 한 온라인 간담회에서 "우리가 타인을 적으로 여기는 데 대한 은유로 AI를 끌어들였다"며 "타인과 공감하고 그들을 이해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영화에 담았다"고 말했다.
'크리에이터'에서 주목할 만한 건 알피 역의 8세 아역배우 매들린 유나 보일스의 연기다. 연기 경력이 없는데도 블록버스터의 주연을 맡아 이야기를 끌어가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테넷'(2020)에서 주연했던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이번 작품에서 '아바타'의 제이크 설리처럼 인간과 AI 로봇 사이에서 딜레마를 품은 조슈아를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배경음악은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통하는 한스 치머가 맡았다. 그의 음악은 이 영화가 펼쳐내는 스펙터클의 웅장함과 액션의 박진감을 더한다.
10월 3일 개봉. 133분. 12세 관람가.
- 연합뉴스
- 저작권자 2023-09-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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