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연말 미국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디즈니 올랜도 리조트에서는 밤마다 수 백대의 드론이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에어쇼의 장관을 연출했다. 디즈니월드가 인텔과 제휴해 연말 시즌 특별 이벤트로 마련한 '스타브라이트 홀리데이' 행사다. 인텔의 슈팅스타 드론 300대는 초당 10미터 속도로 하늘에서 아름다운 빛을 내며 크리스마스 트리, 새 등의 다양한 모양을 연출하면서 마치 공중에서 발레를 하듯 비행 기술을 뽐냈다. 지상에 있는 컨트롤러 PC와 통신하면서 미리 정해진 비행 순서와 경로에 따라 상호 충돌없이 매끄러운 무대를 이끌었다.
#2. 뉴저지주 로빈스빌에 위치한 아마존의 물류센터에서는 5000대의 로봇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복잡하고 거대한 창고안에서 로봇들은 직원들이 지정된 물품이 들어있는 선반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위치로 가서 이를 들어올리고 가져다 주는 역할을 한다. 통로 하나에 수십 대가 바삐 움직여도 서로 충돌하거나 엉키는 일이 없다. 다수의 로봇들이 충돌없이 다수의 물품을 병렬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마존이 인수한 키바시스템즈의 로봇창고관리 시스템 덕분이다. 1만 5000대를 도입한 시점에 이미 9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한 아마존은 조만간 25개 물류센터에 6만 5000대까지 로봇 배치를 늘릴 계획이다.
#3. 노스캐놀라이나주립대는 재난 지역에 바퀴벌레를 닮은 바이오봇을 대량 투입해 위험하고 복잡한 내부 구조를 매핑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 센서를 탑재한 1.5인치의 바이오봇들은 컨트롤러에 해당하는 드론의 제어를 따르며 각자 필요한 구역의 맵을 그리는데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허용된 범위 내에서는 바이오봇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서로 가까워질 때마다 무선파를 통해 연구자들에게 신호를 보내면서 지도를 만들어낸다. 어떤 구역의 지도가 그려지면 드론이 다음 인접 구역으로 날아가고 바이오봇도 함께 움직이면서 전체 지도를 완성하는 식이다.
위는 다수의 로봇을 동시에 운용하며 동일한 목표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군집 로봇(Swarm Robot) 기술의 다양한 활용 사례를 보여준다.
로봇의 크기나 활용 목적, 기술적인 난이도는 다르지만 수십, 수백 혹은 심지어 수천대의 로봇을 목적에 맞게 운용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바이오봇처럼 로봇 ㅎ나하나는 신통찮지만 대규모로 모여 목적을 수행하는 군집로봇이 있는가 하면 아마존의 물류 로봇처럼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다수의 로봇을 충돌없이 통합 운영하는 기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로봇 전문가인 구글의 제임스 맥러킨 박사는 "로봇의 미래를 군집 로봇"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흔히 로봇은 위험하고 더럽고 귀찮은 일을 의미하는 3D 관련 일에 적합하다고 알려져있지만 여기에 네번째 D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Distribution"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다수의 로봇에 작업을 분배해 단일 로봇이 하지 못한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해나가는 추세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군집로봇 기술 개념이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지만 기술개발과 상용 적용은 최근 4~5년새 활발해지고 있다. 군집 로봇이 뜨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러 대가 함께 수행하면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기러기떼의 일사분란한 비행이나 개미집단의 협업, 벌떼의 집단 행동 등은 군집 로봇에 원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산불이 난 지역에 생존자를 찾기 위해 한대를 날리는 것보다 수백대의 드론을 날려 동시 수색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가스관의 누수를 찾아낼 때는 수천 대의 곤충봇을 투입해 파악하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몇 대가 유실되어도 수적으로 워낙 많기 때문에 전체 임무를 수행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우주 탐사에도 싱글 로봇보다는 각자 임무를 할당받은 멀티 로봇이 훨씬 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탐사를 가능하게 한다.
