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노동 부담을 덜지 않고서는 여성을 비롯한 가정 구성원들의 사회 참여와 경제 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가사 노동이 여전히 사회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가사 노동을 자동화, 기계화하려고 시도하는 이유다.
밥짓기는 전기 밥솥이, 빨래는 세탁기가 대신 해내고 있고, 식기 세척기를 보유한 가정이 늘고 있다. 빗자루와 걸레로 방마다 쓸고 닦는 주부의 모습도 이제는 보기 드문 장면이 됐다.
사소해 보이지만 가장 복잡한 업무, 가사 노동
하지만 숱한 기계화 노력에도 가사 노동은 여전히 수동적으로 이뤄진다. 밥솥에 불을 켜기 전에 쌀을 씻고 안치는 작업,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다 된 빨래는 널어야 하는 노동, 청소기의 먼지를 빼내고 필터를 씻어 다시 끼우는 일, 그릇을 세척기에 넣고 세제 풀고 다시 꺼내 정리하는 수고로움까지... 이 모든 일들이 많든 적든 사람의 손을 타야만 완결되는 노동이다.
이 뿐 아니다. 보일러 온도를 맞추고, 조명을 켜고 끄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화분에 물을 주는 행위 등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집안에는 주기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잡동사니 일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가장 복잡한 성격의 일이 바로 가사 노동인 것이다.
이제 로봇이 가사 노동의 구원투수로 등판한다.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는 청소 로봇에 이어 2~3년전부터 요리 로봇, 빨래개는 로봇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으며 심부름 로봇, 공기청정기 로봇 등도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똑똑한 가사 로봇 개발은 매우 지난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업무 프로세스가 있는 회사, 공장용 로봇이나 특정 목적의 임무를 수행하는 의료 로봇, 군사 로봇과 달리 가사 로봇은 너무나 다양하고, 상이하고, 패턴이 제각각인 조각조각의 일들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0년 '1가구 1로봇'을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쓸만한 가사 로봇의 등장은 2045~2050년 정도의 먼 미래 일로 미뤄놓고 있다. 한국로봇학회는 2015년 '우리의 삶을 바꿀 미래 로봇'을 제시하면서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집안의 일정 관리, 공과금 처리, 이메일관리 등을 수행하는가사 로봇의 보급이 2045년에나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머신 러닝 기술의 발전, 비전 인식(vision recognition) 시스템의 고도화 등에 힘입어 로봇이 가정의 도우미로 조금씩 역할을 확대해가고 있다. 아직은 청소, 요리, 빨래 개기 등 부분적인 대체에 불과하지만 사물인터넷(IoT) 인프라 보급으로 각 기기들이 연계되고 인공지능 비서와 집사 로봇에 의해 통합 관리될 경우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학자인 이안 피어슨은 2050년에는 빨래, 청소 등 개별 가사 로봇을 팀으로 꾸려 종합 관리해주는 고지능 로봇이 출현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또 신소재 개발, 3D프린팅 기술의 대중화 등으로 소비자 가격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TV, 세탁기, 냉장고를 뒤이어 혼수나 효도 품목으로 가사 로봇이 이름을 올리는 날도 멀지 않았다.
가사 로봇의 대표 주자 청소 로봇
로봇 청소기는 가사 로봇의 첫 테이프를 끊은 가장 대중화된 가정용 로봇이다. 청소 로봇의 대표 주자인 아이로봇의 룸바가 등장한 것은 2002년. 청소 로봇은 이미 1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아이로봇의 2015년 매출은 6억달러 이상이다. 누적 판매 대수도 2000만대를 훌쩍 넘었다.
국내 업체인 유진로봇도 로봇 청소기 아이클레보를 10년 이상 판매해오고 있다. 지난 해는 국내 서비스 로봇 기업 최초로 2천만불 수출의탑을 수상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름이 꽤 알려져 있다. 올해 매출 1000억원 돌파 여부가 주목된다.
특히 청소 로봇 시장은 최근 샤오미, 다이슨 등 글로벌 기업들의 가세로 경쟁이 격화되고 있으며 기술 진화도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 중저가 제품의 대명사 샤오미가 지난해 9월 30만원 미만의 '미 로봇버큠'을 출시했으며 진공청소기 분야의 강자 영국 다이슨도 '다이슨 360아이'도 2015년 일본을 시작으로 영국, 미국 시장에 진입해 아이로봇 룸바980에 도전장을 냈다.
최근 출시된 로봇 청소기는 오염 상태와 가구의 위치 등을 계산해 청소를 최적화하고 자율 주행 및 원격 제어 기능,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정교한 비전시스템, 스마트폰 연동 기능 등을 갖춰 과거 제품들에 비해 진일보했다.
유리창 청소 로봇도 독립 제품으로 쓰임새를 확대하는 추세다. 국내 기업인 알에프가 개발한 윈도우메이트는 지난 CES 2017에서 호평을 받아 일본 SODC사와 50억원 가량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인 제니퍼리서치가 발표한 '전세계 소비자용 로봇: 시장과 전략 2015-2020'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 가정에는 25가구에 1대꼴로 로봇이 보급돼있으며 대부분 청소 로봇과 잔디깎기 로봇인 것으로 파악됐다.
