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의 지하에는 인터넷과 케이블 TV를 연결하기 위한 광케이블이 빽빽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통신 인프라를 이용해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산업 소음을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광케이블로 음파를 원격으로 감지할 수 있는 ‘분포형 음파 센싱(DAS ; distributed acoustic sensing)’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의 타이위안 주(Tieyuan Zhu) 지구물리학과 교수팀은 광케이블을 이용할 경우 뇌우는 물론 사람의 걸음이나 음악 연주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신호 진동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음악 연주회에서 나는 높은 음색과 낮은 음색의 패턴으로 특정 곡까지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이 기술은 민감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는 유럽지질과학연합(EGU)에서 발행하는 과학 저널인 ‘솔리드 어스(Solid Earth)’ 최신호에 발표됐다.
수진기(geophone)라고 불리는 기존의 지진 감지 장치는 사실상 도시 지역에 배치하기 어렵다. 공간 확보나 설치 허가를 받는 것은 물론 도난 등으로부터 센서를 보호하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유지 비용이 많이 들어 장기간의 데이터 확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DAS 기술은 ‘다크화이버’에 연결할 수 있으므로 그 같은 제약 조건들로부터 자유롭다. 다크화이버란 통신의 전송로로 부설되어 있지만, 아직 이용되고 있지 않은 광케이블을 말한다. 또한 광케이블의 한쪽 끝에 장치를 꽂기만 하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으므로 매우 간편하다.
미사용 케이블을 2,300개의 지진 센서로 변환
타아위안 주 교수팀은 DAS 기술을 미국 동부 해안에 최초로 배치한 ‘FORESEE(Penn State Fiber-Optic foR Environmental SEnsEing)’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도시 지하의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변화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이라는 오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곳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매우 복잡한 지구물리학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지하수가 순환하면서 싱크홀과 동굴이 형성될 수 있는데, 싱크홀의 경우 도시 지역에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이곳은 기온 및 강수량의 계절적 변화가 매우 심한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캠퍼스 지하에 깔린 다크화이버에 DAS 기술을 적용해 미사용 광케이블을 2,300개의 지진 센서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2019년 4월부터 약 4.8㎞ 구간의 지반 진동 데이터를 지속해서 기록했다.
그 결과 수십 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를 네트워크에 연결된 스토리지 서버에 저장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그 서버를 인터넷 네트워크에 연결해 외부의 과학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DAS의 데이터는 다양한 신호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해상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면 광산의 폭발음, 차량으로 인한 진동, 음악 연주회에서 나는 소음 등과 같이 서로 다른 진동과 인공적 발생원을 구별할 수 있었다.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에 활용 가능해
하지만 DAS 기술에도 단점은 있다. 기존의 지진 감지 장치인 수진기의 경우 수평 센서 2개와 수직 센서 1개 등 3가지 센서로 구성돼 있어 모든 방향에서의 진동을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광케이블에는 수직 센서가 없으므로 DAS 기술은 오직 수평으로 오는 진동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타이위안 주 교수는 “이것이 DAS 기술의 한계라는 것을 안다”라며 “향후 5년 이내에 새로운 광섬유 기술이 등장하면 이런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DAS 기술은 지질학적 용도 외에도 공중보건 및 도시계획과 관련된 다양한 인간 활동 패턴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예를 들면 개인 휴대전화 데이터, 총성 감지, 산업 소음 감시, 교통 모니터링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해양 관측이나 북극의 영구동토층 감시 등 접근하기 어렵거나 가혹한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기존의 광케이블을 활용한 DAS 기술이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에 있어서 점점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진은 구글이 캘리포니아에서 칠레 발파라이소까지 깔아놓은 1만500㎞의 해저 광케이블을 이용해 지진을 감지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발생한 20건의 지진을 광케이블을 이용해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2월 26일자에 발표됐다. 그에 의하면 이 기술은 지진에 의해 발생하는 바다의 압력도 감지할 수 있어 먼바다에서 시작되는 쓰나미를 빠르게 예측하는 데도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21-03-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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