특히 지금은 로봇을 활용하는 곳이 공장, 병원 수술장, 일부 서비스 구역 등에 국한되지만 앞으로 가정과 학교, 거리 등에서 이질적인 로봇들이 동시에 활보하는 시점에서는 군집 로봇 핵심 기술들이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센서와 카메라 등 기본 부품들의 가격이 점점 낮아지고 IoT 기술 적용이 보편화하면 군집 로봇의 대중적인 활용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군집 로봇이 가장 화제가 된 것은 하버드대가 2014년 발표한 킬로봇이다. 킬로봇은 이제까지 나온 군집 로봇 가운데 군집 규모가 가장 크다. 무려 1024대다. 그래서 1000을 의미하는 '킬로'가 로봇 이름에 붙었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에 가느다란 다리가 3개 달린 볼품없는 이 로봇은 그러나 함께 군집을 형성하면 그 움직임이 사뭇 달라보인다. 아직은 알고리즘 개발단계 수준이지만 상용화된다면 목적에 따라 모양을 바꿔가며 임무를 수행할 수 있고 거대한 물체를 밀거나 구멍을 막는 등의 작업에 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 유럽연합은 농업 혁신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로봇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SAGA(Swarm robotics for AGricultural Applications)'는 농업을 위한 군집 로봇 프로젝트이다. EU 지원을 받은 이탈리아 인지과학기술연구소는 꿀벌의 움직임을 응용한 군집 드론을 시험 운용하고 있다. 군집 드론은 개별 드론은 비록 오류가 일부 있더라도 집단의 힘을 빌려 cm 단위로 정확하게 농업 지도를 생성할 수 있다. 특히 드론은 아직 배터리 문제로 20~30분 정도만 비행하는데 대형 농장의 경우 릴레이로 군집 드론을 활용하면 공백시간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군집 로봇을 위한 요소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군집 로봇의 기반 기술은 행동 제어, 네트워킹, 상황인지, 시스템 통합 기술 등으로 꼽힌다. 각 로봇들은 목표를 공유하고 자신에게 할당된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각 로봇은 전체 네트워크에 연결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가까운 로봇과 커뮤니케이션 하거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등의 행동 제어를 한다.
조지아텍은 '멀티로봇 시스템을 위한 안전방해물 인증'이라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관련 학회에서 발표했다. 로봇들은 다른 로봇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패닉 존(panic zone)을 상정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이 구역에 진입하면 해당 로봇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멈추도록 한다. 그러나 로봇의 수가 급증하면 패닉 존이 겹칠 수밖에 없는데 이럴 때 로봇간 혼란 상황이 발행할 수 있다. 조지아텍은 본연의 임무를 관장하는 제1제어장치와 안전 역할을 맡는 제2제어장치 사이에 최적의 밸런싱을 유지하는 기술을 적용했다. 시도때도 없이 멈춰서지 않기 위해 충돌과 네트워크 실패 등 아주 긴급한 위기에서만 작동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뉴욕대학이 연구 중인 군집 로봇 기술은 증강현실(AR)을 이용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로봇을 제어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카메라를 사용해 어떤 장면의 세부 정보를 캡처하고 가상의 객체를 오버레이하면서 화면을 두드리고 밀어 로봇을 제어하는 식이다. 사용자는 장치에서 개체를 조작하고 로봇이 실제 작업에서 계획대로 작업을 수행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 특히 모바일 환경에서 제어가 가능하다면 건설 현장이나 옥외지역에서 훨씬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기술적으로 넘어야할 산이 많다. 싱글 로봇보다 장점이 많은만큼 멀티 로봇을 운용하는데는 개별 로봇 기술과 군집 및 통합 기술이 동시에 큰 진전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ETRI의 조영조 박사는 로봇신문 기고를 통해 "군집 로봇은 전체 로봇 팀의 임무를 결정하고 상호간 교신하며 역할을 분담하는 운영체계를 갖춰야 하는데 현재 표준 아키텍처가 부재할뿐 아니라 무엇보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개별 로봇의 이동 성능이 실제 환경에 적용할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야외의 비정형 환경이나 다양한 지형 조건에 적응해야 하는데 아직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또 "로봇이 스스로 자기 위치를 파악하는 인식 기술도 보다 많은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조인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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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9-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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