가사의 가장 큰 부분은 요리이다. 삼시세끼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해낸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일이다. 하지만 '로봇이 요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제 '로봇이 얼마나 제대로 요리를 할까'로 바뀌어야 한다. 이미 요리하는 로봇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해 자율 요리를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요리 로봇까지는 아니지만 피자, 햄버거, 스시 등 품목별로 조리하는 로봇은 물론 100가지 이상의 레시피를 조리하는 로봇 시제품도 나왔다.
2015년 5월 상하이에서 열린 CES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몰리로보틱스는 로봇 쉐프를 2018년 출시할 계획이다. 몰리 로보틱 키친은 레시피를 습득하고 구비된 재료에 따라 요리를 수행한다. 정교한 로봇팔이 음식을 젓고 버튼을 누르고 작은 토핑을 얹는 등의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인간 요리사와 엇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몰리 측의 설명이다.
요리 도우미 로봇도 선보였다. 보쉬(Bosch)는 CES 2017에서 부엌의 요정이라는 의미의 컨셉 로봇 '마이키'를 출품했다. 마이키는 스토브, 냉장고 등과 연동해 남아있는 재료에 기반한 요리법을 제시하거나 오븐을 예열하는 기능, 요리법을 큰 화면으로 보여주는 프로젝터 기능을 갖추고 있다.
베를린 소재의 FZI리빙랩서비스로보틱스는 태블릿으로 명령하면 소시지를 한 자리에서 200개까지 구울 수 있는 브랏브르스트봇을 지난해 선보이면서 캠핑이나 파티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업소용이기는 하지만 피자나 스시 만드는 로봇도 있다. 가와사키는 스시 만드는 로봇 시제품을 전시해 고객들의 반응을 체크하고 있다. 한 쌍의 로봇 팔이 밥에 와사비를 얹고 그 위에 생선이나 달걀말이를 올리며 스시를 완성한다. 물론 아직 밥을 쥐는 것이나 생선을 뜨는 것은 할 수 없지만 대량 마트 같은 데서는 스시 제조시간을 줄이기 위한 선택으로 가능한 대안이다. 테크인사이더는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어떤 피자도 만들어낼 수 있는 비헥스 로봇을 소개하기도 했다.
요리 로봇의 역량은 재료 투입 및 혼배합에 있어서의 정교한 손놀림, 다양한 레시피의 습득과 재현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메릴랜드대학 로봇공학팀은 '비디오 시청을 통한 로봇의 조작행위 학습 플랜'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이 요리재료와 상호작용 하는 것을 로봇이 시청하도록 한 후 로봇이 이를 인식, 학습하고 재현하는 방식으로 정교한 요리로봇을 개발 중이다.
빨래 개는 로봇, 공기청정기 로봇...
세탁기와 건조기의 개발로 빨래를 세탁하고 널어야하는 수고까지는 해결됐다 해도 빨래를 개는 것은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다.
미국 폴디메이트사는 지난해 6월 빨래개는 로봇을 개발하고 올해 상용화를 목표로 출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류박스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로봇은 셔츠, 바지 등을 트레이에 걸쳐놓으면 자동으로 옷을 갠다. 1개당 10초 정도 소요되며 한꺼번에 15~20개의 옷을 처리할 수 있다. 다림질이 필요한 옷은 마지막 단계에서 스팀기능으로 구김을 펴준다. 가격은 700달러 수준이지만 출시 시점에는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앞서 2015년 일본 기업인 세븐드리머는 파나소닉, 다이와하우스와 손잡고 세탁, 건조, 빨래개기까지 가능한 론드로이드 로봇을 선보인 적이 있다. 5년에 걸쳐 개발한 이 로봇은 올해 출시 예정이며 지난해 11월 60억엔의 투자유치까지 성공함에 따라 밝은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웅진코웨이는 최근 로봇 공기청정기를 선보였다. 같은 집안 내에서도 장소별 오염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로봇이 오염도 높은 곳을 스스로 찾아가는 자율주행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용자 위치에 따라 공기청정기 위치를 수동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없게 됐다. 또 미국 로봇 스타트업인 슬랜드 로보틱스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병을 꺼내주거나 빨래를 집어 세탁기로 옮기는 다목적 로봇인 제리를 개발했다.
"집안 환경을 로봇 친화적으로 바꿔야"
가사 로봇의 등장을 두고 워싱턴대 컴퓨터과학공학과 마야 캐크맥(Maya Cakmak) 교수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현재 집안 구조는 전혀 로봇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거실 복도는 로봇이 위치 정보를 읽을 수 있는 표식이 있어야 하고, 인간에게는 수월하지만 로봇에게는 이동이 힘든 계단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정용 로봇이 진정한 자율 기계가 되기 위해서는 집안 환경까지 로봇 친화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있다면 문턱을 없애고 화장실 구조를 바꾸듯 가사 로봇을 인간에 가깝게 만드려는 거의 불가능한 노력보다는 로봇을 가장 잘 '써먹을' 수 있는 구조로 주택 환경을 변화시켜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 조인혜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7-02-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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